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
선남자여,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으뜸이니, 이른바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이며, 중생을 섭수하는 공양이며, 중생의 괴로움을 대신 받는 공양이며, 부지런히 선근을 닦는 공양이며, 보살의 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이며,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이니라.
선남자여, 앞에서 말한 공양의 많은 공덕을 한 생각 동안 닦는 법공양의 공덕에 비교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억 분과 한 털끝을 백분으로 나누었을 때의 수, 계산할 수 있는 수, 헤아릴 수 있는 수, 비유할 수 있는 수, 가장 작은 극미한 수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존중하기 때문이며,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을 출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풀이>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불교의 목적을 나타내는 이 말은 곧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덕 성취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보현행원의 참뜻도 들어 있다. 공양을 닦는다는 취지 역시 위로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는 불교의 본령에 부합되는 일이다. 모든 공양 중에서도 법공양이 으뜸이라고 강조한 이 대목은 법을 베푸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최상의 가치임을 밝혀 놓고 있다. 복이나 공덕을 유루(有漏)와 무루(無漏)로 구분하여 무루의 가치라야 불교의 참 가치임을 밝혀 놓은 법문은 반야부 경전 등에 누누이 설해져 있다. 깨진 그릇에 물이 새듯이 유루복은 결국 소모되고 만다. 샘이 없는 무루복이라야 번뇌를 극복하고 해탈을 기약할 수 있다. 이 세상에 가득한 칠보(七寶)를 남에게 보시하는 공덕보다도 경전의 사구게(四句偈)를 수지하는 공덕이 더욱 수승하다는 금강경의 말씀이나, 발심공덕을 찬탄한 화엄경의 말씀도 무루복을 성취해야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천명한 말이다.
공양 가운데서 법공양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재물 공양의 물질적 가치는 도를 깨닫는 직접적인 계기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 즉 다르마(dharma)를 알아야 깨달음을 얻어 해탈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마치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제공되어지는 음식이나 의복 등의 물질적 혜택이 고맙고 은혜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감옥을 나오도록 석방을 시켜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우선 문제라고 할 수 있듯이, 해탈의 자유를 구하는 수행의 차원에서는 법을 공양하는 일보다 더 우선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 법공양의 내용을 총괄적으로 설명한 말이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한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지 않고는 법공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법을 존중하고 또 법이 부처님을 출생하는 모체이므로 법을 위하는 일이 최상의 공양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9월 제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