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5. 요긴히 정진하라

인생은 결코 긴 것이 아니다. 죽음을 향한 길은 바쁘고 또 바쁘다.

흐르는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무수히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가지만, 잠깐 사이에 하루하루가 지나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며 그렇듯 무상하게 인생은 끝나가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번뇌망상의 집착을 끊지 아니하고 공부를 하지 않다가, 세월이 지나 늙은 다음에 뉘우쳐서 시작하려 해봐야 잘되지가 않는다. 몸이 늙으면 기력도 쇠잔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아무리 공부를 해도 잘되지 않는 것이다.

오랫동안 도를 닦지 않은 이 몸이기에 만일 금생에까지 닦지 않으면 백천만겁에 다시 불법을 만나기가 어렵게 된다. 어떻게 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있으며 일생을 닦지 않고 마칠 수 있겠는가?

조선 중기에 환성 지안선사라고 하는 큰스님이 계셨다. 이 스님이 석왕사 대법당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법당 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키는 9척 장신이고 화등잔처럼 커다란 눈에서는 빛이 쏟아져 나오며, 코는 주먹만큼 큰 굉장한 거인이었다. 그 거인이 설법하는 스님을 쓱 쳐다보더니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난 또 누구라고, 잣벌레 어르신네가 대단해지셨구먼.”

그리고는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대중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여 스님에게 여쭈었다.

“웬 사람이 스님께 잣벌레라고 합니까?”

“그 사람은 부처님 당시의 영산화상에서 화엄신장이었던 분이니라. 나는 그때 잣벌레였는데, 부처님이 법문을 하실 때마다 법상에 붙어서 법문을 들었다. 그때 잣벌레로서 부처님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 그 다음 생에 인간의 몸을 받아 중이 되었고, 오늘날의 화엄대법사가 된 것이니라. 그때로부터 삼천 년이 지났지만 그 화엄산장은 나이를 몇 살밖에 더 먹지 않은 것 같구나.”

이 이야기에서처럼 영산회상 당시의 잣벌레도 화엄대법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잣벌레가 아니라 인간의 몸을 받아 살고 있다. 우리가 지금 발심하여 수행한다면 화엄대법사 정도가 아니라 부처라도 능히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의 열쇠는 바로 이 생에 닦느냐, 닦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이 생에, 아니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보라. 이 몸뚱이는 오래지 않아 마치고 말 것인데 다음 생을 어찌 기약하며 내일을 어찌 믿을 것인가?

옛날, 그림을 잘 그리고 단청하는 기술이 좋은 청화원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청화원은 단청을 해주고 돈이 생길 때마다 고기 안주에 한잔 술을 즐겨 마셨고, 기방에도 자주 출입을 하였다. 청화원은 그야말로 시원찮게 중노릇을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다.

염라대왕의 명을 받은 일직사자와 월직사자가 들이닥친 것이다.

“청화원은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라. 이제 세상 인연이 다 하였으니 함께 떠나자.”

‘아이쿠, 염라대왕이 나를 이렇게 빨리 데려갈 줄이야. 내 평소 소행으로는 잡혀가는 즉시 지옥 감방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부디 7일만 있다가 데리고 가십시오. 평생 중노릇 한번 변변히 하지 못했는데 7일 동안만이라도 열심히 도를 닦고자 합니다. 중노릇 잘할 수 있게 말미를 주십시오.”

그러나 젊은 일직사자는 염라대왕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당장 포박을 하려 했다. 청화원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7일만 말미를 줄 것을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그 애원이 하도 간절하자 나이든 월직사자가 젊은 일직사자를 달랬다.

“우리는 또 데리고 가야 할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에게 갔다가 돌아오면 7일 정도는 걸릴 것이니, 그때까지만 봐주도록 하세.”

이렇게 하여 청화원의 목숨은 7일 연장되었다.

‘7일 동안의 용맹정진! 그동안 무슨 공부를 해도 제대로 할 것인가?’

고민을 하던 청화원은 몇 해 전 선방 옆을 지나다가 우연히 듣게 된 조실스님의 법문이 문득 떠올랐다.

중국 제일의 거사요 도인이신 방거사가 망연히 앉았다가, 이미 도를 깨달은 딸 영조에게 넌지시 한 마디를 던졌다.

“영조야, 한 수행자가 선사를 찾아가서 물었느니라. ‘어떠한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밝고 밝은 백 가지 풀 끝에 밝고 밝은 조사의 뜻이다.’ 이 선사의 대답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영조는 아버지의 말씀이 끝나기가 바쁘게 대뜸 욕설을 퍼부었느니라.

“머리는 희고 이가 누렇게 된 늙은이의 소견이 아직도 저 정도밖에 되지 않다니!”

“그럼 너는 불법의 대의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밝고 밝은 백 가지 풀 끝에 밝고 밝은 조사의 뜻입니다.”

이 대답에 방거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긍정했느니라. 수좌들이여, ‘명명백초두에 명명조사의’라는 말의 뜻을 알면 염라대왕이 합장하여 무릎을 꿇고, 삼세의 모든 부처님, 역대 조사스님들이 더불어 같이 춤추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청화원은 조실스님의 법문 중 ‘염라대왕이 합장하고 무릎을 꿇는다.’고 한 말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 순간부터 청화원은 ‘밝고 밝은 백 가지 풀 끝에 밝고 밝은 조사의 뜻이 있다.’고 한 말씀의 뜻을 알고자 열심히 참선을 했다.

‘도대체 무슨 뜻이 담긴 말인가?’

‘그 뜻이 무슨 뜻인고?’

‘무엇인고?’

‘무언고?’

‘?’

이렇게 7일 남은 생명을 다 바쳐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일심으로 의문을 풀고자 하다가 완전히 삼매의 경지에 들어갔다.

마침내 7일이 지나가고 다른 곳을 다녀온 일직사자와 월직사자가 소리쳤다.

“청화원아, 나오너라. 이제 염라대왕을 뵈러 가자.”

그러나 청화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절 안을 샅샅이 뒤져도, 온 나라 안을 이 잡듯이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염라대왕이 친히 나서서 모든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다 뒤져도 청화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색즉시공! 색이 공해 버렸으므로, 이 색신이 그냥 공신이 되어버린 것이요, 마음이 삼매에 들어 공하여졌으므로 몸뚱이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염라대왕이 아무리 잡아가려 해도 보이지 않으니, 잡아갈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이 청화원처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용맹정진해 보라. 죽음도 염라대왕도 앞을 막지 못한다. 아침 이슬과 저녁 연기같이 일순간에 흩어져버리는 부귀와 영화들. 이 실체를 분명히 알아서 헛된 세월을 보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자기를 돌아보고 닦아가는 길밖에 없다.

꾸준히 마음자리를 돌아보고 점검하면, 어느 순간 일념 사이에 마음자리 자성불과 상응하여 앞뒤의 경계가 끊어지고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도리를 체득하여 성불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도 능히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

간절히 바라건데, 언제나 주인공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도록 하라. ‘부처가 되겠다.’는 확고한 신심을 화두를 굳건히 잡고 불철주야 노력하라. 그리고 마음이 흩어질 때마다 옛 성현과 자기를 돌아보면서 거듭거듭 결심을 새롭게 가꾸도록 하라. 틀림없이 분발심이 날 것이고, 마침내 생사의 경계에 대자재를 얻어서 모든 중생을 성분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기를 돌아보는 공부.

바로 이 속에 성불의 비결이 있다. 부디 돌아보고 또 명심하여 마음자리 부처를 회복하여지이다.

日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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