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골의 경사
꾸우 꾸우 꾸웅! 이 종소리 듣는 자여! 번뇌는 영원히 다하고 지혜는 자라며 깨달음은 온전하여라. 꾸웅! 지옥을 여의고 삼계 벗어나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라.
꾸웅! 파지옥진언 옴 가라지야 사바하 옴 가라지야 사바하 꾸웅! 옴–가라지야–사바–하 꾸우 꾸우 꾸웅!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 저고리골에서는 은은한 저녁 종소리로 하루의 일과를 마감했다. 저고리골 지장사에서 울려 오는 종소리였다. 매일 저녁 듣는 종소리였지만 최 첨지는 유달리 마음이 푸근했다. 그는 일찍이 벼슬에 뜻을 두고 죽자 사자 공부를 했지만 번번이 낙방을 했다.
그는 그의 6대조가 첨지 중추부사라는 정삼품 당상관의 자리에 있었던 관계로 벼슬은 하지 않았지만 이웃 사람들이 최 첨지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그의 6대조는 첨지 8명 중 3명이 한직인데, 그 한직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실세를 누리지는 못했었다. 최 첨지는 저녁상을 물리고 앉아(화엄경)을 펼쳐 들었다.(입법계품)이었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는 대목이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영학이라 했다. 나이가 들어 이미 장가를 들인 지 15년이 지났건만 자식이 없었다. 그것은 며느리의 책임이 아니라 아들의 책임이었다. 아니, 아들의 책임도 아니었다. 엄격히 따지면 그것은 최 첨지 자신의 책임이었다. 최 첨지는 본디 한양의 남산골에 살았었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려 왔었는데, 최 첨지 대에 와서는 미관 말직도 얻지 못하고 원래 학문이 모자란 탓에 그저 선비로서만 살았었다.
연산군(1494–1506재위)이 등극하자 최 첨지는 벼슬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아들을 거세시켜 내관으로 들여보냈다. 아들은 내관으로 연산군을 모시고 있었지만 최 첨지에게는 벼슬은 커녕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연산군이 폐위되자 아들은 내관 자리에서 쫓겨나 집에 돌아와 아버지 최 첨지와 더불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종(1506–1544재위)의 측근들은 연산군파 관련이 있는 자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귀양을 보내거나 일족을 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최 첨지와 아들 영학은 저고리골로 은둔을 했고 아들은 장가는 들었지만 자식이 없었다. 최 첨지는 아들이 가엾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다시 벽장 문을 열고 먼지가 켜로 앉은 책 한 권을 꺼냈다.(지장경)이었다. 그는 지장경을 읽어 나갔다. “나무 자인적선 서구중생 대원본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 보살…” 개울 건너 산기슭에 자리한 지장사에서 들려오는 지장기도 목탁소리가 최 첨지의 독경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의 화음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가끔씩 개 짖는 소리도 제법 반주를 맞춰 주었다. 어디선가 부엉이 소리가 사방을 더욱 적막하게 만들었다. 극락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고요로 벗을 삼아 읽어 내려 가는 불경에 침잠하노라면 그것이 바로 극락세계였다.(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부처님께 나아가 내 속병을 고쳐 달라고 해야지.) 외양간에서 소가 울었다. 어둠이 있던 자리에 서서히 밝음이 들어서고 있었다.
새벽은 외양간에서부터 오는 것이었다. 여물을 먹는 소들의 콧김에서부터 새벽은 열려 왔다. 최 첨지는 속병을 앓고 있었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전혀 효험이 없었다. 최 첨지는 그의 속병 때문에 그나마 있던 재산도 거덜이 났다.(이게 도대체 무슨 업보람? 나는 속병 때문에 죽을 지경이고, 아들놈은 내시가 되어 자식도 낳지 못하고 며느리는 내시를 신랑으로 맞아 홀로 빈방을 지켜야 하니.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토록 엄청난 형벌을 받는 것인가? 끄응.) 그때였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왔다. 사슴의 눈과 토끼 의 귀를 가진 최 첨지는 대문 쪽으로 신경을 모았다. “첨지 어른 계십니까? 지장사에서 내려온 중 운천입니다.” 최 첨지는 대문 쪽으로 급히 발걸음을 옳겼다. 운천스님은 최 첨지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최 첨지가 문을 열어 주기도 전에 대문을 열고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어서 오치지요, 운천스님. 이른 아침에 어인 일이십니까?” 운천스님이 합장을 해보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첨지 어른께서 적적하실 것 같아 이렇게 왔습니다.
