부부사이의 부름말〔呼稱語〕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께서는 겨레란 피와 문화를 함께 하는 모임인데 피는 그 겨레가 함께 탄 것이요, 문화는 그 겨레가 함께 애지은(창조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언어는 그 겨레의 문화를 대표하며 모든 문화의 기초가 된다. 그들의 언어에는 스스로 만들어 낸 문화는 물론 삶의 터전인 자연경관이나 기후, 이웃하는 민족의 문화까지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에스키모인들에겐 ‘눈〔雪〕’을 나타내는 말이 열 가지나 된다고 한다. 내리는 눈이 다르고 쌓이는 눈이 다르고, 쌓여 있는 눈이 다를 것이다. 또한 이들의 언어에는 다양한 색상을 나타내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희다’와 검다‘ 이외에는 다른 색깔을 나타내는 말이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리라.

남방의 스님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심도 있게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집대성한 것이라고 자랑하는 책 중의 하나가 「아비담마」다. 이 아비담마의 주제는 ‘내 안에서 벌어지는 물(物)ㆍ심(心)의 현상’이다. 이 속에는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마음 81가지와 출세간의 마음 중 유익한 마음 4가지와 선악을 판단할 수 없는 무기(無記)의 마음 4가지를 포함하여 모두 89가지의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 우리말에는 ‘마음ㆍ뜻ㆍ생각…’ 등으로, 중국의 한자에는 ‘심(心)ㆍ의(意)ㆍ지(志)ㆍ상(想)ㆍ식(識)…’등의 말이 있지만 수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히 부처님의 영적 세계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정신세계의 풍요함(?)을 나타내는 단적인 증거라고나 할까.

우리말에도 색상을 나타내는 말이나 사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 등은 대단히 발달하고 어휘의 수도 풍부하다. 그 중 하나가 언어예절에 관계된 말이다. 유난히 존대법이 발달하여 높임말과 낮춤말이 까다로워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울 때에 애를 먹는다. 부름말〔呼稱語〕과 가리킴말〔指稱語〕도 많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유우(You)’ 하나면 족할텐데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자기에 대한 칭호도 ’저, 제, 나, 우리, 저희, 할애비, 할미, 애비, 에미,…‘등에다 자기의 직책이나 직위를 붙이면 ’짐, 본 의원(?)…‘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다양하다. 그 밖에 부모, 아들, 딸, 사회생활에서 잘 아는 사람,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칭호도 제각각이다. 여기다 여자가 시집을 가고, 남자가 장가를 가서 생기는 가족관계 용어도 비례하여 늘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칭호가 있으면서도 아예 부름말이 없거나 발달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부부간의 부름말과 처남의 아내와 시누이의 남편에 대한 부름말이다. 요즈음은 처남의 아내인 경우엔 ‘아주머니, 아지매, 처남댁 ’등으로 부르는데 ‘처남댁’은 가리키는말이지 부름말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시누이의 남편도 ‘아재, 서방님, o o (사는 곳, 택호)서방님’ 따위로 부르면 크게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옛날엔 이들 사이도 남녀간의 내외하는 사이로 보아 부름말이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예부터 부름말이 없도록 되어있었다고 한다. 서로 말할 것이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서 귓속말로 소곤소곤해야 되었다. 남들이나 어른들이 보는데서 부부가 큰소리로 부르거나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부부 사이의 말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나지막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부부 사이의 부름말이 꼭 필요한데도 적당한 말이 없다. ‘여보’라는 말도 ‘여보시오, 여보게, 여보(당신이)…’ 하는 등 반드시 부부간의 부름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이는 ‘자기’라는 말도 본래 ‘재귀대명사’로서의 의미는 본인을 가리키는 것이 주된 뜻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이름을 부르기도 그렇고, 아이들의 이름은 더더구나 옳지 않다.

본시 둔해서 그런지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부간의 좋은 부름말이 없을까.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장, 창원전문대교수) 글. 월간반야 2006년 12월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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