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심오한 철학과 우주 만유의 현상을 가장 고차원적인 이론으로 설하고 있는 경전은 『대방광불화엄경』이다. 대승경전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이 경전은 우선 경문의 서술이 호한무비(浩瀚無比)하다. 즉 부처님의 정각의 경계를 장엄하게 묘사하여 서사적으로 표현한 전체의 경문이 드라마를 형성하고 있으면서 수많은 보살들을 등장시켜 갖가지 법문을 설한다.
또한 『잡화경(雜華經)』이라고 불리듯이 온갖 내용이 매우 복합적으로 설해져 있으며, 중생들의 근기와 상관없이, 그리고 수준의 높고 낮음에 맞추지 않고 설했다고 하여 여증이설(如證而說 : 깨달은 그대로 설함)이라고 말하여 왔다. 이 화엄경을 근본으로 한 체계화된 교법상의 이론을 화엄사상이라고 하는데, 교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화엄사상의 비중은 대단히 높았다. 화엄사상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역사적인 흐름 속에 불교 일반의 보편적인 사상으로 널리 퍼졌다.
수많은 경론 가운데 특히 화엄사상이 미친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의 불교이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화엄사상인 것이다. 화엄사상은 일찍이 신라시대의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에 의하여 선양됨으로써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발달되어 현대불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사실 화엄불교는 모든 종파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회통시키는 통불교적인 성격을 그대로 가짐으로써 모든 사상을 융합하고 있다. 이미 원교라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내려졌듯이, 모든 지상의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제교(諸敎)의 사상을 원융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 화엄사상인 것이다. 그러한 화엄사상 중에서 그 핵심요체를 가장 잘 함축하여 나타내 놓은 것은 『법성게(法性偈)』이다. 법성게는 의상(義湘)스님이 중국에 들어가 화엄종의 2조(祖)인 지엄(智儼)스님 문하에서 지은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신라의 두 천재적인 고승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은 당나라로 유학을 결심하고 함께 길을 떠났다. 도중에 노숙을 하다가 한 밤중에 갈증이 난 원효스님은 해골이 담긴 썩은 물을 모르고 마셨다. 이튿날 아침 그 사실을 안 뒤 속이 메스꺼워 구토증을 느끼던 순간, 원효스님은 ‘마음이 생기니 갖가지 법이 생기고 (心生卽種種法生), 마음이 없어지니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 (心滅卽種種法滅)’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닫고, 달리 법을 구할 것이 없다고 여겨 당나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하여 의상스님 혼자 당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가 서기 661년, 스님의 나이 37세의 일이다.
의상스님은 당나라에 머물며 지엄스님의 문하에서 8년간에 걸쳐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10년의 당나라 체류기간 중 8년 세월을 화엄공부에 바친 것이다. 의상스님은 47세가 되던 671년 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법성게를 지은 것은 668년인 445세 때라고 한다.
법성게의 원래 이름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 즉 7언 송구(頌句) 30송인 도합 210자의 글자를 도인(圖印)으로 배치하였던 것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1월 제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