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함(長阿含經, Dirghagama-sutra)>은 남전 팔리어 본(本)의 {장부(長部)}와 같은 것인데 전부 22권으로 그 내용이 30개의 소품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과거 칠불(七佛)의 태어나고 출가하고 수도하고 성도하고 설법하는 등 8가지 장면을 설해 놓은 대본경(大本經)에서부터 기세경(起世經)까지 여러 가지 내용이 설해져 있는데, 결국 부처님의 해탈도를 설하고 더 나아가 중생을 교화하는 구제의 길과 신앙을 이야기한다. 미륵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일부 나오고 염불사상과 탑사(塔寺) 공양의 공덕을 찬탄해 놓은 내용도 있다.
그리고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말씀이 설해져 나온다. {전륜성왕 수행경}에 나오는 이 말은 불교의 인본주의(人本主義) 법본주의(法本主義)를 설파해 놓은 말로 진리는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며 그것은 곧 법, 다르마(Dharma)라는 것이다. 때문에 무엇을 의지하여 수행하느냐 하면 그것은 곧 자기를 의지하고 법을 의지할 뿐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의지할 곳은 자기밖에 없으니 그 밖에 무엇을 의지할 게 있으리오.
자기가 자기를 조복할 때에 아주 희귀한 귀의처가 생기리라.
등명(燈明)이라는 것은 등불이 밝다는 말이다. 자신을 등불로 삼아 밝히고 법을 등불로 삼아 밝혀 간다는 뜻이다. 어느 때 부처님이 라자그라하에서 인간에 노닐다 일천이백 비구들을 데리고 바이살리에 도착하였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라. 자기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여 다른 데 귀의하지 말라.” 이것이 그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법문이다.
불교의 수행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하는 자력 수행이다. 물론 신앙적인 방편에서 본다면 불보살께 귀의하고 의지하는 의타적인 요소가 있겠으나 궁극적인 깨달음의 성취는 자기의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력 종교라 하며, 사람이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본위의 수행이므로 인본주의 종교라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특징이다.
<아함경>, 특히 이 <장아함경>에 불교의 대본(大本)을 바로 설해 놓은 것이다. 인본주의 자력 종교인 불교이기 때문에 부처와 중생은 깨닫고 깨닫지 못한 차이는 있지만, 그 근본은 같다는 것이다. 후에 대승경전(大乘經典)이 나오면서 이 뜻은 더욱 강조되어 설해진다. ‘내가 깨달으면 내가 곧 부처다’라는 이 논리는 부처를 인간 안에서 찾고 인간 밖에서 찾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성불하여 부처와 동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극대화시켜서 보는 높은 인격이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 <아함경>은 제번국의 삼장이었던 불타야사가 축불념과 함께 후진 홍시(弘始) 16년(서기 413년)에 번역하여 <한역대장경>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장아함경>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속하여 경전으로는 다른 아함과 함께 부처님 초기설법의 전형적인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또 이 <장아함경>을 읽다 보면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제9중집경>에 보면 부처님이 등이 아파 고통을 느끼자 부처님을 대신하여 사리불(Sariputra)이 설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처님이 몸이 불편하여 제자가 대신 설법을 하는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대승경전에는 나오지 않는 아함경다운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2년 12월 (제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