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20) – 중송분 2

<경문>

내 옛적에 지은 모든 악업은 모두가 탐․ 진․치 때문이었네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악업들, 내 이제 그 모두를 참회하리라.

시방 일체중생들, 이승의 유학 및 무학, 일체 여래와 보살들,

그들 가진 공덕을 모두 따라 기뻐하리라.

시방에 있는 세상의 등불, 최초로 보리를 성취한 자여!

내 이제 모두께 권청하오니 위없는 묘한 법륜 굴러주소서,

부처님 만약 열반을 보이시려 하면 내 모두 지성으로 권청하리다.

원하오니 오래오래 티끌 수 겁에 머무시어

일체 모든 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소서.

부처님을 예경하고 찬탄하고 공양한 것과

세상에 계시어 법륜을 굴리시길 청하며

기뻐하고 참회한 모든 선근을 중생과 불도에 회향하리라.

내 일체 여래를 따라 배워 보현의 원만행을 닦아 익혀서

과거 모든 여래와 현재 시방의 부처님

그리고 미래 일체 천상과 인간의 스승께 공양 하오니

모든 뜻과 기쁨 원만케 하소서.

<풀이>

사람이 나쁜 업을 짓게 되는 근본 원인이 탐․ 진․치 삼독에 있다. 욕심, 성냄, 어리석음의 독소에 의해 악업을 지으므로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수행이다. 사리불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당신이 추구하는 열반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탐․진․치 삼독이 사라진 것이 열반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참회게로 알려진 사구게가 보현행원품 응송에 나온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잘못된 행위를 한 것은 모두 탐․진․ 치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 그릇된 행동, 그릇된 말, 그릇된 생각이 함부로 일어나게 되었으니, 이 점을 참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참회하면 좋을 일을 참회하지 않는 것은 병이 깊은 환자가 좋은 약을 마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승의 수행자들을 아직 배우는 당계에 있는 이를 유학이라 하고, 다 배워 마친 이를 무학이라 한다. 중생들로부터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수행의 공덕을 언제나 좋아하겠다는 마음이야말로 수행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부처님은 세상의 등불이시다.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처럼 중생들의 마음속에 지혜의 빛과 자비의 빛을 살려내는 분이시다. 그의 설법은 감로수로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듯이, 모든 의혹을 풀어 주고 답답함을 없애 주는 탁월한 감화력이 있다. 듣고 싶은 노래를 청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듯,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법문을 외워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법의 재산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의 일생이 법의 재산으로 채워져야 삶의 진정한 보람이 남는 것이다. 불교를 신행하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법의 재산을 상속받는 일이다. 세속의 부귀가 법재를 능가할 수 없는 것이다. 법의 가치와 법의 존엄성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야 부처님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법을 보고 살아야 한다. 부처님이《아함경》에 서 이르기를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고 하였다. 따라서 법을 보고 사는 것이 부처님을 보고 사는 것이다. 불교라는 종교 단체는 부처님을 보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요, 법을 보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법을 가까이 하는 것이 부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 부처님을 가까이 할 때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전국의 사찰을 중심으로 봉축행사가 이루어진다. 해마다 우리는 이 날을 맞이하여 부처님 오신 뜻을 생각해 본다. 부처님께서 오신 뜻이 무엇인가?

법화경에서는 부처님이 일대사인연을 위하여 이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한다. 큰일을 하기 위한 인연이 있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다. 그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중생들에게 부처의 지견을 열어 주고, 보여 주고, 깨닫게 해 주고, 들어오게 해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부처님의 지견이란 부처님이 알고 보는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말한다. 마치 지식이 없으면 알지 못하고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하다가 지식을 얻어서 알고 눈이 있어 보게 되는 것처럼 중생들의 식견의 차원을 높여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결국 불교는 마음의 눈을 뜨자는 취지다. 마음의 눈을 뜨는 자만이 부처님을 볼 수 있다. 마음의 눈을 뜬 사람의 마음속에 부처님이 오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공간의 장소로 오는 것이 아니고, 교통을 이용하여 오는 것도 아니다. 옴이 없이 오시고, 감이 없이 가시는 부처님의 현주소는 바로 중생의 마음속이다. 내 마음이 부처님 계시는 곳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살아야 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12월 제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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