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기도로 문둥병이 낫다.
지금으로부터 138년전(서기 1831)인 근세조선 순조 때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문둥이 때거리가 10여세나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를 하나 데리고 구걸하다가 강원도 철원군 보계산 석대 지장암에 들어왔다.
어린아이도 물론 문둥이였다.
암자의 주지스님이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보, 저 아이는 여기 두고 가시요. 그리고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거든 찾아 가시요. 의복도 엷은데다가 병까지 걸려서 달달 떨고 있는 것이 불쌍하구려.” 하였더니, “그렇게 맡아 주신다면 고맙지요. 데리고 다니는 우리도 귀찮을 때가 많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문둥이 때거리는 어린이를 지장암에 두고 가버렸다.
지인지감이 있는 스님은 소년에게 물었다. “너의 고향은 어디냐?” “전라도 고부에요.” “성명은?” “성은 정가구 이름은 영기(永奇)입니다.” “부모님은?” “부모님은 다 돌아가셔서 시집간 누님에게 가서 있었는데, 못쓸 병이 들어서 그네들에게 발각되어 쫓겨나온 거예요.” “너의 병을 낫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보겠느냐?” “하구 말구요. 이 병은 아주 신세를 망치게 하는 병이라니까요?” “그러면 네가 결심을 하고 내가 시키는대로 해 보아라.” 주지스님은 영기에게 이렇게 다짐하고 법당에 계신 지장보살께 정수를 떠다 놓고 절을 하고 지장보살을 생각하며 부르되, 하루 천번씩 부르고 병이 낳게 하여 달라고 축원하라고 일렀다.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이 마루법당이 아니고 사람들이 기거숙식을 하는 인법당(人法堂)인 까닭으로 영기는 추워떨지도 않고 지성스럽게 지장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도 그 주지스님을 부모와 같이 고맙게 생각하였다. 이와같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계속하다가 50일이 될까하는 어느 날 밤에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꿈 속에서 어떤 노장스님이 나타나더니 자기를 귀엽게 여기고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말씀하시기를, “불쌍한 아이로다. 아무 죄도 없는 것이 부모의 탓으로 못쓸 병이 들었구나. 그래도 네가 과거의 불연이 있어서 여기를 찾아왔구나. 여기 오기를 잘 했다.”하며 눈,코,귀,입이 있는 얼굴 전부와 등, 배, 팔, 어깨, 다리와 수족 전체를 만져 주었다.
그랬더니 몸이 아주 날아갈 것처럼 시원하였다. “네가 이 병이 났거든 중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훌륭한 도승이 될 것이다.
잘 명심하여라. 나는 물러가겠다.” 영기가 깨고 보니 꿈이었다.
그런데 영기가 꿈을 꾸고 난 뒤 부터는 꿈에서와 같이 문둥병이 씻을 듯이 나아 버렸다. 전신에 퍼져 있던 곪아 터지던 부스럼도 간 곳이 없고, 맨승맨승하게 빠졌든 눈섭도 새까맣게 나고, 까마잡잡하던 살결도 아주 허여 멀겋게 변하여 졌다.
그 전과는 아주 딴 사람이 되어 버렸다.
영기는 자진하여 주지스님께 중이 되겠다고 지원하고 머리를 깎았다.
이 분은 후세에 동방의 율사로 이름이 높은 남호(南湖)대사였다. 스님은 어려서 이러한 체험이 있는 까닭으로 남보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경학도 잘 배우고 글씨도 잘 익혔다.
그리하여 명필과 문장을 겸하였다. 그 뒤에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데는 사경(寫經)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소(疏)를 갖춘 <아미타경>을 쓰는데, 글자 한자를 쓸 때마다 세번 절하고 세번 염불을 하며 <아미타경>을 써서 부처님께 바쳤다.
그 글씨의 목각판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십육관경과 연종보감을 써서 목각하여 양주군 수락산 흥국사에 두었다. 그리고 서울 뚝섬 건너 봉은사에서 8권의 <화엄경>판을 목각하고 판전이라는 법당을 지어 봉안하였다. 이것이 지금도 남아있어 봉은사를 가면 볼수가 있다.
