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도
1) 원시불교
창시기(創始期)의 불교를 말하며, 경전들은 석가의 생애 중의 가르침을 스승이 죽은 후에 제자들이 수집 ·정리한 것이지만, 그 중에서 석가가 직접 설한 교법을 판별하기는 곤란하다. 교단도 이미 발족되어 석가 입적 후 약 100년 동안은 완전한 통일이 유지되었다. 불(佛) ·법(法) ·승(僧)의 3보(寶)는 불교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인데, 승(僧:敎團)은 출가신자(出家信者)인 비구 ·비구니와 재가신자(在家信者)인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로 이루어져 계율(戒律)로 규제되며 부처를 중심으로 모여 그 법을 실천한다. 이 재가신자는 단가제도(檀家制度)에서의 신자와는 달리 3보에의 귀의(歸依)를 서약할 뿐 아무런 속박도 없으며 그 대신 출가신자에 대한 의식(衣食)의 재정적 지원을 맡았다.
석가는 태자(太子) 시절의 물질적으로 풍족하던 생활에서도, 출가 후의 고행(苦行)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고뇌하였으나, 그 두 극단의 고뇌를 버림으로써 중도(中道)를 깨닫고 불타가 될 수 있었다.
2) 부파불교
불멸(佛滅) 후 100년까지 교단은 착실하게 확대 ·발전을 이루어, BC 3세기에는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왕[阿育王]이 귀의하여 불교는 거의 인도 전체에 퍼져 교세는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러나 교단의 확대에 따라 내부에 의견의 대립이 나타나 불멸 후 100년이 지난 무렵부터 교단은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혁신적인 대중부(大衆部) 두 집단으로 분열되었다. 또한 불멸 후 200년 무렵에는 대중부 속에서 재분열이 일어나, 먼저 일설부(一說部) ·설출세부(說出世部) ·계윤부(鷄胤部)로 갈리고, 이어서 다문부(多聞部) 설가부(說假部)가, 또 제다산부(制多山部) ·서산주부(西山住部) ·북산주부(北山住部) 등으로 분파되었다.
한편 상좌부도 불멸 후 300년 무렵부터 분열이 시작되어 먼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설산부(雪山部)로 갈리고, 설일체유부에서 독자부(犢子部)가, 독자부에서 법상부(法上部) ·현주부(賢胄部) ·정량부(正量部) ·밀림산부(密林山部)가 분출(分出)되고, 또 설일체유부에서 화지부(化地部)가, 화지부에서 법장부(法藏部)가, 다시 설일체유부에서 음광부(飮光部)가, 이어서 경량부(經量部)가 분출되었다. 이들 20개의 부파는 소승 20부(小乘二十部)라고도 부르며 이들을 총칭하여 부파불교(部派佛敎)라고 한다. 상좌부 ·대중부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는 별로 없으나 혁신적인 대중부에는 후일 대승불교(大乘佛敎)로 발전할 기미가 엿보인다. 또한 상좌부 불교는 남방불교로서 오늘에 전한다.
〈대승불교〉 출가신자(승려) 중심인 종래의 불교에 대항하여 기원 전후부터 재가신자를 포함하는 신앙으로의 탈피를 원하는 대승(大乘)의 운동이 인도 각지에서 일어났다. 그 밖에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 불탑에 예배함으로써 불타에 대한 신앙을 높이는 재가신자의 집단인 보살단(菩薩團)이 있어, 이것도 대중운동에 합체하여 초기 대승불교가 성립되었다.
BC 1세기부터 AD 2세기에 걸쳐 《반야경(般若經)》 《법화경(法華經)》 《유마경(維摩經)》 《화엄경(華嚴經)》 《무량수경(無量壽經)》 등의 대승경전이 차례로 성립되어, 이것들은 3세기 전후에 나가르주나(Ngrjuna:龍樹)에 의해 이론적 근거가 부여되면서 대승불교의 확립을 보았다. 용수는 《중론(中論)》에서 모든 존재는 연기에 의하여 생기는 것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일은 없으니, 이것을 깨달으면 진공중도(眞空中道)의 정관(正觀)을 얻을 수 있다는 반야공관(般若空觀)을 설하였는데, 이 설에 기초를 둔 학파를 중관파(中觀派)라고 한다.
또 미륵(彌勒)이 시작하고 무착(無着) ·세친(世親) 등이 전개시킨 학파를 유가파(瑜伽派) 또는 유식파(唯識派)라고 한다. 이 학파는 용수의 반야공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관상(觀想) 등에 의한 수행(修行)인 유가행(瑜伽行), 외계(外界)의 실재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만 심식(心識)의 투영이며, 심식만이 실재한다는 유식설(唯識說), 불성(佛性)은 중생도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으로 중생 모두가 여래(如來)가 될 수 있다는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 등을 설하고 있다.
이 두 학파가 중기 대승불교를 형성하였으며 그 후 세친의 학통을 이은 진나(陳那) 등에 의하여 인명(因明:불교논리학)이 확립되었다. 후기 대승불교에 이르면 인도교 등의 영향을 받아 다라니(陀羅尼)나 진언(眞言)을 중심으로 하는 밀교(密敎)가 주류를 이루어 점차 타락의 길을 걷다가 이슬람교의 인도 침입으로 13세기에 쇠멸하기 시작했다.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은 모든 존재에 실체(實體) ·아(我)와 같은 것은 없다고 하는 ‘공(空)’의 사상이다. 또 보살(각성을 구하는 사람)의 실천윤리덕목으로서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내세우는데, 그 첫째가 보시로 되어 있어 이타행위(利他行爲)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대승불교는 주로 북쪽으로 퍼져 중국과 한국 ·일본 등에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