저라도 말벗이 되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무 지장보살.” 사랑방에 든 두 사람은 곡차를 한 잔씩 했다. 최 첨지가 주로 얘기를 했고 운천노장은 듣는 편이었다. 최 첨지는 운천스님이 그래서 좋았다. 자기 얘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운천스님에게서 언제나 형님 같은 정을 느꼈다. 최 첨지는 자신이 이제 껏 앓아 온 속병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 속병은 벼슬자리에 대한 미련도 원인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자식을 내시로 만들어 놓은 자책감에서 오는 일종의 신경성이었다. “첨지 어른의 말씀을 듣고 보니 참으로 딱하게 되셨소이다.
허나 우리 지장사의 지장보살님은 참으로 가피가 크신 분입니 다. 지장보살님께 한번 매달려 보시지요.” 그리고 운천스님은 몸을 좌우로 흔들며 게송을 한 수 읊었다. 지장보살님은 위대한 성자 그분의 위신력은 너무나 커서 항사겁을 두고라도 말하기 어렵네. 그분의 모습 우러러보고 그분의 이름을 불러 보며 그분에게 마음을 다해 정성 올리는 한 순간, 아! 지장보살은 무한한 원력으로써 인간을 이익되게 함이 한량이 없네. 최 첨지는 운천스님을 따라 지장사로 올라갔다.
그는 열심히 기도했다. 스님들이 예불을 마치고 내려간 뒤에도 그의 기도는 끊일 줄 몰랐다. 밤이 가고 새벽이 와도. 또다시 한낮이 지나고 밤이 와도 그의 기도는 이어졌다. 만 사흘간을 기도 정진으로 시간을 초월했다.
사흘 낮 사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운천스님도 최 첨지의 기도삼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저 어른이 기도를 성취하겠어) 사시에 기도회향을 한 최 첨지는 아들 영학을 대동하고 산에 올랐다. 운천스님도 동행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이라 울창한 숲은 그대로가 별천지였다. 산까치가 사람을 보고 놀랐는지 푸드득 하며 날았다.
만산홍엽으로 가을산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능선에 올라 심호흡을 하고 일행은 다시 내려왔다. 머루랑 다래랑 온갖 산과일이 거기 있었다. 다래넝쿨을 휘어잡고 익은 다래를 몇 개 따서 입에 넣었다. 꿀맛이었다. “운천스님, 이래서 산이 좋다고 하나 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허허. 그렇구 말구요.” 그때였다. 열댓 살 먹은 사내아이가 망태기를 메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아이였다. 최 첨지가 물었다. “너는 어디 사는 누구냐?” 소년이 대답했다.
“이 산중에 사는 도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하러 이 산을 혼자 다니느냐? 무슨 특별한 볼 일이라도…?” “약초를 캐러 다녀요.” “약초? 무슨 약초?” “산삼도 캐고 봉령도 캡니다.” “뭐라구, 산삼이라고 했느냐?” “네, 그렇습니다. 만병통치약이지요. 이 산에는 그런 명약들 이 참 많습니다. 도라지나 더덕을 캐기보다도 더 쉽습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 최 첨지 부자와 운천스님은 도명이라는 소년이 메고 있는 망태기를 들여다보았다. 거기 산삼이 한 뿌리 들어 있었다. 운천스님이 말했다. “십년 공부 끝에 도를 얻기보다 산삼 캐기가 어렵다던데.” 소년이 말했다. “할아버지께 이 산삼을 드리겠어요.” 최 첨지는 소년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떠한 병도 다 치료할 수 있다는 산삼을 그냥 주겠다니 얼마나 놀랄 일이 겠는가. “아니, 이 귀한 산삼을 내게?” “네, 드세요. 거저 드리는 거예요.” “에이, 아무래도 그렇지, 이 귀한 것을 어떻게 그냥 먹노?” 최 첨지는 주위를 돌아보며 다시 소년에게 말했다. “그럼, 요 아래 지장사에 가서 산삼 값을 대강 치른 뒤 먹겠 다.” “돈은 나중에 주셔도 돼요. 그리고 산삼은 산에서 드시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크지요. 어서 드십시오.” 최 첨지는 산삼을 꺼내어 어적어적 씹어 먹었다. 영학과 운천스님도 최 첨지의 산삼 먹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산삼을 먹 고 난 최 첨지가 소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소년이 없어진 것이다. 영학도 운천스님도 소년이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일행은 소년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도명아.” “도명아–.” 그때 문득 운천스님이 무릎을 탁 치며 최 첨지 부자에게 말했다. “그 소년 이름이 도명이라 했지요?” “그렇소이다. 분명 도명이 맞습니다.”
