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스님─(5)큰스님! 삶의 지혜를 주십시오

큰스님! 삶의 지혜를 주십시오 문/수행의 요체(要諦)는 무엇입니까?

답/흔히 수행이라고 하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염불, 참선, 주력, 경전연구 등의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깨달 음은 그 공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업에 몰두하거 나 밭을 매거나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모두가 수행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밭농사를 짓는 것을 예로 들어 봅시다.

‘비탈진 이 밭에는 무엇을 심을까? 이 씨앗을 얕게 심으면 까치가 까먹을 것이 고 깊이 심으면 싹이 더디게 나지 않을까?…’ 이렇게 농사 짓는 모든 일에 심사숙고 할 때 실한 작물을 많이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밥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쌀을 씻어서 밥솥에 안치는 것 보다는 ‘몸에 좋은 잡곡을 섞어야지, 연로한 부모님을 위해 조금 진밥을 해야겠다.

‘ 이렇게 바르고 좋은 마음으로 모든 일을 성심성의껏 하는 것이 수행의 요체요 기본입니다.

그래서 ‘불사문중 불사일법(佛事門中 不捨一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되고자 하는 일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심에 이탈되어서 하는 것은 외도(外道)요 사도 (私道)입니다.

불자를 자칭할지라도 양심을 져버리고 살면 외도요, 한 번도 절에 안 가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 양심 을 속이지 않고 맡은 바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남의 힘든 일을 도와주면서 사람답게 살면 불교를 잘 믿고 수행 잘 하는 불자인 것입니다.

문/불교적인 삶에 있어 기준점이 될 만한 가르침은 무엇 입니까? 답/육바라밀(六波羅蜜)을 기준으로 삼으면 좋습니다.

불교는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에서 육바라밀로, 육바라밀에서 십바라밀(十波羅蜜)로, 나아가 보현보살의 만행(萬行)을 닦고 실천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실천의 중심에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 가지 덕목으로 구성된 육바라밀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보시는 베풀어라, 지계는 몸단속을 잘하라, 인욕은 참을 줄 알아라, 정진은 시작하였거든 끝까지 밀고 나가라, 선정은 고요한 마음으로 잘 생각해서 하라, 그렇게 하면 지혜가 나서 무엇이든지 척척 잘 된다.

이것이 육바라밀입니다.

육바라밀의 첫째인 보시(布施)는 베푸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는 마음씨를 품고, 말 한마디 할 때에도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좋은 말로 베풀고 살며, 돈도 나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벌면 나누어 줄줄 아는 것입니다.

이 보시는 크게 법시, 재시, 무외시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법시(法施)는 진리를 가르치고 전하는 베풂을 말하고, 재시 (財施)는 단순히 재물을 나누는 것 뿐만이 아니라 법시를 행할 수 있는 도량을 위하여 재화를 베푸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외시(無畏施)는 고통 받는 자를 위로하여 공포를 없애주고 평화를 얻게 하는 일체의 베풂을 말합니다.

진리나 좋은 법문을 주위에 알리려고 할 때에 먼저 좋은 음식이나 물질로 대접을 하여 서로의 신뢰감이 쌓여갈 때 불법을 전하고, 상대방의 두려움을 위로하며 평화를 얻게 할 때 무외시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 셋 모두가 갖추어진 것이 참된 보시입니다.

두 번째는 지계(持戒)입니다.

지계, 곧 계율을 기킨다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 계율입니다.

부처님께서 당시의 제자들이 지켜야 할 사항으로 제정해 놓은 것이 계율이요 그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 율장(律藏) 이 되었지만, 이 계율의 근본적인 생각은 ‘남을 나와 같이 존중하라’ 는 것입니다.

이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의 인욕(忍辱)은 잘 참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표현하셨 는데, 이 사바세계를 번역하면 ‘견딜 감(堪)’, ‘참을 인 (忍)’의 감인세계가 됩니다.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 는 세계’라는 뜻입니다.

이 혼탁한 세상에는 사리사욕에 눈을 반짝이며 다른사람을 골탕 먹이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 상대를 밟고 올라서거나 속이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세계이기에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은 성공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패망하고 불행해 집니다.

그래서 견디고 참는 감인세계라고 하신 것이며, 잘 살기 위해서는 인욕이 꼭 필요한 세계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네 번째는 정진(精進)입니다.

어떤 공부나 일을 계속해서 열심히 하여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것이 정진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거나 회사 일을 하다가보면 마음이 느슨해지고 게을러질 때가 옵니다.

바로 이럴 때 처음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입사 면접을 끝내놓고 입사 여부를 기다릴 때는 대부분이, ‘입사만 시켜주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리를 잡고 나면 처음에 먹은 생각과는 달라집니다.

오령을 피우고 교만을 부립니다.

이 때 입사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잘 정진할 수 있습니다.

학생도 ‘원하는 어느 학교에 입학하겠다’고 결심한 날의 각오를 상기시키면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수도하는 사람도 처음 머리를 깎고 입산하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면 깨달음을 이루고 공부를 성취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근수정진(勤修精進)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정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진하면 갈등이나 회의 없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정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총무원장으로 있을 때, ‘처음처럼’이라는 캠페인을 많이 보급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섯째의 선정(禪定)은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보시, 지계, 인욕을 꾸준히 닦아 익히는 정진을 계속 하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평화로운 선정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의 지혜(智慧)는 목표를 이루어 내는 능력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능히 안다 는 것입니다.

그 일의 본체와 작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 고 알기 때문에 성취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보시, 지계, 인 욕, 정진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지면 저절로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밝은 지혜가 샘솟게 됩니다.

또 지혜롭게 생각하 려는 그 생각 자체가 지혜입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나오지 않지만, 무엇이든지 하려는 사람 에게는 지혜가 샘솟듯이 생겨납니다.

무엇이든지 노력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거기에서 지혜가 샘솟습니다.

이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든 이 육바라밀을 삶과 수행의 기본 덕목으로 삼게 되면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이루고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월간 [법공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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