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법당에 얽힌 이야기

내소사 법당에 얽힌 이야기

변산반도 한 산기슭에 자리한 내소사 법당 대웅전은 보물 제 21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한 개의 포가 모자라고 벽화는 그리다가 중도에서 그만둔 채로 내려오고 있다.

이 대웅전은 조선 인조 11년(1633)에 내소사 조실 청문대사가 증축하였다.

청문대사는 이법당을 증축한 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면 이법당은 어째서 한 개의 포가 모자라며, 멱화는 그리다 말았을까. 청문대사가 내소사로 무임한 지도 어언 3년이 지났다., 퇴락해 가는 대웅보전을 볼때마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 어서 번듯한게 법당을 지어 부처님을 편히 모시고 싶었다.

그는 설계를 했고 화주를 뽑아 법당 건립기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금이 조성되고 모든 설계가 끝났다 해오 이를 시공할 만한 목공이 없이는 건립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청문대사는 목수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1년, 그러나 목수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청문대사의 거동이었다.

내소사 주지 선우화상은 청문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젊은 스님이었다. 선우화상은 아무래도 청문대사가 수상했다. 청문대사는 목수를 기다리되 절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꼭 일주문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다 들어가곤 했다. “큰스님,이젠 들어가시지요. 큰스님께서 목수를 기다리신지 벌써 한 해가 다 되어 갑니다. 하지만 목수는 오지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대웅전은 언제 짓겠습니까?

내일은 좀 미숙하기는 해도 제가 직접 목재를 구해오고 목수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들어가십시오.” 별로 말이 없던 청문대사가 약간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허! 젊은 사람이 말이 많구나. 모든 일에는 다 거기에 맞는 때의 용처가 있는 법이니라.”

“그리고, 목수를 기다리시려면 절에서 기다리셔도 될 터인데 구태여 여기까지 나올실 건 뭡니까?” “허! 말이 많대두. 이 사람아, 내가 목수를 기다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나오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느니.” 선우화상은 호기심이 일었다. “무슨 이유가 있으신지요?” 청문대사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부쩍 궁금증이 인 선우화상은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이유를 물었다. 똑같은 질문을 일곱 번이나 했을 때 조실 청문대사는 말했다. “내가 매일 나오는 것은 백호를 지키기 위해서니라. 목수가 올 때에 해를 당해서는 안 될 테니…” 청문대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크고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갈기는 희어서 그놈이 방금 전에 청문대사가 말한 백호임을 알 수 있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호랑이의 눈빛은 석양의 붉은빛을 받아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청문대사는 주장자를 들어 호랑이를 제니하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나치려 했다.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청문대사를 향해 으르릉댔다. “아직은 안 된다. 나는 할 일이 남아 있다. 내가 우리 내소사 대웅보전을 준공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청문대사는 주장자로 길 옆에 우뚝 솟은 소나무 허리를 쳤다. “딱!” “어흥!” 호랑이는 주장자 부딪치는 소리에 맞춰 한 번 으르렁대고는 어슬렁거리며 사라졌다.

청문대사는 법당으로 향했다. 청문대사는 법당 뜰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단주를 꺼내어 굴리고 있었다. 달싹거리는 입술로 보아 염불을 하고 있음에 틀림 없었다. 한참을 염불삼매에 들어있던 조실 청문대사는 주지 선우화상을 불렀다.

선우가 다가가자 청문대사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내일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 너는 내일 날이 밝거든 일주문 밖에서 나그네를 기다려라. 그리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올 것이니 받아들고 오너라.” 선우화상은 생각했다. ‘어떻게 내일 새벽 나그네가 올 것을 미리 알 수 있지? 만약 그렇다면 큰스님은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는 것이다. 하여간 시키는 대로 해보자.’ 선우화상은 대답했다.

“어떻게 생긴 나그네이며 옷은 어떻게 입었습니까? 그리고 나이는 어느 정도나 먹었는지요?” “내일 그곳에 나가 보면 알게 되리.” 다음날, 새벽 예불을 끝내고 청문대사가 시킨 대로 일주문밖에 나간 선우화상은 가슴이 철렁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뭔가 늘씬하게 생긴 동물이 일주문 기둥에 옆구리를 대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다시 그곳을 살펴 보니 사람이 누워 있었다. 이미 히끄무레하게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참 이상도 하지! 아까는 분명 무슨 동물 같았는데…’ 하얀 바지 저고리에 수건을 머리에 질근 동여맨 남자 곁으로 가면서 그는 둥얼거렸다.

