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지의 예술혼이 담긴 황룡사 구층탑

아비지의 예술혼이 담긴 황룡사 구층탑

“일층은 일본이요, 이층은 중국이며, 삼층은 오월이요, 사층은 탁라며, 오층은 응유요, 육층은 말갈이며, 칠층은 단원이요, 팔층은 여적이며, 구층은 고구려와 백제를 상징한다.” 황룡사 구층탑을 세우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아홉 나라 내지는 열 나라의 조복을 받기 위함이라고 신라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탑을 조성한 사람은 백제의 예술가인 아비지 였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632 646 재위) 12년인 서기 643년 신라의 승통인 자장율사는 당나라 황제로부터 불상, 불경, 가사 등을 받아 가지고 신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 신라 왕 선덕여왕에게 고했다. “대왕마마,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불심이 깊은 선덕여왕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운다? 거 좋은 생각 이오만, 경은 무슨 이유로 황룡사에 탑을 세우며 또 그것이 왜 꼭 구층탑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자장율사는 구층탑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낱낱이 얘기했다. 이 말을 들은 여왕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그런데 누구를 장인으로 삼아 탑을 세우려고? 우리 신라에 탑을 세울 만한 장인이 있기는 하오?” “황공하오나 신라에는 그럴 만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장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백제에 유명한 탑조각과 건축예술에 뛰어난 장인이 있다고 합니다.” 여왕은 맑은 눈망울을 크게 떴다. “그가 누구요?” 자장이 말했다.

“아비지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뛰어난 예술감각을 지닌 자라 합니다. 왕명으로 청하오면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좋소. 경이 알아서 주선하도록 하시오. 일체를 경에게 일임하겠소.” “황공하오이다, 여왕마마.” 자장은 지난 일을 생각해 냈다.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계를 받은 자장율사는 태화지를 지나는 길에 우연히 현신한 신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 신인에게서 수법을 받았다.

그때 신인이 말했다. “지금 그대의 나라 신라는 여자를 왕으로 삼고 있군. 덕이있고 인자함이 좋기는 하지만 위엄이 없네. 그래서 이웃나라들이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그대는 속히 신라로 돌아가라.” “돌아가면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소서.” 자장은 공손히 청했다. 이때 자장의 나이는 아직 젊었다.

이제 갓 서른 고개를 겨우 넘어섰을 때였다. 신인이 말했다. “황룡사의 호법룡은 나의 큰아들이다. 현재는 범왕의 명을 받아 황룡사를 보호하고 있다. 본국에 돌아가 그 절에 구층탑을 세우면 이웃의 모든 나라들이 항복을 할 것이요, 아홉 나라가 와서 조공을 바칠 것이다.

또한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요, 만일 탑을 세운 뒤 팔관회를 베풀면 왜적이 침범치 못할 것이다. 아울러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사면하면 왕덕을 칭송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경기 이남에 정사 하나를 짓고 나에게 복을 빌라. 나 또한 그 덕을 갚을 것이다.

” 말을 마치자 신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자장이 선덕여왕 앞을 물러나와 조정대신들과 황룡사에 세울 구층탑에 대해 상의 했다. 대신들도 백제의 아비지가 적임자라고 했다. 조정에서 비단과 보물 등을 백제에 보내고 아비지를 초청했다. 한편 백제 조정에서는 신라에서 보내 온 예물과 아비지의 청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으나 아비지를 보내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아비지는 조정의 특사 자격으로 신라에 간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망설였다.

신라는 결국 백제의 적국이 아닌가. 적국의 예술적 문화유산을 만들어 주기 위해 떠나야 한다는 것이 서글펐다. 왜 백제는 그러한 탑을 세우지 못하는가. 만일 백제에서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탑을 쌓는다면 자기의 몸이 부숴져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능히 해 내고 싶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가까운 친구들을 비롯하여 백제의 관료를은 말했다.

