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과 지옥은 인간이 한 생애에서 지은 업이 가장 좋게 나타나고 가장 나쁘게 나타나는 것을 상징해 놓은 세상이다. 윤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인간이 죽고 난 후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에서이다. 또한 뭇 생명체들의 생명자체의 상호 상관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윤회설을 통해서 밝혀진다. 그런데 이 윤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의 업이다. 결국 인간의 업 카르마(karma)가 다른 도(道)의 생을 결정하므로 인간의 업에 의해서 육도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윤회 속에 여러 갈래의 세계가 있지마는 그 중심은 인간세상이라는 말이다.
인간세상이 중심이 되어 그 과보의 극선(極善), 극악(極惡)이 천상과 지옥인데 이 외에 아수라(阿修羅 asura)와 아귀(餓鬼 preta), 축생(畜生 tiryak)를 합하여 육도(六道)라 하고 아수라를 빼어 오도(五道)라 하기도 한다. 또 중국 불교에서는 신선(神仙)을 넣어 칠취(七趣)라 하기도 했다 취(趣)나 도(道 혹은 途)는 같은 뜻이다.
아수라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무리들로 원래 악도로 취급했는데 천상과 투쟁을 벌리는 존재들로 불법을 들을 수 있는 인연이 있어 인간, 천상과 함께 선도 취급을 받기도 한다. 원래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다 하여 무단(無端)이라 번역하기도 하고 천상의 인간류가 아니라 해서 비인(非人)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아수라들도 도리천에 사는데 복은 하늘 무리와 같으나 못생기고 싸움을 좋아하는 점이 하늘 무리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쁜 여자는 곁에 있으나 좋은 음식이 없고 하늘 무리들은 좋은 음식은 있으나 미인이 부족하여 서로 부족한 것을 빼앗아 채우기 위하여 싸움을 한다고 한다.
난장판이 되었다는 말은 흔히 수라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수라는 아수라의 준말이다. 아귀(餓鬼)는 배고픈 귀신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사람이 죽은 다음에 영(靈)이 되어 귀신이 된다는 설이 있었다. 불교에서 영혼을 천도(薦度)하는 풍습이 있다. 이를 천도재(薦度齋)라 하는데 이때 죽은 사람을 영가(靈駕)라 한다. 이 영가도 중생이다.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의 영가도 중생의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다. 마치 사람이 잠을 자다가 꿈을 꾸어 악몽에 시달릴 때는 꿈속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것처럼 죽은 이의 영가가 괴로움에 시달리는데 그 괴로움을 소멸시켜 주는 것이 천도이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신통(神通)이 가장 빼어났던 목련존자가 어머니가 아귀도에 떨어진 것을 구해내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에 의하여 생긴 풍습이 우란분(盂蘭盆)절의 조상 천도 풍습이다. 우란분이란 ullambana의 음역한 말로 죽은 영혼이 거꾸로 매달려 고통받고 있는 것을 구해 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의역(意譯)할 때는 구도현(救倒懸)이라 한다. 이 아귀들은 항상 배고픈 고통에 시달리며 목이 말라 갈증을 느끼며 항상 물을 찾는데 아귀들의 눈에는 물이 불로 보인다고 한다.
축생은 짐승들의 세계를 말한다. 물론 새나 물고기 종류들도 이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제외한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축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리석은 중생계라 이 세상의 참된 이치를 알지 못하는 세계이다.
지옥, 아귀, 축생을 삼악도(三惡道)라 한다. 악업의 과보로 태어나는 곳이다. 예로부터 수행자들을 경책(警策)한 말에 사람몸(人身)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죽은 다음에 악도에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가령 사람이 죽고 난 다음 생에 축생의 몸을 받던지 아귀의 몸 등을 받는다면 사람 몸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사람이 죽어 짐승의 몸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여러 설화 속에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윤회설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의미는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 본래의 자리(定處)를 잃어버리고 헤매고만 있다는 뜻이다. 나고 죽는 생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결국 나쁜 업을 청산하지 못하여 잘못된 갈래의 길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란 뜻이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2년 2월 (제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