“내,절에 들어와 부처님을 시봉한 지 어언 스무해건만 사람을 보고 동물로 착각하여 기절을 하다니, 아직 공부가 덜익은게 분명해. 생사를 초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은 6년 고행 끝에 나고 죽음을 해결하셨다는데 나는 그 세 배가 넘는 20여 년을 수행하고도 이 지경이니, 쯧쯧.” 선우화상이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사내가 눈을 떴다. 선우화상이 쭈뼛거리며 수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소승은 내소사 주지로 있는 선우라고 합니다. 우리 절 조실이신 청문 큰스님에서 마중을 보내셔서 이렇게 나왔습니다.” 사내는 눈만 꿈벅꿈벅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선우가 걸망을 달라고 하자 사내는 두 개의 커다란 걸망 가운데 하나를 선뜻 내주었다.

뭐가 들었는지 생각보다 묵직했다. 목수라면 아무래도 연장이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손님은 어디서 오시는 뉘십니까?” 사내는 대답이 없었다. “이 걸망 속에는 뭐가 들었길래 이리도 무겁습니까? 물론 연장들이겠지요?” 사내는 얼굴만 돌릴 뿐이었다.

“내소사는 처음이십니까?” 싱긋이 웃을뿐이었다. 선우화상은 끈질기게 물었다. 청문대사도 결국 무릎을 꿇린 그의 고집이었다. “큰스님과는 잘 아는 사이십니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일주문에서 법당 앞까지 도며 선우화상은 연신 질문을 퍼부었고, 그는 여전히 말 한마디 없었다. 은근히 약을 올리고 벙어리에 귀머거리가 아니냐고까지 자존심을 건드렸지만 사내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선우가 약을 올리고 질문을 할 때마다 그가 표정을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귀머거리는 아닌 게 분명했다. 나중에 선우화상은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자신이 미워 미칠 지경이었다.

상대방은 일반인인데도 그처럼 대단한 인내력을 지니고 있는데, 자기는 소위 수도 하는 사람이면서 그렇게 채신머리없이 지껄여 댄 것이 미워 죽고 싶을 정도였다. 홀로 방에 들어와 생각에 잠긴 선우화상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제 자신이 자주스러웠다. 승려이기 이전에 그도 사내였다. 더욱이 수행자임에랴. 사내대장부가 말에 책임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녀자만도 못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냥 처음에 수인사 몇 마디로 끝냈어야 하는데… 나중에 그를 약올리고 욕하고 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옳은데. 허! 그것 참, 생각할수록 내 자신이 밉네.’ 사내는 그날 하루를 쉬고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대웅전 지을 나무를 베어왔다. 기둥과 서까래 대들보감을 구해 왔다.

나무 구입이 끝나자 그는 목침만한 크기로 나무를 잘랐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는 목침만을 잘랐다. 열흘이 가고 스무 날이 가고 한 달이 가도 그는 목침만을 잘랐다. 선우화상은 사내가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청문대사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사내는 표정 하나 없었다. 그는 다섯 달 동안 목침을 잘라 댔다. 다섯 달이 지나자 그때에야 비로소 톱을 놓고 대패를 들었다. 목수는 끊임없이 대패질을 했다. 그는 삼매에 들어있는 수도승보다도 더 엄숙했다.

부처님이 삼매에 들어있는 수도승보다도 더 엄숙했다 부처님이 삼매에 들어있는 보습이 바로 저목수와 같을 덕이라 여겨졌다. 그는 몸을 움직여 대패질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참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법당을 짓겠다는 생각도, 나무를 다듬는다는 생각조차 초월한 것 같았다. 물이 홈통을 흐르고 흘러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물은 물레방아를 돌린다는 생각도 자신이 흐르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처럼 목수도 그럴것이라 선우화상은 생각했다.

목침을 다듬기 3년이었다. 선우화상은 참다 못해 한 마디 했다. “여보, 목수 양반! 목침 깎다가 세월만 다 가겠소. 법당은 언제 지으시려오?” 선우의 물음에도 목수는 빙그레 웃을 뿐 말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목침 다듬는 일에 열중했다. 선우화상은 자기가 한 말에 대답이 없자 공연히 자존심이 상했다. 목수를 골려 주고 싶었다.

그는 목침 한 개를 슬쩍 감추어 버렸다. 수천 개의 목침 가운데 한 개 정도 감춘다고 알 리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엉청나게 깎은 목침을 다 세고 나서 목수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일할 때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깃들여 있었다, 연장을 다 챙기고 나서 땀을 닦은 목수는 청문대사를 찾아갔다.

