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자리를 걷어가지고 그냥 해산한다 해도 그것은 일 없는 데서 일을 만들고, 바람 없는 데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는 일정한 것이 없고 일에는 한결같음이 없으니, 이 산승의 잔소리를 들으라.
담담하여 본래부터 변하는 일이 없고, 확 트여 스스로 신령히 통하며, 묘함을 다해 공(功)을 잊은 공(空)한 곳에서, 적조(寂照)의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 하나는 말 있기 전에 완전히 드러나, 하늘과 땅을 덮고 소리와 빛깔을 덮고 있었다. 서천의 28조사도 여기서 활동을 잊어버렸고 중국의 여섯 조사도 여기서 말을 잃어버렸다. 몹시 어수선한 곳에서는 환히 밝고, 환히 밝은 곳에서는 몹시 어수선하니 왕의 보검과 같고 또 취모검(吹毛劍)에 비길 만하여 송장이 만 리에 질펀하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땅이 산을 만들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간직했으나 옥의 티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큰 코끼리[香象]가 강을 건널 때, 철저히 물결을 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3현·3요·4료간·4빈주로서 완전히 죽이고 완전히 살리며, 완전히 밝게 하고 완전히 어둡게 하며, 한꺼번에 놓고 한꺼번에 거두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서 하며, 진실이면서 거짓을 덮지 않고 굽으면서 곧음을 감추지 않소.”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니 어디로 가나 티끌이 아니다.”
주장자를 내던지고,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라 한다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린 형세요, 산의 얼굴에 구름의 그림자로다. 방(龐)거사가 딸 영조(靈照)에게,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라 하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물었을 때, 영조는
이 늙은이가 머리는 희고 이는 누르면서 이따위 견해를 가졌구나’하였다. 다시 거사가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니 영조는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입니다’ 하였다.
거사는 말은 지극하나 뜻이 지극하지 못하고, 영조는 뜻은 지극하나 말이 지극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말과 뜻이 지극하더라도 나옹의 문하에서는 하나의 무덤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말해 보라. 그 허물은 어느 쪽에 있는가.”
한참 있다가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오.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懶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