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조사어록
제1장 마음 닦는 법
- 신통변화
“앞에 말씀하신 견성이 참으로 견성이라면 그는 곧 성인입니다.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보통 사람과는 다른 데가 있어야 할 텐데, 어째서 요즘 수도인들은 한 사람도 신통 변화를 부리지 못합니까?”
“너 함부로 미친 소리를 하지 말아라. 정과 사를 분간하지 못함은 어리석어 뒤바뀐 것이다.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곧잘 진리를 말하지만 마음에 게으른 생각을 내어 도리어 자격지심에 떨어지는 수가 있으니, 다 네가 의심하는 것과 같은 데에 있는 것이다. 도를 배워도 앞뒤를 알지 못하고, 진리를 말하지만 본말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그릇된 소견이지 수학이라 이름할 수 없다. 자기를 그르칠 뿐 아니라 남까지도 그르치게 하는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것인가. 대체로 도에 들어감에는 문이 많으나 크게 나누어 돈오와 점수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점수가 가장 으뜸가는 근기의 길이라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본다면 이미 여러 생을 두고 깨달음을 의지해 닦아 점점 훈습해 왔으므로,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곧 깨달아 일시에 단박 마치게 된 것이다. 사실, 이것도 먼저 깨닫고 나서 닦는 근기이므로, 이 돈과 점 두 가지 문은 모든 성인들의 길이다. 예전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아, 이 닦음으로 말미암아 증득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지해 닦아서 점점 훈습해 나타난 것이요,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에 말씀하기를 ‘이치는 단박 깨닫는 것이므로 깨달음에 따라 번뇌를 녹일 수 있지만, 현상은 단번에 제거될 수 없으므로 차례를 따라 없애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규봉스님이, 먼저 깨닫고 나서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다음 같이 이른 것이다.
‘얼음 못이 모두 물인 줄은 알지만 햇볕으로써 녹일 수 있고, 범부가 곧 부처인 줄은 깨달으나 법력으로써만 훈수할 수 있다. 얼음이 녹아 물이 흘러야만 대고 씻을 수 있고, 망상이 다해야만 마음이 신령스레 통하여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알아라. 현상의 신통변화는 하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점 닦아 감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신통이 자재한 사람의 경지로는 오히려 요괴스런 짓이고, 성인의 분수에는 하찮은 일이다. 비록 나타날지라도 요긴하게 쓰지 않을 것인데, 요즘 어리석은 무리들은 망령되어 말하기를, ‘한 생각 깨달을 때 한량없는 묘용과 신통변화를 나타낸다.’ 하니, 이와 같은 생각은 이른바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본말을 알지 못한 것이다. 앞뒤와 본말을 알지 못하고 불도를 찾는다면 모가 난 나무를 가지고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것과 같으리니,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방편을 모르기 때문에 미리 겁을 먹고 스스로 물러나 부처의 종성을 끊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이 밝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깨달음을 믿지도 않아 신통 없는 이를 보고 업신여긴다. 이는 성현을 속이는 것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