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 속 53존의 불상들

범종 속 53존의 불상들

신라 제2대 남해왕(4–23재위) 원년, 즉 서기 4년에 유점사가 창건되었다. 이는 중국에서 최초로 세워졌다는 불교사원 백마사보다 63년이나 앞서는기록이다. 그러니까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것이 공식적으로는 고구려소수림왕 때(327년)라고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민간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거의 4백여년 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유점사란 글자 그대로 ‘느릅나무에 걸리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엇이 느릅나무에 걸렸을까. 53존의 불상을 싣고 온 법종이 느릅나무에걸렸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매우 아름다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직접 부처님을 뵐 수 있었고 그리하여 마음속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많은 제자들과 불자들은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문수보살은 다른 큰스님들과 함께 두루 돌아다니며 법문을 설하였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뵙지 못함을 아쉬워하자, 문수보살은 금으로 불상을 조성케 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부처님의 모습과 매우 닮은 53존의 불상을 택하였다. 문수보살은 이번에는 철로 커다란 범종을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종속에 53존의 불상을 안치하고 단단히 봉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한 다음 바다에 띄웠다. 종은 바다에 두둥실 떴다. 떠내려가는 범종을 바라보며 문수보살은 발원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얼을 담은 화신의 53존 부처님이시여. 바라옵건대 인연있는 나라에 닿아 불법을 널리 펴시옵소서. 또한 부처님을 모르는 중생들과 인연을 맺게 하옵소서.” 함께 따라온 큰스님들도 염원했다.

“부처님이 가시고 나서 부처님을 뵙고자 하나 뵈올 길이 없나이다. 저희들도 그러하온데, 하물며 가엾은 중생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나이까. 부디많 은 인연을 짓게 하옵소서.” 불상은 종에 실려 잘도 떠내려갔다. 하늘의 용이 그 종이 바닷속에 가라앉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종은 이윽고 사마르칸드 지방에 해당하는 월지국에 이르렀다. 월지국왕은 대신들과 정사를 논한 뒤 지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여 침소에 들었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꿈에 한 신인이 나타나 쉬어가기를 청했다. 왕은 인자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잘 꾸며진 숙소에 신인을 모셨다. 그 때 신인이 말했다. “다만 쉬어 가고자 함이니 그리 부담 가질 필요는 없소. 그나저나 저 앞바다에 나가 보시오.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소.” 월지국왕은 신인을 안내한 뒤 나오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제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왕은 꿈이 하도 선명하여 대신들을 이끌고 바다에 나가 보았다. 해안에 웬 시커먼 물체가 떠내려 와 있었다. 신하를 시켜 조사해 보니 범종이었고, 그 종 속에는 53존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순금으로 조성된 불상은 월지국왕의 마음에 환희심을 일게 하고도 남았다. 왕은 서둘러 절을 지어 불상과 종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절에 불이 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이었다. 애석해 하며 다시 복원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터에 꿈에 웬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그 종과 불상은 인연처가 따로 있으니, 그 부처님을 다시 모실 생각은 그만두시오.” 왕은 애석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다시 백금으로 포장하고 물과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하여 바다에 띄웠다. “어디든 인연이 있는 곳에 닿으소서.” 왕과 신하들은 바닷가에 서서 오랫동안 합장을 하고 염원했다. 종은 저멀리 가물거리며 수평선 위에서 사라져갔다. 그렇게 몇달이 걸려 떠내려가던 종과 불상은 마침내 지금의 강원도 간성지방에 해당하는 안창현에 닿았다. 그 고을의 현재인 노춘은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다가 수평선 저 멀리 웬 이상한 물체가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동헌으로 돌아와 아전들을 모았다.

그리고 함께 바닷가로 나갔다. 그런데 이미 범종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아전이 소리쳤다. “여기 웬 이상한 자국이 있습니다.” “이상한 자국이라니?” “보십시요. 여기 무슨 커다란 물건이 지나간 흔적이 있지 않습니까?” 현재인 노춘은 무릎을 쳤다. “그랬구나. 그 자국이 어느쪽으로 났는지 얼른 조사해서 보고하라.” 사람들은 범종이 지나간 자국들을 찾아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풀도 나무도 모두 그 범종이 지나간 방향 쪽으로 쏠려있었다.

개구리도 뱀도 나비도 벌레도 모든 곤충과 새들도 범종이 지나간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있었다. 현재는 생각했다. ‘이는 필시 신불이 신라에 오심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처럼 기이한 현상이 벌어질 리 없으리라.’ 방향은 금강산 쪽이었다.

현재 노춘과 관료들, 그리고 이 소식을 듣고 몰려 나온 백성들은 범종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 금강산 쪽으로 30여 리쯤 갔다. 그때였다. 숲은 햇빛을 가리고 언뜻언뜻 터진 사이로 이따금씩 햇살기둥을 만드는데 어디선가 은은한 범종소리가 들려 왔다. 종소리 나는 곳으로 찾아가 보니 느릅나무에 범종이 걸려있었고 치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울고 있었다. 현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합장 배례하면서 부처님의 가피를 기원하였다. 누군가 소리를 쳤다.

“여기 웬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닙니다. 여기 보십시오, 여기.”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말하는 쪽을 보니 자그만 연못이 있고 그 연못가에 황금으로 된 53존의 불상들이 나란히 앉아 계셨다. 사람들은 이 엄청난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민간에서는 이미 부처님에 대한 얘기가 나돌았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시며, 어리석은 중생들의 의지처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는 지방장관들과 백성들의 뜻과 정성을 모아 그 곳에 절을 짓고 53존의 불상을 안치하였다. 이 절은 범종이 느릅나무에 걸려 있었다 하여, 절 이름을 ‘유점사’라 지었고 오래도록 신라인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었다. 나중에 삼국이 통일되고,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점사는 선 수행의 도량으로 점차 변모해 갔다. 지금도 유점사에는 53존의 부처님이 월지국에 잠시 머물렀던 인연을 상기시키기 위해 만든 ‘월지왕자’라는 사당이 있고 새 떼가 몰려와 바위를 쪼고 땅을 쪼아 팠다고 하는 ‘조탁정’이란 우물이 있다.

거기에 모셔진 53존의 부처님은 ‘무량수경’에 나오는 53존으로 이른바 과거 불사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선재동자의 구도적 스승이었던 53선지식을 상징한다고도 하며 또는 53지위점차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것은 이 53존의 부처님이 2천년이 흐르도록 이 땅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고 진리를 갈구하는 중생들에게 감로의 법을 전했다는 점이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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