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부처님의 생애
제1장 출가 이전
- 네 개의 문
싯다르타는 숲속에서 명상에 잠겼다가 돌아온 뒤부터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잦았다. 싯다르타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일이 자주 일어날수록 슛도다나왕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다. 왕은 그를 즐겁게 하여 홀로 사색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항상 마음을 썼다. 대신의 자녀들 중 같은 또래를 곁에 머물게 하여 그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싯다르타는 홀로 있고 싶어했다. 오랫동안 궁전 속에만 있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문득 궁전밖에 나가 바람이나 쏘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 뜻을 부왕에게 말씀드리자 왕은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왕은 곧 화려한 수레를 마련하게 하는 한편 신하들에게 분부하여 태자가 이르는 곳마다 값진 향을 뿌리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여 태자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도록 일렀다.
싯다르타를 태운 수레가 동쪽 성문을 막 벗어났을 때였다. 머리는 마른 풀처럼 빛이 바래고 몸은 그가 짚은 지팡이처럼 바짝 마른 노인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 화려한 궁중에서만 자란 태자는 일찍이 그와 같이 참혹한 노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시종에게 물었다.
“왜 저 사람은 저토록 비참한 모양을 하고 있느냐?”
시종은 대답했다.
“사람이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점점 나이 먹으면 기운이 빠지고 숨이 차 헐떡거리게 되고, 눈이 어두워져 앞을 잘 못보게 되며, 이가 빠져 굳은 것은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초라하게 되고 맙니다.”
이 말을 들은 태자의 마음에는 어두운 그늘이 스며들었다.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저렇게 된다?’ 침통하게 혼자말을 했다. ‘그렇다면 나도 결국은 저와 같은 늙은이가 되겠구나!’
시종은 자신도 모르게 태자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태자이건 시종이건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저런 노인의 모양을 면할 수 없습니다.”
시종의 말을 듣고 난 태자는 한동안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힘없는 소리로 “수레를 왕궁으로 돌려라!” 하고 일렀다.
모처럼의 소풍길에서 되돌아선 태자의 마음에는 또 한 겹의 어둠이 덮이게 된 것이다. 싯다르타의 번민하는 모습을 본 부왕은 아시타 선인의 예언대로 싯다르타가 혹시 출가를 하게 되지나 않을까하고 걱정을 했다. 그리하여 태자의 생활이 전보다 한층 더 호화롭고 기쁨에 차도록 마음을 썼다.
그 뒤 어느 날 태자는 또 답답한 궁중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려 했다. 왕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번에는 길가에 궂은 것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도록 단단히 당부를 해 놓았다. 수레는 남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 얼마쯤 가다 보니 길가에 누더기를 뒤집어 쓴 채 쓰러져 신음하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은 파리하고 팔다리는 뼈만 앙상했다.
싯다르타는 수레를 멈추게 하고 시종에게 물었다.
“저 이는 웬 사람인가?”
시종은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은 지금 병에 걸려 앓고 있습니다. 이 육신을 가진 사람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 전혀 앓지 않고 지낼 수는 없습니다. 앓는다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입니다. 저 사람은 지금 아픔을 못 이겨 신음하고 있는 중입니다.”
태자는 그 자리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왜 병에 걸려 고통을 받아야만 할까? 늙음의 고통이나 질병의 고통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그날도 태자는 도중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날씨는 맑게 개어 화창했지만 태자의 눈에는 모든 것들이 병들어 빛이 바래 보였다.
또 어느 날 싯다르타는 서쪽 성문을 벗어나 들로 나갔다. 수레를 끌고 달리는 말처럼 오늘만은 어쩐지 그의 마음도 가벼웠다. 태자의 수레가 들길을 지나 인적이 드문 고요한 숲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죽은 시체를 앞세우고 슬피 울며 지나가는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깜짝 놀란 싯다르타는 시종에게 물었다.
“저건 무엇이냐?”
시체인 줄 뻔히 알고 있는 시종은 태자의 반응이 두려워 입을 열지 못했다. 태자는 성급하게 다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이기에 대답을 주저하느냐?”
시종은 하는 수 없이 말문을 열었다.
“죽은 사람이올시다. 죽음이란 생명이 끊어지고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이별을 가져다 주는 가장 슬픈 일입니다.”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본 것처럼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금 자기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죽음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해가 기운 뒤에야 수레가 돌아오는 걸 보고 부왕은 흐뭇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수레가 가까이 다다랐을 때 싯다르타의 얼굴은 비참하게 그늘져 있었다.
이날부터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잦게 되었다.
며칠 뒤 싯다르타는 북쪽문을 거쳐 밖으로 나갔다. 북쪽 성문을 나서자 우람한 수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속으로 난 오솔길로 텁수룩한 머리에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옷은 비록 남루하지만 걸음걸이는 의젓했고 얼굴에는 거룩한 기품이 감돌며 눈매가 빛났다. 수레 가까이 온 그 사람은 태자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도 의젓했으므로 태자는 자신도 모르게 수레에서 내려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사람은 낭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출가 사문이오.”
출가 사문이란 세상의 모든 일을 버리고 집을 나와 도를 닦는 수행자를 말한다. 싯다르타는 다시 물었다.
“출가한 사문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나는 일찍이 세상에서 늙음과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자신과 이웃을 통해 맛보았소. 그리고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알았소. 그래서 부모와 형제를 이별하고 집을 떠나, 고요한 곳에서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도를 했소. 내가 가는 길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평안의 길이오, 나는 이제 그 길에 이르러 영원한 평안을 얻었소.”
이 말을 남기고 사문은 태자의 곁을 떠나 휘적휘적 가버렸다. 사문의 말을 듣고 난 싯다르타의 가슴에는 시원한 강물이 흐르는 듯했다. 그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 사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태자의 마음에 무엇인가 굳은 결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