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부 경전 완성기

반야부 경전 완성기

망덕사의 선율스님은 6백 부 반야경전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사경을 했지만 원체 많은 양이라 1O년 동안 쓴 것이 5백 권을 조금 넘었다. 그런 추세로 나아간다 하면 아직도 이태는 더 있어야 완성될 수 있었다. 그는 침침해진 눈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렇게 눈이 어두워서야 원. 부처님의 경전 중에서 중추적인 교설, 이 반야부 6백 권을 시작한 지도 어언 1O년이 흘렀구나. 앞으로 건강이 따라 주면 이태 후에는 끝낼 수가 있을 터인데…” 그는 오늘은 좀 일찍 쉬어야겠다고 생각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만 심장마비로 영영 깨어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고 말았다. 망덕사에서는 큰스님이 열반하셨다며 장례를 치렀다. 대중들은 선율스님의 시신을 다비에 부치자는 쪽과 선산에 매장하자는 쪽이 서로 팽팽히 맞섰는데 결론은 매장하는 쪽으로 났다.

그래서 선율스님의 시신은 서라벌의 남산 동쪽 기슭에 고이 매장되었다. 한편 선율스님은 염라국의 사자에게 이끌려 명부에 이르렀 다. 명관이 물었다. “그대는 인간세상에 있을 때 어떠한 일을 하셨소?” 선율스님은 대답했다.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나는 불도를 닦는 수도승이었습니 다.” 명관이 탁자를 내리치며 외쳤다.

“이곳에 오면 일단은 모든 옷을 벗어야 하구 의관을 착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알몸인 그대를 어떻게 알아 볼 수 있겠소. 인간세상에서는 외관과 겉모습으로 직업을 분별하고 지위의 높고 낮음을 알 수 있지만 여기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소. 모두가 재판을 기다리는 죄수들이란 말히오.” 선율스님이 그제서야 자신이 알몸임을 깨닫고 천천히 말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불도를 닦는 수행자였습니다. 그리고 소승은 보시 받은 돈으로 부처님의 일대시교 중 중추적 교설인 반야부 6백 권을 사경하다가 중도에 이렇게 왔습니다.” 명관이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며 어느 절에서 주석하셨소이까?” “서라벌 망덕사에 있었으며 불명은 선율이라 합니다.

금년 나이 일흔이오.” 명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허, 그 양반 묻지도 않는 나이까지 알아서 대는구려.” 명관은 명부를 뒤적이다가 손가락으로 책의 한 페이지를 짚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는 경건함이 배어 있었다. “허! 그대의 수명부에는 목숨이 끝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좋은 원력으로 부처님의 경전을 사경하다 왔으니, 다시 인간세상에 나가시어 그 반야경을 완성하도록 하십시오. 자, 어서 가십시오. 부디 착한 일 많이 하다 오시오.” 선율스님이 명부를 빠져 나와 인간세상으로 오는 삼도천을 건너려는데 한 여인이 나타나더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도 알몸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도 명부에서는 성욕이 일지 않았다. 전혀 느낌이 없었다. 그녀가 울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인간세상으로 다시 가시는가 보군요. 제 말이 맞지요?” 그녀가 확인하듯 물어오자 선율스님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선율스님의 신분과 하던 일 등을 물었다. 선율스님은 명관에게 답한 것처럼, 자신은 망덕사의 승려로서 반야경을 이루려다 중도에 명부에 잡혀 왔고 다시 그 경전을 완성하라 보내기에 이렇게 가고 있는 중이라 했다.

얘기를 다 듣고난 여인이 선율스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역시 느낌은 전달되지 않았다. 표정으로 보아 그녀 쪽에서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저도 또한 남섬부주(인간세상)의 신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이 금강사의 논 한 두럭을 몰래 뺏은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죄를 대신 받기 위해 이 명부에 와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스님께서 사면을 받고 풀려나 남섬부주로 돌아가시니 부탁 하나만 꼭 들어 주십시오.” 그러면서 그녀는 선율스님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선율스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께서 서라벌에 돌아가시거든 제 부모님을 찾아봐 주십 시오.” “그대 부모님의 집이 어디에 있소이까?” “네. 사량부 구원사의 서남쪽 마을에 있습니다. 몇 채 안 되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찾은 뒤에는?” “저의 부모님에게 몰래 빼앗은 논을 빨리 금강사에 돌려주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세상에 있을 때 참기름을 상 밑에 묻어 두었고, 또 곱게 짠 베를 침구 사이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허! 그것 참.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군요.” “하오니 스님께서는 그 기름을 가져다 스님께서 반야경을 사경하실 때 불을 밝혀 공덕이 되게 하십시오. 또 베를 팔아 비단을 사서 스님께서 쓰시는 경폭으로 삼아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황천에서도 스님의 은혜를 입어 명부에서의 고통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스님, 꼭 부탁합니다.” 선율스님은 그녀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삼도의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자마자 바로 인간세상이었다. 그때는 장례를 치른 지 이미 열흘이나 되어 선율스님은 무덤 속에서 사흘이나 목이 터져라 외쳐 댔다. 마침 소를 먹이러 산에 왔던 목동이 무덤 속에서 나는 외침 소리를 듣고 절에 가서 알렸다.

스님들이 달려와 무덤을 파헤쳤다. “휴!” 선율스님은 깨어나 지금까지 명부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얘기했다. 선율스님은 바로 사량부의 구원사 서남쪽에 있는 마을을 찾았다.

그 여인이 말한 대로 부모를 찾으니 과연 그녀는 죽은 지 15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상 밑을 뒤져 보니 참기름이 나왔고 침구 사이에는 곱게 짠 베가 감추어져 있었다. 모든 게 사실로 드러나자 죽은 여인의 부모는 금강사를 찾아가 뺏은 논 한 두럭을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백일 동안 그 동안에 지은 죄를 참회하였다.

선율스님은 망덕사에서 반야경전을 마저 사경했다. 명부에서 만난 여인의 뜻을 따라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베는 팔아 비단을 사서 경폭을 삼았다. 그리고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경전이 모두 완성되자 그녀의 혼령이 찾아왔다. 명부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스님, 감사합니다. 스님의 은혜를 입어 명부의 고통을 벗어나 도리천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경전을 베끼는 공덕이 무엇보다도 큼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마침 선율스님의 사경회향 법회에 참석한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은 여인의 혼령이 말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그들은 모두 감동하였고 다시없는 대작불사라고 했다.

지금도 그 반야부 경전 6백 권이 경주의 승사서고 안에 봉안되어 있는데, 해마다 봄,가을이면 그 경전을 펴 읽으며 재앙을 물리친다고 한다. 대장경 정대불사가 이에 해당한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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