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귀지(止動歸止)하면 자갱미동(止更彌動)하나니
움직임을 그쳐 그침에 돌아가려면 그침이 다시 더욱 움직이게 된다.
움직임을 그쳐 그침에 돌아간다는 것은 분별 망상에 의해 움직이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는 것이다.
번뇌가 일어나 마음이 산란할 때그 번뇌를 끊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욱 크게 움직인다.
동(動)과 정(靜)은 서로 상대되는 것이므로 동을 버리고 정을 취하려 하여도 변견이 되고, 정을 잃고 동에 빠지는 것도 변견이 된다. 사실 근본으로 돌아가서 보면 모든 지말적인 차별이 하나로 회통(會通)되는 것인데도, 하나인 것을 상대적 차별로 보아 미혹의 구름이 일어나게 되어 변견에 떨어져 집착을 하는 것이다.
유체양변(唯滯兩邊)이라 영지일종(寧知一種)가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니 어찌 한가지임을 알겠는가?
범부의 견해는 상대적 분별경계에 치우친 견해가 대부분이다. 대(對)를 두고 어느 한 쪽에 머물면 대가 없는 중도실상을 알리가 없다.
달리 말하면 자기의 마음자리인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에 돌아가면 주관과 객관의 대(對)에서 오는 오는 분별이 없다는 말이다. 도(道)는 중도(中道)로서 양변을 동시에 관통해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인 절대의 경지를 깨달으면 모든 것이 무애자재하게 융통되어지는 것이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9월 제 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