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초기경전
제1장 지혜와 자비의 말씀 1
- 고행과 바른 수행
부처님께서 녹야원에 계실 때였다. 발가숭이 이교도 카샤파가 부처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당신은 온갖 고행을 싫어하고 고행자를 비방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카샤파여, 그것은 내 뜻이 아니오. 또 내 말을 바르게 전한 것도 아니오. 나는 천안으로써 고행자가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지는 것도 보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봅니다. 이와 같이 고행자 중에는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는 이도 있는데, 어떻게 통틀어 고행을 싫어하고 고행자를 비방할 수 있겠소.”
카샤파는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알몸이라든가 공양을 받지 않는 일, 또는 쇠똥을 먹고 나무껍질이나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가리며, 항상 서 있거나 하룻밤에 세 번씩 목욕을 하는 것 같은 고행은 사문과 바라문에게도 알맞은 일이라고 합니다.”
“카샤파, 아무리 그와 같은 고행을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계행과 선정과 지혜가 없으면 그것은 참된 사문이나 바라문과는 멉니다. 화내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심을 기르고 번뇌가 없어 현재에 깨달아 있으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문이요 바라문이라고 할 것이오.”
“부처님, 사문이나 바라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 어려움이 곧 고행을 닦는다는 뜻은 아니오. 고행쯤이야 물항아리를 나르는 하녀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화내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심을 기르고 번뇌가 없이 현재에 깨닫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교도 카샤파는 다시 물었다.
“부처님, 그러면 그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성취란 어떤 것입니까?”
“계행의 성취란 이런 것이오.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 스스로 깨닫고 남을 가르칠 때에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듣고 신심을 내어 출가합니다. 그래서 계율에 따라 행동을 삼가고 바른 행동으로 즐거움을 삼으며, 조그마한 허물도 두려워하고 감관을 다스려 바른 지혜를 갖춥니다.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으며, 여자를 범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거나 거친 말을 쓰지 않으며 바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오. 또 선정의 성취란, 눈으로 사물을 볼 때라도 감관을 잘 지켜 그 모양에 팔리지 않고 가나 오나 앉으나 누울 때에도 항상 마음의 눈을 밝히어 바른 마음과 바른 생각에 머뭅니다. 새가 날개밖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듯이 몸을 가리는 옷과 배를 채우는 밥으로 만족하고, 나무 밑이나 동굴 속, 숲이나 묘지 등 한적한 곳을 찾아 고요히 앉소. 그래서 탐욕과 성냄과 게으름과 의심을 버리고, 건강하고 자유롭고 안온한 사람이 되어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오. 그리고 지혜의 성취란, 선정에 의해 고요하고 맑고 밝아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이 세상의 덧없음과 ‘나’라고 내세울 것 없음을 알며, 다섯 가지 신통을 얻고 네 가지 진리를 알아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했다는 분명한 자각을 가지는 것이오. 카샤파여, 이보다 더 뛰어난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성취는 없소. 계와 고행과 지혜와 해탈을 칭송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지만, 여래처럼 맑고 높은 계와 고행과 지혜와 해탈을 갖춘 사람은 없을 것이오. 그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자가 바로 여래입니다. 나의 이 말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사문 고타마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자후를 하지만 그것은 신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한다 할지라도 만족시키거나 믿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신념을 가지고 사자후를 합니다. 많은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고 만족시키며 믿게 합니다. 카샤파여, 일찍이 라자가하의 영축산에서 당신과 같은 고행자 니그로다는 욕망을 없애는 최고 형식에 대해서 내게 물어 대답을 듣고 무척 기뻐한 일이 있소.”
이 가르침을 듣고 이교도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부지런히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