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제10장 17. 사리숲을 빛내는 사람들

제3편 대승경전

제10장 열반의 기쁨

  1. 사라숲을 빛내는 사람들

사자후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 어떤 비구가 이 사라숲을 빛나게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셧다.

“가르침을 잘 들어 그 뜻을 밝히고, 중생을 위해 널리 말해주는 비구라면 이 숲을 빛나게 할 것이오.”

사자후보살이 말했다.

“그런 비구라면 아난다이겠습니다. 아난다는 그릇에 담긴 물을 다른 그릇에 그대로 옮기듯이,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잘 듣고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안으로 시방세계 보기를 손바닥 안에 아마라 열매 보듯이 하는 비구라면 또한 이 숲을 빛나게 할 것이오.“

”그런 비구라면 아니룻다이겠습니다. 아니룻다는 천안으로 온 세계를 환히 보되조금도 막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고요를 즐기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비구라면 또한 이 숲을 빛나게 할 것이오. 그런 비구라면 카사파이겠습니다.”

“오로지 중생을 위해 공덕을쌓을 뿐 자기 이익 때문에 공덕을 쌓지않는 <갈등없는삼매> 에 든 비구라면 또한 이 숲을 빛나게 할 것이오.”

“그런 비구라면 수부티이겠습니다.”

“신통을 잘 쌓고 지혜를 성취한 비구라면 이 숲을 빛나게 할 것이오.”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말하고 금강석처럼 부서지지 않는 몸으로 걸림없이 자유로운 비구라면 이 숲을 빛나게 할 것이오.”

이때 사자후보살이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 그것은 다만 부처님 한 분뿐입니다. 원컨대 큰 자비를 베풀어 이 숲이 빛나도록 여기 오래 머물러 주십시오.”

“머문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이오. 교만을 가지고는 해탈을 얻을 수 없소. 그러기 때문에 머무르지 않소. 여래는 모든 교만을 아주 떨쳐 버렸는데 어찌 여기에만 머물러 있겠소. 또 머문다는 것은 생사가 있는 유위의 법이오. 그러나 여래는 이미 유위의 법을 끊었는데 어찌 이곳에만 머물겠소. 허공은 시방세계 어디에고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여래도 동서남북 상하 어는 곳에도 머무는 일이 없소.”

사자후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물었다.

“열반을 어째서 모양이 벗음이라 하십니까?”

“모양에 집착한 이는 어리석음을 내고, 어리석기 때문에 애욕을 일으키며, 애욕으로 인해 얽매이고, 얽매이므로 태어나게 되오. 태어나므로 죽게되고, 죽기 때문에 무상한 것이 아니오? 그러나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면 어리석음을 내지 않고, 어리석지않으므로 애욕이 없으며, 애욕이 없으므로 얽매임이 없고, 얽매임이 없으므로 태어나지 않소. 태어나지않으면 죽는 일이 없고, 죽임이 없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아니겠소? 이런 뜻에서 열반을 영원하다고 하고, 모양 없는 선정[무상정]을 대열반이라고 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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