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1. 참선과 화두

이것이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약방문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니니라
불이라고 말하여도 입이 타는 것이 아니듯이

앞장의 <자기를 돌아보는 공부>에서는 지금이 바로 수행할 때라는 것과, 참된 신심 속에 깨달음이 있고 수행을 하면 그 깨달음이 스스로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가장 좋은 수행법은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는 것임을 밝힌다.

이 장에서는 자기를 돌아보는 가장 요긴한 공부 방법인 참선법, 특히 그 참선법 중에서 화두 드는 법을 중심으로 놓고 살펴보고자 한다.

참선법은 ‘내 마음을 가지고 내 마음을 잡는 방법’이다.

우리 자신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몸뚱이는 자동차 자체와 마찬가지요 마음자리는 운전수와 같은 것이다. 곧 운전수가 참된 ‘나’이지, 자동차와 같은 이 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자동차를 생각해보라. 공장에서 갓 나올 때는 윤이 나고 성하지만, 몇 달만 굴리면 고물이 되기 시작하고, 오래 사용하여 말을 잘 듣지 않게 되면 폐차를 해야 한다.

이 몸뚱이도 총각, 처녀 시절에는 잘나고 예쁘다고 큰소리 치고 다니지만, 늙어지면 별수가 없다. 늙고 병들어 수명이 다하면 버려야지,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법이란 무엇인가? 껍데기인 자동차가 아니라 운전수인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불법이다. 곧 부처님께서 일평생 동안 설하신 것이 모두 이 마음자리를 찾게끔 이끄는 가르침이었다. 이에 비해 참선법은 자기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자리를 직접 찾아나서는 수행법이다.

참선의 선은 ‘안정되었다.’는 뜻이다. 조용한 마음, 집중된 마음, 맑은 마음, 바른 마음, 안정되고 고요한 마음을 선이라고 한다.

이 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부처님의 교법 안에 있는 선을 관선이라 하고 부처님의 교법 밖에 있는 선을 참선이라고 한다.

관선이라고 할 때의 관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 마음으로 지극하게 생각해서 보는 것으로, 달리 관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관법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념처라는 수행법이 있다.

념처는 도 닦는 사람이 일체 만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가르친 네 가지 관법이다.

첫째는 관신부정으로, 이 몸뚱이라는 것이 본래 깨끗하지 못한 것임을 관하는 수행법이다. 아무리 얼굴이 예쁘고 외모가 준수하다 하여도 이 몸은 피와 고름과 오물로 가득 차 있으며, 결국에는 썩고 말 부정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관심무상으로, 이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되지 아니하고 무상한 것임을 관하는 수행법이다. 시시각각 변하고 덧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관수시고이다. 몸과 마음으로써 내가 받아들이는 모든 것, 내가 그것을 구하여 내 것으로 하는 모든 일은 다 괴로운 것임을 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관법무아로, 일체 만법에는 그 자성이 없음을 관하는 수행법이다. 일체 만법은 어느 한 가지도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며, 나라고 하는 자성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념처에 의해 나의 몸과 마음을 관하게 되면 그 어떤 사람이나 물질에 대해 집착할 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이 사념처 등의 관법수행이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하고 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수행하는 방법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특히 중국에서는 참선수행법이 크게 발달하였고, 남방에서는 관선이 수행하였으며, 티벳과 몽고 등에서는 만다라, 다라니수행법에 의존하는 밀교가 주류를 이루었다.

관선에 대비되는 참선은 중국에서 확립된 부처님 설법의 수행법으로, 간화선과 묵조선이라는 두개의 큰 가닥이 있다.

묵조선은 묵묵히 자기 마음자리를 돌아보는 수행법이고, 간화선은 화두에 의지하여 닦는 선법으로, 달리 화두선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간화선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함께 공부해보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화두선법이다.

日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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