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제 욕심만 채우려니 첫날저녁부터 남의 사정 하나도 안봐준다고 싸우고 원수가 된다.
욕심을 가지면 자유를 맛볼 수 없다. 욕심 없는 대자유의 맛은 안가져본 사람은 모른다. 아무 욕심이 없어야 그때가 비로소 자유뿐이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고 천하가 다 우리집이 된다.
모든 것을 다 털어놓으면 모든 것이 내 것이고, 붙들어 쥐려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점점 더 고독해지고, 권리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적이 많아진다. 권리와 돈 다버리고 나면 천하 물건이 다 내 것이 된다.
아무 욕심 없이 농사짓고 장사하면 무슨 사업을 해도 잘되지만 욕심쟁이는 혼자 돈을 벌어서 남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으니 천 사람 만 사람이 다 증오하게 된다. 그런 욕심 버리고 돈을 모으면 온 세상 사람이 다 내 식구고 재미가 날 것이며 욕심을 떠나면 내가 없어도 하나 걱정이 안된다. 욕심 없는 처녀 시집가면 오직 남편만을 생각하고 위해주니 이런 아내는 다시 없다고 업고 다니며 좋은 물건 다 사다 줄 것이다. 욕심 없는 총각이 장가들면 자기의 모든 것 다 희생해서 아내만 위해 줄 것이니 그 아내는 우리 남편 제일이라고 자랑할 것이다.
하나의 업이 멸하지 않고는 하나의 밝음을 볼 수 없다. 그 하나의 업이 자기 것이나 사회, 국가, 민족, 세계 전체의 업이든간에 주어진 세 업을 멸하지 아니하고는 정의로운 평화룰 이룩할 수 없다. 이 하나의 업은 미망과 어리석은 판단과 보잘것없는 분노로 자기와 자기 이외의 세계에 있어서 그릇된 역사판단을 가져오는 무명한 욕망인 것이다.
이를 멸하지 아니하고는 부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계율이 무의미하고 또한 부처님의 지상명형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우리들 부처님 아들이 부처님의 적극하신 엄명을 거역한다면 세계로 펄럭이며 퍼져가는 부처님의 자비한 인도주의의 황국의 촌가 누항만이 아니라 도시에도 암답게 펄럭이면 자비와 지혜로 생활하는 세계민족 속의 선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교는 남으로 인하여 입어집이 아니라 나로 인하여 깨달아지는 자각의 종교이다. 이 자각적인 종교는 자기 속에 있는 밀알을 썩히어 많은 밀알을 거두게 하여야 한다. 한 알이 썩어 희생되지 아니하고 많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영광이 있을수가 없다. 우리들 부처님 제자된 모든 사람이 자기가 희생하여 이룩할 연업이 무엇인지 믿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어린애들이나 모두 제 잘난 멋에 살고 있다. 만약에 내가 못생겼다고 확실하게 확정만 되면 너도 나도 자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없는 데 가서라도 저 혼자지만 제 잘난 멋으로 살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제가 무엇인데 그렇게 잘났단 말이냐 하고 물으면 얼른 대답 못할 것이다.
현재 서양의 물질문명이 진보하여 가다가 마침내 벽에 부딪쳐서 이제 더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 청년들이 적어도 심리적으론 전부 히피족이 되는 것인데 히피란 환장했다는 뜻이다. 그들의 머리는 뒤집혔고 알맹이는 없는 거품이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발견할 수 없고 자기를 발견할 수 없으니 히피족이 안되고 어떻게 하는가.
히피족이라도 되는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이고 히피족도 못되는 것은 비 맞은 쇠똥 한가지의 썩은 청년들이다. 비 맞은 쇠똥은 거름도 안되기 때문이다. 히피족도 못되는 그것은 개만도 못하다.
개는 보신탕도 하지마는 히피족도 안된 인간은 곰탕도 못된다. 그러니까 세월이 그만큼 밝아졌다.
미국 청년들은 무언가 생명의 애착이 있어 환각제를 먹을지언정 자살은 하지 않는다. 죽기는 뭔가 억울하다는 것이다.
덴마크 청년들은 미국 사람보다 앞서 있다. 그 사람들은 교육도 완전히 의무 교육이고 교통도 무료, 의료기관도 무료고 전부 공짜로 살 수 있는 극락세계고 지상천국이다. 성도 개방을 해서 여자로 생긴 것은 전부 친척이건 누구건 다 자기 마누라고 남자는 전부 영감이고 자기 남편이다.