그런데 이 <화엄경>목각판 불사 때에 스님이 여난(女難)을 만난 비화가 있다. 율행이 높은 스님이 양주 흥국사에도 계시고 서울시 화계사에도 계시면서 설법을 하고 <화엄경> 불사의 동참시주를 모으고 계셨던 까닭으로 남녀 신도가 적지 아니 모였다.
더군다나 봉은사에서 경불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뚝섬강이 메이도록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
그런데 이 때에 서울에서 사는 어떤 대갓집의 젊은 미망인이 스님에게 돈과 쌀의 시주도 많이 하며 하루 건너씩 나오더니, 스님에게 애정을 호소하고 야릇한 눈치를 보이는 것이었다. 계행이 빙설같은 스님은 본체 만체, 들은체 만체 하고 인간무상과 애욕의 무서움, 지옥의 무서움에 대해서만 설법을 하고 계실 뿐이었다.
그러나 도고마성으로 악연은 참으로 물리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공사 감독으로 전종일 시달린 스님이 문단속도 없이 조실방에서 깊은 잠이 들었는데 가위에 눌리는 듯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어찌된 일인가 하고 겨우 정신을 차려 눈을 떠 보니 동백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며 여자의 몸이 자기 가슴에 안기고 부드러운 팔이 목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숨결을 몰아쉬며 입으로 불기운을 뿜는 것이 아닌가? 스님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소리를 내어 꾸짖어 내어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순수히 욕망을 들어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스님은 목에 감겼던 팔을 가만히 풀어놓고, “여보시요, 막중한 불사중에 이게 무슨 짓이요?” 하고 나직한 귓속말로 힐책하였다. “스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 살려주십시요.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방에 뛰어들때는…””그러나 당신이 미쳤지 이게 될 뻔한 일이요?” “미쳤대도 좋아요. 스님에게서 저의 소원만 푼다면 지금 죽어도 좋겠어요.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중대한 일인만큼 그렇게 경솔하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이것도 인연소치인 연분이니까, 이 경불사를 다 마치고 나서 떳떳하게 부부가 됩시다.
부처님의 말씀을 보면 중으로서 음행을 한다는 것은 가장 큰 죄라고 하셨으니까, 나도 아주 퇴속하여 당신과 백년 해로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하니 그리 아시고 이 불사를 마칠 때까지만 기다려 주는 것이 어떻겠소?”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이지 거짓말을 하겠소, 속인도 아닌 중이…” “아이구 좋아라. 그러면 더욱 좋지요.” “그러니까 이 밤에 딴 짓 말고 어서 나가주어요.” “스님이 그렇게 하여 주신다니 고마와요.
그렇지만 한번만 꼭 껴안아 주셔요.” 하고 그 여자는 달려 들었다. 그것까지 거절할 수가 없어 그 여자가 하는대로 두었더니 으스러질만큼 끌어안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러더니 그 여자는 스님의 뺨과 코와 입에 키스를 퍼붓는 것이었다.
그리고 살며시 일어나 나갔다. 그러한 일이 있은 뒤에 날마다 오다시피 하더니 별안간 발길이 뚝 끊어지고 보이지를 않았다. 스님은 호사다마를 부르짖으며 부랴부랴 불사를 재촉하여 다 마치고 내일 아침부터 수백명의 스님들과 수천명의 신도가 모여 낙성식 겸 회향재를 다 준비하여 놓았다. 그런데 이 날 밤중에 스님은 자취도 없이 도망을 가고 말았다.
부서를 맡은 스님네가 재는 잘 모셨으나 스님이 없어졌으므로 모두 허탈을 느꼈다. 그 여자도 삿갓 가마를 타고 나왔으나 그토록 깊은 맹서를 하던 스님이 행방불명이 된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 여자는 비관하고 뚝섬강을 건너 오다가 철천의 원한을 품고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뒤 그 여자는 원귀가 되어 스님을 따라다니면서 무척 괴롭혔었다. 언제든지 머리끝에 매달려 두통을 앓게 하고 무슨 불사든지 장난을 일으켜 방해하였다.
그리하여 스님은 석대암 지장보살에게 가서 삼,칠일 기도를 하고 천도재를 지내주고서야 무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