“큰 스님! 아무래도 저는 법당을 지을 인연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내소사에 온 지 3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선우화상은 그가 벙어리가 아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의 엄청난 인내력에 선우화상은 혀를 내둘렀다. 선우화상은 목수가 청문대사에게 한 말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 청문대사가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소?” “네, 목침 하나가 부족합니다. 아무래도 아직 저의 정성이 완전치 못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럼.” 선우화상은 깜짝 놀랐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하나가 모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왜냐하면 수천 개의 목침 중에서 한 개가 없어진 것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일같이 목침을 점검했다면 또 모르되 목침을 자르기 시작하면서 다 다듬을 때까지 적어도 선우화상이 알고 있는 한, 한 번도 점검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 목침을 자신이 몰래 숨겼다고 토로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청문대사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가지 말고 법당을 그냥 짓도록 하시오. 목침이 한 개 모자라는 것은 그애의 잘못이 아니오.” 선우화상은 뜨끔했다. 청문대사가 이미 자기가 목침 한 개를 숨겼다고 토로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청문대사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가지 말고 법당을 그냥 짓도록 하시오. 목침이 한 개 모자라는 것은 그애의 잘못이 아니오.” 선우화상은 뜨끔했다. 청문대사가 이미 자기가 목침 한 개를 숨기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청문대사도 목수도 보통 인간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청문대사의 위로를 받은 목수는 다음날부터 법당을 짓기 시작했다.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중방과 도리를 얹고 대들보를 얹었다. 서까래를 놓았다. 그가 3년 남짓 자르고 깎은 목침도 모두 쓰였다. 법당은 며칠 내에 완성되었다. 기와도 얹었고 문도 달았다. 닫집을 잇고 탁자를 만들어 내부 공간도 모두 완성하였다.

법당이 완성되자 청문대사는 단청을 하고자 화공을 불렀다. 그때 청문대사는 대중들에게 공지사항 하나를 전달했다. 아니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화공이 오늘부터 법당 내부 단청에 들어간다. 따라서 화공이 법당 안의 단청과 벽화를 완성할 때까지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것은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두 달이 걸릴 수도 있다. 명심하라. 절대로 들여다봐서도 안 된다. 내 말을 꼭 기억하라. 이유도 묻지 마라. 선우화상은 묻고 싶었다. 식사 문제나 뒷간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지만 이유를 묻지 말라는 조실 큰 스님 청문대사의 엄명이고 보니 물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화공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전혀 밖에 나오지 않았다. 또 한 달이 갔다. 선우화상은 생각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그리는 거야? 화공은 식사도 안하고 대소변도 안보나? 설마 새로 짓는 법당 안에 변기를 들여 좋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리적 욕구를 어떻게 충족하고 배설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선우화상은 그게 궁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법당앞에는 늘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청문대사가 아니면 그 목수였다. 선우는 어떻게든 자시니이 생각한 것은 꼭 이루고야 마는 고집이 있었다. 법당 앞에 목수가 지키고 있었고 청문대사는 조실에서 교대할 때까지 쉬고 있었다. 선우화상은 꾀를 냈다. ‘음!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선우화상은 목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조실 청문 큰스님께서 잠깐 오라십니다.” 목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법당 앞을 떴다. 선우화상은 재빨리 법당 앞으로 다가가 문틈으로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벽화를 그리는 화공은 없었다. 그 대신 오색이 영롱한 한 마리의 새가 부리에 붓을 물고 물고 물감을 묻혀 단청과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호기심이란 본디 멈추기를 거부하는 법이다. 선우화상은 법당 문고리를 잡고 살그머니 당겼다. 법당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는 법당 안으로 한 발을 살짝 들여놓았다. 바로 그 때였다. 온 산천을 뒤흔들듯한 호랑이의 으르릉거림이 있었다. 선우는 그 자리에 기절해 쓰러졌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

선우화상이 정신이 들었을 때, 청문대사가 법당 앞에 죽어 있는 희고 큰 호랑이를 향해 법문을 설하고 있었다. “대호선사여, 나고 죽음이 본래 둘이 아닌 법인데 선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태어남이란 맑은 하늘에 한 점 그름이 생기는 것과 같고, 죽음이란 그 구름이 맑은 하늘로부터 사라짐과 같도다.

그러나 흰구름 자체도 본래실체가 없는 법, 나고 죽음도 실체가 없다. 하지만 그대가 지니고 있던 그 영뵤한 본성 만큼은 영원히 나고 죽음을 따르지 않고 홀로 빛나리라. 대호선사여! 그리고 그대가 세운 이 대웅보전은 길이 법연을 이으리라,” 법당 중수가 끝나자 청문대사는 온 데 간 데 없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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