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거(山居)

山居

바루 하나, 물병 하나, 가느다란 주장자 하나
깊은 산에 홀로 숨어 마음대로 살아가네
광주리 들고 고사리 캐어 뿌리채로 삶나니
누더기로 머리 싸는 것 나는 아직 서툴다

내게는 진공(眞空)의 일없는 선정이 있어
바위 틈에서 돌에 기대어 잠만 자노라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느냐고 누군가 불쑥 묻는다면
헤진 옷 한 벌로 백년을 지낸다 하리라

한종일 소나무 창에는 세상 시끄러움 없고
돌 수곽에는 언제나 시냇물이 맑다
다리 부러진 솥 안에는 맛난 것 풍족하니
무엇하러 명리와 영화를 구하랴

흰 구름 쌓인 속에 세 칸 초막이 있어
앉고 눕고 거닐기에 스스로 한가하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이야기하는데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갑네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아 헛된 명예 끊었고
돌병풍을 의지하여 세상 인정 버렸다
꽃과 잎은 뜰에 가득한데 사람은 오지 않고
때때로 온갖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들리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오는 사람은 없고
혼자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었노라
석 자 되는 사립문을 반쯤 밀어 닫아두고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한가로이 지내노라

나는 산에 살고부터 산이 싫지 않나니
가시 사립과 띠풀 집이 세상살이와 다르다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추녀 끝에 떨치는데
시냇물은 가슴을 뚫고 서늘하게 담(膽)을 씻어내는구나

일없이 걸어나가 시냇가에 다다르면
차갑게 흐르는 물 선정을 연설하네
물건마다 인연마다 진체(眞體)를 나타내니
공겁(空劫)이 생기기 전의 일을 말해서 무엇하리
懶翁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