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정상적인 신체의 기능이 있다. 키에 따라 몸무게의 표준이 있는 것처럼 신체적 활동량에도 일정한 활동지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수가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감소되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물리적 현상에서 이러한 결과가 뚜렷하게 나타나듯이 정신적 작용에서도 이 현상은 뚜렷하다고 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sound body sound mind)이 인생 최고의 재산이지만 이 최고의 재산을 누리고 살기가 힘든 것이 중생이다.
불교의 경전에서는 중생의 번뇌와 망상을 마음의 병으로 취급한다. 어리석은 미혹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성냄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야기되는 건강하지 못한 정신으로 간주한다는 말이다. 과거 숙생으로부터 지어 내려온 업의 좋지 못한 잔재가 남아 있는 업병(業病)이라고 한다. 그릇된 행위가 반복되어 나쁜 습관이 만들어진 것과 같이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업의 기운이 형성되어 이것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원각경(圓覺經)]에는 허공 꽃(空華)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허공 꽃이란 눈병난 사람이 허공을 바라볼 적에 아물아물하는 헛것이 보이는 것을 말한다. 건강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병든 눈에는 이것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무명의 정체라고 경에서는 밝히고 있다.
“어떤 것이 무명인가 하면 선남자여, 일체 중생들이 끝없는 옛적부터 갖가지로 뒤바꿔져 있는 것이 마치 방향을 모르는 사람이 동‧서‧남‧북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지(地)‧수(水)‧화(火)‧풍(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나>라고만 생각하고 눈‧귀‧코‧혀‧몸‧뜻의 육근(六根)이 상대하는 경계인 색깔‧소리‧냄새‧맛‧촉감‧기억되어지는 생각의 그림자를 마음이라 하느니라.
비유하면 병이 난 눈에 허공 꽃이나 또 하나의 달이 생겨 달이 두 개로 보이는 것과 같으니라. 허공에는 실제로 꽃이 없거늘 눈병 난 이가 허망하게 꽃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 허망한 생각 때문에 허공의 본성을 잘못 알뿐만 아니라 실제의 꽃이 나오는 자리까지도 모르게 되니 이런 까닭에 생사에 헤매게 되니 이래서 무명이라 하느니라.”
<문수장>에 나오는 무명의 정체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경에서는 이 무명을 끊으면 부처가 된다 하였다. 이 경전의 이야기는 불교의 본령에 대한 이치를 밝힌 말이지만 현대인들을 경책하고 시사(示唆)해 주는 바가 큰, 의미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생을 일생 내내 허깨비놀음으로만 살아 갈 수 없는 절박한 자기 문제의 자각의식을 일깨우는 이야기이다. 사실 일상의 사소한 생활경계에서도 얼마나 엉뚱한 착각으로 허공 꽃을 보는 것처럼 어이없는 생각에 스스로 빠지는 수가 많은가? 몸과 마음이 정상적 지수를 유지하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비정상 행동이 일어나고 정신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담고 사는 수도 허다하다.
허황한 망상으로 부질없는 집착을 가지고 엉뚱한 추구를 하다 스스로 괴로워지면서 남을 괴롭히기도 한다. 잘못된 인생관에 의해 물속에 있는 달은 건지려고 강물에 뛰어드는 것과 진배가 없는 행동을 예사로 자행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소박하지 않은 허영으로 제 자신을 치장하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두 눈병 난 눈에 허공 꽃을 보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당나라 때 남양혜충(南陽慧忠: ?~775) 선사가 황제 헌종을 만난 적이 있었다. 황제가 선사에게 왕의 권위를 내세우며 고압적으로 말을 걸면서 질문을 하였다. 이 때 선사가 한눈을 팔면서 왕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왕이 불쾌해 하면서 말했다.
“나는 이 나라의 황제거늘 감히 나를 무시하는가?”
이때 혜충이 이렇게 되물었다. “황제께서는 허공이 보십니까?” 황제가 본다고 하자 다시 “허공이 황제에게 고개를 돌립니까?”하고 묻는다. 황제의 권위를 너무 내세우는 임금에게 허공처럼 텅 비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이야기이다.
사람은 때로 비워진 마음으로 돌아가 있어야 한다. 비워진 마음에는 허공 꽃이 보이지 않는다. 허욕과 과대망상이 일어날 수 가 없는 것이다.
[화엄경]에도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부처님 세계를 알려고 하거든 마음을 비워 허공처럼 되어라. 허망한 생각과 존재의 자취마저 없어지면 마음이 어디에도 걸리지 않으리라.”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1년 5월 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