“음, 그렇군. 이는 지장보살님이 보낸 동자가 분명합니다. 좌보처로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 도명존자가 맞습니다.” 그제서야 최 첨지와 영학, 운천스님은 지장보살을 그토록 열심히 염한 공덕으로 지장보살이 가피로 내린 영약임을 깨달았다. 최 첨지는 건강을 회복했다. 건강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새로운 기운을 얻어 모든 일에 자신을 가졌다. 최 첨지는 그의 남은 생애를 지장사를 중건하는 데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한편 최 영학은 그의 부친이 지장기도를 하고 그 가피로 산삼을 얻어 속병을 완전히 고친 데 감격하여 그 길로 지장사를 찾았다.
“크나큰 원력으로 중생들을 싸안으시는 지장보살님, 비록 무리한 소망이라 생각되오나 저의 소원도 이루어 주옵소서. 제가 장가는 든 지 오래되오나 아직 자식이 없습니다. 저의 그러한 상황에 대해 지금까지는 아버지를 원망해 왔습니다. 하오나 이제는 그러한 마음을 접고 지장보살님께 귀의하오니, 제가 다시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지장보살님, 오! 지장보살님.” 남편의 지장기도 소식을 들은 영학의 아내도 지장사에 올라와 함께 기도했다. 그녀는 자기의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왔었다. 15년간을 홀로 빈방을 지키며 살아온 그녀에게 한은 쌓일대로 쌓였다.
부귀영화 때문에 내시를 사위로 맞은 부모가 원망스러웠고 며느리로 맞은 시부모가 미웠다. 하지만 그녀 역시 그 미움을, 그 원망을, 그 한을 지장보살을 염하는 마음으로 바꾸었다. 부부는 삼칠일을 작정하고 기도에 들어갔다. 밤이 가고 낮이 와도 그들은 오로지 지장보살을 불렀다. 그렇게 스무하루가 지나고 나서 기도를 회향했다. 기도를 끝낸 영학은 오랜만에 개울에 내려가 세수를 했다. 이상하게 뭔가 까실까실한 느낌이 있었다. 아직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촉감이었다.
그는 다시 턱을 어루만졌다. 분명 수염이 난 것이다. “내가 수염이 났다. 내가 수염이 났어.” 영학은 자기 소리에 또 한번 놀랐다. 이제까지 자기의 목소리는 굵직하질 못했었다. 그는 목이 가라앉아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여자의 음성에서 남자의 탁한 음성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뛸 듯이 기뻤다. 한달음에 절에 뛰어든 영학은 주지스님을 찾았다. “주지스님, 운천스님! 제가 수염이 났어요. 제가 수염이 났다구요.” 놀란 사람은 운천스님뿐만이 아니었다.
영학의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15년간 쌓여온 한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환희의 울음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최 첨지도 울었고 마을 사람들도 울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영학은 뒤꼍으로 돌아갔다. 그는 허리를 풀고 살그머니 손을 넣어 보았다. 평소에 만져지지 않던 물건이 꽤나 부풀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이제 어엿한 사내가 되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모인 사람들도 기쁨의 기도를 올렸다. 지장사는 온통 기도하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며 북적댔다. 그것은 경사였다. 지금은 폐허만 남은 채 홀로 누워 있는 저고리골의 절터는 조선조 말엽까지만 해도 포동리 사람들의 신앙심을 가꾸어 오던 그런 곳이었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