성을 개방해서 법률에 저촉되지 않도록 돼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래놓고 나니 지극히 고독한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 성장하면 결혼해서 내 남편 내 아내가 결속되고 임자가 있어야 될 터인데 개방을 해놓고 나니 굴레 벗은 망아지처럼 마음대로 뛰어 다녀도 어디가 죽어도 아무도 간섭을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덴마크 처녀 총각은 처녀 총각도 아니고 옛날 우리 습관대로 하면 잡년, 잡놈들이 되어버려서 이 사람들은 신에 염증이 난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아직 신에 대한 염증은 안 났기 때문에 애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다.
인생의 근본이 되고 있는 나란 과연 무엇인가? 죄를 짓고 삼악도에 떨어져서 한 없는 고생을 하기도 하고 복을 지어서 천상에도 나고 사람도 세상에 나와서도 국왕, 대신이나 큰 부자로 복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 근본 주제는 다 마음이란 내가 하는 일이다.
잘산다고 하는 사람도 내용을 알고 보면 내외간과 부자간에 마음이 맞지 아니하여 서로 불화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전생에 도둑질한 사람과 살생한 사람이다. 또 인덕 없는 것도 큰 고통이다. 부부간에도 맞지 않고 부자 간에도 맞지 않으며, 심지어는 식모하고도 맞지 않는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밤에 누워도 맘이 좋지 않아서 잠이 안온다.
부모, 형제, 친구, 동네 사람까지 모두 나를 욕하는 사람뿐이다. 이런 사람은 전생의 내외간에 배신한 죄를 지은 사람이다.
죄업으로 지옥 같은 그런 무서운 업을 지으니까 인간 세상이 그렇게 점차로 나쁜 상태로 된다. 이것을 적은 삼재, 곧 소삼재라 한다.
이 소삼재 때에 거기에서 복이 제일 많고 마음씨가 아주 나쁘지 않은 얼마의 사람만이 뒷 세상까지 살아 남았다가 그게 차차 번져서 인구가 증 가하기 시작하는데 거기서부터 다시 수명도 길어지고 복도 많이 올라간다. 중생들이 십대 죄악을 다 지어서 죽으면 곧 저 무서운 아비지옥으로 떨어져서 갖은 고통을 다 받는다.
그러나 그 중생들이 저 큰 죄악을 지을 그때에 내가 죽으면 지옥을 들어갈 것이라 생각한 일도 없거니와 또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8만 4천 지옥들이 실로 그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중생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그 업습의 그림자가 사실과 같이 보이는 것 뿐이니 실로 있는 지옥은 아니다.
범부 중생들은 큰 착각을 일으켜서 정말로 자아인 이 마음의 실재는 오히려 부정해 버리고 무상한 이 세상의 흐르는 가상에 속아서 허덕이니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다. 이러한 망령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선악을 가리지 아니하고 온갖 짓을 저지르고, 마음의 인과법칙에 속박되어 영겁에 생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천당 지옥으로 끝없이 윤회한다.
사람을 많이 죽일 수 있는 것을 연구하는게 사람이지만 그래도 짐승들은 그렇지 않다. 그저 일 대 일로 싸우다가 하나가 지거나 하나가 이기거나 둘이다 죽으면 끝날 뿐인데, 어떻게 하면 좋은 무기로 사람을 하나 이상 더 많이 죽일 수 없나 해서 이렇게 경쟁이 심해져 점점 많은 죄업으로 엮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극악무도해지는 말겁에는 삼재가 일어난다. 사람의 나이가 20에 정명이 되면 첫째 기근겁이 와서 융년이 자꾸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고, 둘째는 질병겁이 오는데 생전 이름도 내용도 알 수 없는 나쁜 전염병이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모두 앓는 사람 천지다.
그 다음 세 번째는 도병겁인데 산천초목이 모두 칼날같이 보이고 창같이 모두 죄업으로 현상계가 그렇게 되어서 닥치는 곳마다 몸을 상하게 되고 찔려서 죽기도 하고 모두 이런 것 뿐 이라는 것이다.
자유! 이놈 때문에 좋기는 하지만 큰 낭패다. 부처는 사람을 속이는 사람이요, 사람은 부처를 속이는 부처다. 어느 사람이 참으로 속이는 사람이며 어느 사람이 진정 속는 사람일까! 정말 속지 말아야 하는데,
과연 어느 곳에서 어느 순간에 어떻게 하여야 안 속는 사람일까! 정말 속이지 말아야 하는데, 과연 어느 곳에서 어느 순간에 어떻게 하여야 안 속는 법인지 부처와 중생의 팀(단어 불명확)이 어디쯤인지 번뇌는 보리가 아니고 보리는 번뇌가 아닌 것도 같은데 이 번뇌망상과 보리 열반이 둘이 아니라고 하니 대체 무엇을 어떻게 알고 하는 것인지!
淸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