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대승경전
제3장 보살의 덕
- 대승 보살의 방편
지승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어떤 것이 보살의 방편이며, 보살은 어째서 방편을 씁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방편을 쓰는 보살은 한 덩이 밥을 가지고도 일체 중생에게 보시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보살은 한 덩이 밥을 베풀 때에도 일체 중생이 지혜를 얻도록 발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중생과 보리로 회향하게 된다. 이것이 보살이 쓰는 방편이다. 보살이 보시하는 사람을 보면 같이 기뻐하는 마음을 내고, 이 기뻐하는 선근이 중생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보살이 쓰는 방편이다.
보살이 임자 없는 꽃이나 향을 볼 때에, 혹은 바람에 날리는 잎새를 보더라도 그것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발원하기를, ‘이 선근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지혜를 갖추어지이다’ 라고 한다. 이것이 보살이 쓰는 방편이다. 보살은 시방세계 중생들이 누리는 온갖 즐거움을 보면, 일체 중생이 모든 것을 아는 지혜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한다. 만약 고통받는 것을 보면 중생들을 위해 모든 죄를 참회하고, 중생들의 고통을 모두 내가 대신 받아 그들로 하여금 기쁨을 받도록 원한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마침내는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만을 누리기를 원한다. 이것이 보살이 쓰는 방편이다.
보살은 한 부처님께 예배 공양 찬탄하면 곧 모든 부처님께 예배 공양 찬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은 한 법계 한 법신이며,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살이 쓰는 방편이다.
보살은 자기 자신이 모자란다 할지라도 스스로 경멸하지 않고, 게송 하나라도 알게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이 한 구절의 게송을 아는 것이 곧 모든 법을 아는 길이다. 모든 법이 이 게송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도시와 시골로 두루 다니면서 자비심으로 부지런히 법을 설한다. 이양이나 명망이나 찬탄을 구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들려 준 이 게송의 인연으로 일체 중생이 모두 아난다와 같이 불법을 많이 듣고 여래의 변재를 얻어지이다’ 하고 원한다. 이것이 보살이 쓰는 방편이다.
보살이 방편으로 보시할 때 육바라밀(六波羅蜜)이 갖추어진다. 왜냐하면 보살은 걸식하는 사람을 보면 아끼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져 큰 보시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시(布施)바라밀이다. 스스로 계행을 닦고 계행을 가지는 이에게 보시하고, 계행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지도록 권한 후에 보시한다. 이것이 지계(持戒)바라밀이다. 스스로 성내는 마음을 없애고 자비롭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중생을 보살피고 평등히 보시한다. 이것이 인욕(忍辱)바라밀이다. 음식이나 약을 보시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몸과 마음에 정진을 갖추어, 오고 가고 앉고 서는 온갖 동작을 자유롭게 한다. 이것이 정진(精進)바라밀이다. 중생들이 그 보시를 얻으면 마음이 안정되어 기뻐하고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선정(禪定)바라밀이다. 이와 같이 보시를 한 다음에는 돌이켜 생각한다. ‘보시를 한 사람은 누구이며 보시를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누가 그 복을 받을 것인가.’ 이렇게 헤아려 보시한 사람과 보시 받은 사람과 그 갚음을 가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지혜(智慧)바라밀이다. 이와 같이 보살이 방편을 쓰면 육바라밀이 갖추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