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태어나서 80∼90년간 하루 밥 세끼 잘 챙겨먹으며 건강하게 사는데 만족한다면, 그래서 그 속에 초월도 없고 신화도 없고 자유도 없다면 우리네 인생 자체가 너무 서러운 게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언뜻 돌아보면 대단히 초라하고 무미건조하고 의미 없어 보여도 때로는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때로는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이 원효의 자유,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다는 그의 무애론(無碍論)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입니다.
원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요. 원효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지극히 구체적인 보통인들의 밑바닥 삶까지 완벽하게 내려왔던 사람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공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효의 글 중에서 ‘공자도 대단한 성인이지만 부처님과 더불어 논하기는 힘들다’고 비판한 구절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노자나 장자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원효의 저서 속에는 현지우현지(玄之又玄之), 묘계환중(妙計環中) 등 노장 철학의 문구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자는 그야말로 우리들의 시시한 삶으로부터 너무 멀리 가버렸고, 장자는 높은 산에 앉아서 기웃거리고 있을 뿐 사실상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비해 원효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밑바닥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원효가 밑바닥에만 머물렀다면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원효는 끝없이 초월을 시도하고 끝없이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원효다운 원효’라 하겠습니다.
『삼국유사』에서도 원효를 제목 붙이기를 원효불기(元曉不羈) 즉 원효는 굴레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아무 걸림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송고승전」에서도 그가 일정한 틀에 박히지 않고 상당히 자유로왔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걸림이 없음이 본질적으로, 그리고 삶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불교는 삶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따라 해야 할 실천적 가르침입니다.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인식의 내용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는 마치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끊임없는 동적인 과정, 정지하지 않는 것, 끝없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실존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리는 온 몸으로 획득되고, 살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론이나 인식이 아니라, 실존으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상의 긴장된 삶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해방’이란 마음 놓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을 들고 마음조리면서 사는 것은 언제나 불안합니다. 그리고 초조합니다. 스스로 만든 감옥을 탈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탐욕적인 여러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도 해방될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초월하게 되며, 초월함으로써 해방되는 것이라고 이르셨습니다. (『잡아함경』 중의 연소경)
불교도들이 행하는 주된 노력은 모든 조직화로부터의 해방 또는 해탈입니다. 일에서 걸림이 없으므로 무애(無碍)라 하고, 걸림이 없음으로 해탈인 것입니다. 인간은 온갖 사슬과 속박으로부터 마땅히 해방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허구의 자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너무 자아가 강해서 그릇이 물이 가득 차 있다면 제 이야기는 물론이요 원효의 이야기도, 부처님 이야기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선 거절부터 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누에는 자신이 토해낸 실로 자신을 묶어 마침내 고치 속에서 꼼짝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미는 자신이 뽑아낸 거미줄을 둘러치고 그 위를 자유롭게 다닙니다. 잘못하면 스스로를 뽑아낸 실에 구속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실을 자유로운 활동의 무대로 만드는 지혜, 그것은 보살의 지혜입니다.
이것은 『입능가경』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원효는 자아로부터 벗어난 해방자였고 자유인이었습니다. 불교로부터도, 승려라는 행색으로부터도, 지식으로부터도, 명예로부터도, 계율로부터도 그는 언제나 자유로웠습니다.
불교에 입문해 고승대덕으로 추앙받던 그가 갑자기 승복을 훌훌 벗어버리고 스스로를 소성거사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속인들처럼 사랑을 하고 아들을 낳습니다. 한편 그의 저서에서 드러나듯이 원효가 얼마나 깊은 사유를 했습니까. 그런데 어느날 길거리에서 춤추고 박을 치고 다니며 사람들로부터 돌팔매를 맞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지식으로부터도 자유로왔습니다. 아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낫고, 즐기는 것보다는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원효는 언어가 아닌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계율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이론적으로 규명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이를 구현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무애사상(無碍思想)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자유는 인간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항상 마음의 자유, 자아로부터의 해탈을 강조합니다. 물론 바깥으로부터의 사회적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여전히 중요합니다. 이는 인간이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이상 우리의 공업(工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초점은 우선 자아로부터의 해탈에 맞춰져 있습니다. 주위에서 아무 간섭도 안하고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졌을 때 그래서 온갖 잔소리들을 안들어도 될 때 우리가 편안할 것 같지만, 막상 자기 번뇌망상에 얽매이기 시작할 때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를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중요한데 원효는 자아로부터의 해탈을 위해 일정한 범위나 틀 속에 안주하기를 거부했다. 그 주체적인 방법으로 유방외(遊方外)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범위를 스스로 설정을 하고 나이가 몇이니 내 직업이 무엇이니 하는 범위를 설정하곤 합니다. 그런데 원효는 어떤 카테고리도 넘어서서 놀고자 한 것입니다. 원효가 ‘유방외(遊方外)’, ‘초출방외(超出方外)’ 등의 표현을 즐겨 썼던 것도, 무애의 자유인으로 행동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나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원효 『화엄경』에 나타나는 이 게송을 재발견했고, 이로부터 無碍라는 용어를 꺼내호로병에 이를 새겨서 다녔습니다.
걸림 없이 행동하는 원효의 모습을 『송고승전』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의 발언은 미친 듯 난폭하고, 예의에 어긋났으며, 행동은 상식의 선을 넘었다. 거사와 함께 주막 이나 기생집에도 들어가고, 誌公과 같이 금빛 칼과 쇠지팡이를 가지기도 했고, 혹은 주석서를 써서 『화엄경』을 강의하기도 하고, 혹은 사당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즐기고, 혹은 여염집에서 유숙하고, 혹은 산수에서 坐禪하는 등 계기를 따라 마음대로 하여 일정한 규범이 없었다.
고려 명종(明宗) 때 문신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에서는 원효가 시중 잡배들과도 어울렸다고 했고, 『삼국유사』에서는 원효가 노래하고 춤추며 천촌만락을 다니며 대중을 교화했다고도 전합니다. 길거리에서 ‘자루 없는 도끼’를 빌리고자 노래를 했다거나, 소를 타고 거리를 다니면서 『금강삼매경』의 주석을 했다거나, 논에서 벼를 베고 있는 여인에게 희롱삼아 그 벼를 달라고 했다거나, 혜공과 함께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먹었다거나, 사복과 더불어 죽은 사복모를 장사지냈다는 등의 여러 모습에서도 원효의 활달하고 자유로운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물론 길거리를 다니며 여인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다니는 광경이나, 문천교를 지나다가 일부러 냇물에 떨어져 옷을 적셨다는 행동에는 설화적 윤색도 보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원효의 환속을 실계나 파계로 평가해 오지만, 원효 자신은 그러한 행위를 과연 파계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특히 일정한 계율의 틀 속에 갇혀버리는 경우야말로 계를 범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그의 확신이나, 『보살계본지범요기』 등에 나타나는 계율에 대한 적극적이고도 확신에 찬 그의 이해 등을 염두에 둘 때, 원효 스스로 요석공주와의 사랑을 파계로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설총을 얻은 뒤에 스스로 승복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자신을 낮추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이광수가 『원효대사』에 서술한 것처럼 항상 자신이 잘못했다고 굽신거리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는 원효는 잘못해서 여자를 취했느니, 아이를 낳았느니 하면서 줄곧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를 거듭하는 삶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상현/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