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이 나란히, 그렇게

마음 꼭꼭 다잡으며 살아낸 세월을 정리하고,

미련이나 후회 없이 다 버리고 떠날 수 있어

홀가분하다 하시더니

“다시 태어나면 /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 농사짓고 살고 싶다” *하시더니

글을 쓰는 행위는 가치 있는 일이지만

살아가는 행위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하시더니

그 나라에서도 「옛날의 그 집」에서처럼

유식한 이웃집 아저씨 모셔와 고담(古談) 낭독회를 열고 계십니까?

색색의 실꾸리를 풀어가며, 촘촘하고 섬세하게

가지가지 무늬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짜고 계십니까?

병인년(1926년)정월에 태어나신, 여든 셋 친정어머니께선

딸의 詩集보다 선생님의 소설을 즐겨 읽으십니다.

불러주는 이 없어도, 서러워도 노여워도 않으시고

삶과 죽음을 아름답게 완성시킨 노고에 박수를 치면서요.

토지를 껴안고, 발바닥이 닿도록 외길로 걸어오신

외롭고 고단했던 질곡의 계단위에

정갈한 꽃 한 송이 단정히 올려놓고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으십니다.

선생님은 지금, 미륵산 기슭에서 쉬고 계시지만

때때로, 토지문학관 채마밭에서 김을 매거나

가마솥 가득 옥수수를 쪄놓고 후배들을 기다리시겠지요?

때로는, 바람새의 등을 타고 천산산맥을 오르기도 하고

바이칼호수를 사뿐사뿐 건너기도 하고

사막의 별들에게 이뿐 이름표를 달아주기도 하고

문학이란 이름으로 곳곳에 단비를 뿌려주시겠지요?

글을 쓰는 행위와 살아가는 행위가

평사리 들판에 나란히 선 두 그루의 나무처럼 그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게 하여 주셔요.

부디, 그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셔요.

* 박경리 유고 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인용.

이 시는 박경리 선생 1주기 추모문집에 수록된 詩 입니다.

文殊華 하 영 (시인․ 마산 반야학당) 글. 월간반야 2008년 11월. 제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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