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실례를 했을 때 “미안합니다.”하고 인사말을 건넨다. 본의 아니게 작은 실수를 범해 상대방에 누를 끼쳤을 때도 똑같은 인사를 한다. 사람이 살면서 이와 같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될 때가 누구에게나 많이 있다. 미안하다는 것은 나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좋게 받아드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혹 언짢아졌거나 기분이 상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내 언행으로 인해 불편한 심기가 되지 말라는 뜻의 인사이다. 남에게 수고를 끼쳤을 때도 감사의 뜻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이처럼 미안해하는 마음이 생길 때 사람의 마음은 부드러워지면서 동시에 순간적으로나마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사과를 할 때는 언제나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때문에 사람은 일상의 생활감정에서 어느 누구에게나 미안한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자식이 부모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또는 부부가 서로에게, 그리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인연이 맺혀 있는 사람 사이는 물론 심지어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이 지구상에 같이 살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은 모두 공생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생의 삶이란 공동적 합성으로 이루어진 삶의 본질적 가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세상은 하나의 큰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네트워크란 말인데 이는 불교의 연기설에서 ‘법계무진연기’라고 설명하는 말과 같은 뜻이다. 전체가 하나의 큰 그물이라면 개체적인 개인은 그물의 한 눈이 된다. 화엄사상에서는 이 원리로 존재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전체에서 분리되어 개체로 돌아오면 응분의 자기 역할이 있다.
이 역할에서 객관적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이 정신적 생계지수라 할 수 있는 개인의 존재가치의 지수가 될 것이다. 여기서 나의 지수가 낮아질 때 미안해지는 것이다. 성적이 나쁜 학생이 부모나 선생님에게 미안해하는 것처럼 내 역할이 부진할 때 생기는 미안함은 일상적 생활 에티켓에서 행해지는 인사말의 미안함과는 그 성질이 다른 미안함이다. 그것은 남에게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미안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나를 관찰하는 관찰자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하늘이 굽어본다.’라든지 종교인의 경우에는 신이나 불‧보살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진정으로 미안한 것은 나쁜 행동을 하는 죄의식 못지않게 내가 내 할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나는 남에게 해야 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남이 나에게는 최선을 다해 주기 바라는 이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최선의 결과를 바라는 것은 인과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으로 공짜를 바라는 허황된 것일 뿐이다. 설사 어떤 요행이 온다 하더라도 무거운 빚을 지게 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이 하는 일에 어처구니없는 모순이 생기는 수가 종종 있다. 하지 말아야 될 일을 억지로 하면서 해야 될 일은 하려하지 않는 경우, 관찰자가 볼 때는 분명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동쪽으로 가야 할 사람이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엉뚱하게 서쪽으로만 자꾸 가고 있다면 결국 시간 낭비가 되어 낭패가 생기거나 뜻하지 않던 조난이 다가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생활의 편리를 가져온 반면 삶에 대한 정성의 도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내 인생에 기우리는 정정이 낮을 때 기온 떨어진 날씨처럼 사회 전체가 차가운 사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상생활에서 마음 쓰는 것이 무성의해서는 안 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진심을 가지고 성의껏 해야 한다. 엄벙덤벙 차일피일 무성의하게 시간을 낭비하며, 찾아서 해야 될 일을 방기해 놓고 유흥의 무드만 탐색하는 질적으로 저하된 삶을 사는 것이 문명의 대가가 아닌 것이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명언을 남겼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해야 될 본래의 일이 있다. 그걸 찾아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을 미루면 빚에 이자를 물어야 하듯이 내가 해야 할 수고가 더욱 많아지게 될 것이다. 내가 나에게 미안해하면서 오늘의 일을 챙겨야 한다. 오늘의 시간은 오늘 밖에 없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1년 9월 1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