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있는 지도

사람의 마음속에는 생각의 지도가 있다. 땅 위에 있는 장소가 그려진 한 나라의 지도나 세계지도처럼 마음의 여기저기에 생각이 머물 수 있는 수많은 터가 지도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지도에 산이 있고 강이 있으며, 평야가 있고 또 호수나 바다, 그리고 섬도 있는 것처럼 마음속에 있는 생각의 지도에도 산이 있고 강이 있으며 섬도 있다. 사람은 생각의 지도를 가지고 산다. 차를 몰 때 사용하는 길을 안내하는 교통지도 같은 지도가 있는가 하면 도시의 거리를 따라 번지가 다른 건물이나 주택지가 표시된 지도도 있다. 물론 긴 산맥이나 강줄기를 따라가는 지도도 있다.

지도를 보고 지리적 공간을 이동하면서 여행을 할 때 생각의 지도가 반드시 먼저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일은 생각이 먼저 일어나야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이 기차표를 사야 가차를 탈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표를 사게 하는 것은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차표가 있어 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있어 차를 타는 것이다.

생각의 지도는 지구 면적의 한계를 훨씬 벗어나는 무한한 사유공간의 지도이다. 말하자면 우주 보다 더 큰 지도가 된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사색의 날개를 달고 유토피아를 날아가는 자유를 생각의 지도에는 언제나 담아두고 있다.

지도를 보면 아무리 여행을 많이 한 사람도 아직 가 본 곳보다 가보지 않은 곳이 더 많을 것이다. 세계지도가 아닌 한 나라의 지도를 놓고 본다 하더라도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발 들여 보지 않은 곳이 더 많을 것이란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사색을 좋아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직 생각해 보지 않은 미사고의 영역이 더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항상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을 찾아 생각해 보라고 충고할 수 있다. 생각의 지도를 찾아 사유의 세계를 개척해 가는 것, 이것은 확실히 자신을 일깨우는 좋은 일이다. 물론 망상을 하지 말라는 불교에서 하는 경책의 말도 있다.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정신적 손해를 보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자유가 없다면 어찌 사람을 사람이라 하겠는가? 생각의 자유!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선물이다.

사색을 즐기는 편인 나는 가끔 어딘가 멀리 떠나보고 싶은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어렸을 때 과학 잡지를 읽고는 미소의 우주경쟁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그 속에 사람이 타고 간다는 걸 알고 달에도 가보고 화성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한 탓에 지구 궤도권 밖을 가보지 못했지만 출가하고 과학 잡지 읽다가 동경하던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그때 소련의 수도 모스코바를 동심을 회상하면서 가 본적은 있다.

근년에 와서는 산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먼 섬에 가서 며칠을 푹 쉬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섬에서 며칠을 파도소리도 듣고 달밤에 수평선을 응시하며 사색에 젖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벌써 10년 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를 아무도 몰래 혼자 다녀온 적도 있다. 마음 한 구석에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을 동경하며 정신적 휴식의 돌파구를 찾았다 할까? 그러던 것이 작년 가을이다.

속가의 숙부가 모 사찰 신도 회장을 오래한 탓에 집안에 출가한 스님이 있어 자랑스럽다면서 내게 공양을 같이 하기를 원해 부산 해운대에 가 저녁 공양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뜻밖에 호텔에 방을 하나 예약하여 하룻밤 묵도록 주선을 해 놓았던 것이다. 그 방이 APEC 정상회담을 할 때 모 나라의 대통령이 묵었던 방이라 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호텔의 고급특실에서 하룻밤 묵은 것이다. 호의에 감사해 바다를 바라보고 섬을 생각하자 하였는데 아쉽게 비가 내려 달빛도 바다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방 책상 위에 어느 시인의 시 한편이 적힌 인쇄물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그 시의 제목이 섬이었다. 이 시를 읽고 나는 이 시가 하도 좋아서 메모지에 베껴 적어왔었다. 지금도 머리를 식히고자 할 때 이 시를 꺼내 한 번씩 읽는다.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 번 가 봐라, 그 곳에

파도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 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 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

(안도현 ‘섬’ 전문)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12월 제 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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