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수행법하면 누구나 참선을 떠올린다. 참선은 익숙하면서도 왠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참선이란 말에서 ‘참(參)’은 생각함을 뜻하고 ‘선(禪)’은 산스크리트어 디야나(dhyana)를 음사하면서 나온 말인데 뜻은 역시 ‘사유함’이다. 그래서 옛 문헌에서는 사유수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참선이란 ‘깊이 사유함’이라 정의할 수 있다.
1) 참선의 자세
참선의 자세는 전통 수행법인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 좋다.
① 주위를 정리 정돈한 다음 좌복(방석)을 깔고 그 자리에 편하게 앉는다.
② 앉는 자세는 먼저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반가부좌)
③ 남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허벅지위에 올린다(결가부좌)
④ 허리와 양어깨는 편한 상태로 쭉 펴고 두손은 먼저 왼손등을 오른손 위에 포개어 올려놓고 엄지와 엄지를 살짝 마주닿게 한다.
참선을 할 때는 호흡이 중요하다.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하고 거친 숨을 몰아 쉰 다음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코로 숨을 들여 마셨다가 내 쉰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코로 숨을 쉬되 콧구멍의 미세한 털도 움직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호흡은 아랫배 즉, 단전까지 내려보냈다가 천천히 내쉬는 방법으로 계속 하면 된다.
2) 수식관 (數息觀)
참선을 하다보면 여러 생각이 끊임없이 생겼다가 소멸한다. 정말 한 생각에 몰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호흡을 관찰하며 공부하는 법이 나왔을 때 이를 수식관이라 한다. 이 수행은 숨을 들이쉬면서 들숨을 관찰하고, 숨을 내쉬면서 나간 숨을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이 때 호흡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천천히 깊게 숨쉬기를 한다.
숨쉬기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지만 숨에 의식을 집중하고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긴장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있을 때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쉴 때 마음의 긴장과 불안이 어느새 풀어진다. 이러한 긴장이완 효과뿐만 아니라 수식관은 분별심을 없애는 수행법이다.
3) 부정관 (不淨觀)
부정관이란 말 그대로 우리 몸의 부정한 모습을 보는 것을 말한다. 그 방법은 이렇다.
묘지로 가서 시체(해골)의 부정한 모습을 보고 거처로 돌아와서 발을 씻고 편안히 앉아 마음과 몸을 유연하게 가지고 모든 번뇌를 떠나 그 시체와 나의 몸을 비교하며 관한다. 즉, 마음을 집중하여 발목, 정강이, 넓적다리뼈, 허리뼈, 등뼈, 옆가슴뼈, 손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빨, 해골등에 마음을 집중한다. 또는 마음을 미간에 둔다. 한 방안, 한 집안, 한 가람, 한 고을, 한 나라에 가득히 썩어가는 시체가 있는 것을 관한다.
이 부정과 탐욕과 애욕이 많은 사람들이기 인생이 무상함을 깨우쳐 탐욕과 애욕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행법이다.
4) 지관과 삼매 (止觀과 三昧)
지(止)는 마음이 적정하여 온갖 번뇌를 그침을 말한다. 수행을 하면서 마음이 여러가지고 흔들려 정신의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혜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 망상의 흔들림을 보고 이들이 모두 찰나에 변화하는 무상한 것임을 일고 멈추게 하는 작업이 지(止)라고 한다.
관(觀)은 산스크리트어 비파사나의 의역으로 마음이 지의 상태에 이르면 자신의 마음속에 왔다갔다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스스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면 현상의 세계에서 쉽게 끌려가던 마음 씀씀이를 보게 된다. 마음을 보게 되면 현상의 세계에서 쉽게 끌려가던 마음의 씀씀이를 보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이 그동안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고 욕심을 무리고 조급해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이러한 앎은 자신을 지혜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삼매(三昧)는 지관의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는 지혜가 깊어져서 외부의 어떠한 소리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고자 마음이 몰입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삼매,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삼매에 들었다고 말하고 또는 무아지경에 빠졌다고 한다. 흔히 독서에 몰입한 사람을 보고 독서삼매에 빠졌다고 말하는 예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겠다. 이러한 경지에서만이 최상의 지혜인 무분별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