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부처님의 은혜

미륵부처님의 은혜

조선 제 14대 선조(1567–1608)때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학선면 학대리 광암 마을에 정씨라는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마음씨도 착하고 일도 잘했으나 아이가 없었다.

집안도 그리 넉넉하진 못했으나 그래도 아이 없는 적적함에는 비길 수 없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전혀 아무런 소식이 없자 정씨 내외는 명산대찰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정씨는 꿈을 꾸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소에 쟁기를 메워 밭을 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보습에 뭔가 이상한 물체가 걸려 나왔다. 돌미륵이었다. 정씨는 몰던 소를 한 녘에 세워 놓고 돌미륵을 밭 가장자리로 모시고 나왔다. 그는 풀잎을 베어 깔고 그 위에 미륵 부처님을 안치하고는 열심히 절을 했다. “미륵부처님. 저의 소원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저는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오직 제가 바라는 것은 저희 내외에게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미륵부처님, 부처님은 온갖 것에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저의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그때 미륵부처님의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희가 그토록 아들 얻기를 원하는데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느냐. 우선 나를 먼저 구해 주길 바란다.”

“부처님께서 어떤 일이 있으시기에 미천한 중생에게 구해 달라 하십니까?” 그때였다. 부처님의 이마에서 한 줄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나며 하늘을 향해 뻗쳤다. 거기에 오색찬란한 구름들이 형성되면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정씨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앗! 이 찬란한 광명이!” 그 소리에 놀라 문득 깨어 보니 꿈이었다.

정씨는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하려 하다가 아내가 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물었다. “짐은 뭐하러 싸는 거요?” 아내가 답했다. “잊으셨어요? 우리가 명산대찰에 기도하기로 했잖아요. 어서 가십시다.”

아내를 따라 여러 곳을 다니며 기도가 잘된다는 도량에서 정착을 했다. 그들 내외는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옛날 환웅은 신단수 아래 내려와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

그런데 그 웅녀란 여인은 본디 곰이었다. 그녀는 곰으로 있을 때 사람되기를 원하여 호랑이와 같이 백일기도에 들어가 삼칠일 동안 마늘 한 쪽과 쑥 한 줌을 먹으면서 기도한 끝에 웅녀로 변했다. 호랑이는 그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사람으로 환생하지 못했다. 삼칠일 만에 곰이 사람으로도 변했는데 백일기도만 하면 우리의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정씨는 그렇게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열심히 기도했다. 백일기도가 끝나 갈 무렵 피곤하여 잠시 졸고 있는데 정씨의 부인 꿈에 미륵부처님이 나타나 말했다.

“그대의 남편에게 나를 구해 주면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했는데, 그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다. 이제 그대에게 거듭 말하노니 잊지 말라. 나를 구해 주면 너희 소원을 꼭 이루어 주리라.” “예?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요?” 그 소리에 옆에서 기도하던 정씨가 부인을 흔들며 말했다. “꿈을 꾸었나 보구려.” 그제서야 아내는 남편에게 미륵부처님을 만난 꿈 얘기를 했다.

남편 정씨는 비로소 그 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던 미륵부처님을 생각해 냈다. 다음날 기도회향을 하고 곧바로 집에 돌아온 정씨 내외는 괭이를 들고 꿈에 보았던 밭으로 갔다. 그리고 둘은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참을 파들어 갔을 때 괭이에 찍히는 게 있었다. 미륵부처님상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 정씨 내외는 미륵부처님을 파내 집에 모셔다 놓고는 아침 저녁으로 정성껏 불공을 드렸다.

그렇게 불공을 드리기 백일이 지난 어느 날, 정씨 부인은 큰 잉어를 품에 안는 꿈을 꾸었다. 정씨도 듣고 틀림없는 태몽이라고 너무너무 기뻐했다. 내외는 서로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들의 볼을 타고 내려오는 기쁨의 눈물도 계속되었다. “여보, 부인. 오늘부터는 힘든 일일랑 하지 마오. 내가 물도 길어 오고 불도 때 주겠소. 당신은 몸조심을 해야 하오.” 정씨 부인은 남편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격했다.

가난한 살림과 적적한 생활에 남편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는 결코 가장이라 하여 혼자 뻐기거나 잘난 체하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자상한 남편이었다. 그녀는 과연 태기를 느꼈다. 심한 입덧을 하였다. 하지만 모든 게 즐거웠다. 시간이 나면 늘 부처님을 염했고 늘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모난 음식을 삼가하였고 비탈진 길을 걷지 않았다.

그녀의 태교는 철저하였다. 그렇게 열 달이 되어 정씨 부인은 준수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야말로 옥동자였다.

금실이 유달리 좋은 정씨 내외는 부러울 게 없었다. 천성적으로 착한 두 내외는 좀 가난하다는 게 불편하기는 했지만 생글생글 웃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금세 모든 고통은 사라졌다. 정씨 내외는 미륵부처님의 가피를 잊지 못해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이 아침 저녁으로 감사기도를 올렸다.

공양도 지어 올렸고 과일이나 푸성귀나 일단 들어온 것은 먼저 미륵부처님께 올렸다가 내려 먹곤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년쯤 지나니 일은 그런대로 잘 풀렸다. 이웃집에서는 정씨 내외의 착한 성품을 높이 평가하여 소작거리를 많이 대 주었다. 정씨 내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게다가 풍년이 들어 큰 수확을 거두었다.

살림이 불어나자 그들 부부는 집 뒤에 전각을 짓고는 미륵 부처님을 모셨다. 이 전각을 당집이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미륵당이라고 한다. 정씨 내외는 환갑을 맞았다. 그만큼 많은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하루는 정씨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가 미륵부처님의 은혜로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왔잖소?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늘 보시를 가르치셨소. 그리고 착한 일 많이 하라고도 하셨소.

우리가 이제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소. 이번에는 우리도 좋은 일 한 번 합시다.”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요?” “내 의견은 이렇소. 우리집 재산 중 아들녀석의 몫을 제외하고는 우리보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줍시다. 어차피 죽을 때 가져 가는 것도 아니잖소.” 부인은 정씨의 마음이 착한 데 대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물욕이 없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착한 남편덕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요.” 그들은 뜻이 맞았다. 이튿날 그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동네 사람들을 초청했다. 사람들은 마음씨 착한 정씨네 집에 무슨 경사가 있나 보다 하고 몰려들었다. 한참 흥이 무르익어 갈 무렵 정씨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셨는지요. 사실은 오늘 우리 두 사람의 회갑입니다.” “허!” 사람들은 그제서야 몰랐다는 듯 미안해 하면서 정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오늘 이런 자리에서 꼭 말씀드리고자 함은 저희가 갖고 있는 재산에서 아들놈의 것 일부만 빼고 나머지는 다 모든 분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나누어 준다고요? 재산을요?” “그렇습니다. 저희 내외가 이렇게 아들을 얻고 넉넉하게 살아온 것은 모두 미륵부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회갑을 맞아 저희들은 모든 재산을 여러분에게 골고루 나누어 드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극락정토의 길을 닦고자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씨 내외의 뜻이 하도 고마워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꼭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전답 가운데서 가장 좋은 논 몇 마지기와 밭 몇 백 평을 미륵부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그야 여기 모인 우리도 찬성이지요.” “거기서 얻어지는 수확으로 매년 미륵부처님께 공양을 올려 언제나 공양이 끊이지 않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뜻에 따랐다. 그 뒤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미륵부처님께 재를 올리고 있다. 재를 주관하는 사람은 일주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공양을 올리는데, 자식 없는 아낙네들이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져 온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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