“아비지, 자네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 하지만 적국인 신라에 백제의 혼을 심고 돌아온다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가게. 가서 백제인의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게. 신라에는 전국을 통틀어도 자네 같은 예술가가 없을 걸세.” 아비지는 백제 수도 사비성을 떠나 서라벌에 도착했다. 한편 신라에서는 17관등의 서열 중 제2서열에 해당하는 아간 용춘이 먼 곳까지 마중을 나왔다.

아간이라면 총리에 해당하는 품계였다. 아간의 영접을 받은 아비지는 비록 적국일 망정 마음 뿌듯했다. 아간 용춘의 협력과 신라의 소장파 예인들의 협조를 받으며 탑불사에 들어갔다. 두 달 남짓 지나자 황룡사 법당 앞에 2백 25척(78미터)의 높은 탑주가 세워졌다. 탑주가 세워지던 날 밤, 절 마당에 나와 탑주를 바라보는 아비지의 마음은 매우 흡족했다. 달은 휘영청 밝았고, 멀리 남산과 토함산을 병풍처럼 두른 가운데 우뚝 솟은 탑주는 미완성이지만 기품이 있어 보였다.

북국사의 여덟 배에 해당하는 황룡사 넓은 도량, 대웅전을 비롯하여 온갖 당우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솟아오른 탑주는 흡사 사열을 받는 국왕과도 같아 보였다. “영겁에 길이 남을 탑을 세워야지.”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던 아비지에게 순간 의문 하나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런데, 이상하군. 왜 절을 지을 때 함께 세우지 않고 이제와서 탑을 세운담. 그리고 구층탑을 세우는 이유가 뭘까?’ 그는 혼자 경내를 거닐며 계속 중얼거렸다. 그날 밤 아비지는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백제를 치는 꿈에서 깨어나 혼자 생각에 잠겼다. ‘예술이고 뭐고 안 돼. 고국으로 돌아가야해. 이러다가 영영 처자식과 이별하고 말지도 모른단 말야.’ 그는 신라를 빠져 나갈 결심을 했다. 짐을 챙긴 후 밤이 되길 기다렸다.

달은 밝았다. 몰래 아간 용춘의 침소를 빠져 나온 아비지는 황룡사에 이르렀다. 그는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꿈이 단지 꿈이기만을 기원했다. 백제의 멸망은 안 될 일이기에. 법당에서 나와 다시 한번 탑주를 바라보는 아비지의 마음은 감회가 새로워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기 전에 백제로 돌아가야 하리. 아, 나의 꿈이 다만 꿈으로 끝났으면.’ 마음을 다지고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었다. 달이 밝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사나운 바람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와서는 탑주를 중심으로 회오리를 치며 솟아올랐다. 먹장구름이 달빛을 가렸다. 아비지는 놀라 법당으로 뛰어들었다. 법당에 들어서면서 밖을 내다보는 순간 그는 또 한 번 놀랐다. 미친 듯한 바람도 먹장구름도 모두 걷히고 천둥 번개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만 밝은 달빛 아래 탑주만이 우뚝 서 있었다. 참으로 일순간의 일이었다.

그는 밖으로 나오려다 흠칫 놀라 안으로 뒷걸음질쳤다. 광풍과 먹구름, 천둥과 번개가 멈춘 마당 가운데에 낯모를 노스님 한 분과 키가 아홉 자나 되어 보이는 장수 한 사람이 나타나 자기가 그 동안 애써 세웠던 탑주와 똑같은 탑주를 세우는 것이었다. 실로 찰나의 일이었다. 아비지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아비지는 생각했다.

‘이것은 필시 부처님께서 나에게 탑불사를 계속하라는 계시일 것이다.’ 아비지는 생각을 고쳐 다시 탑불사에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지의 가슴에 또 한 번 파문이 일었다. ‘이 탑이 완성되면 아홉 나라에서 신라에 조공을 바친다고…’ 그는 더 이상 탑을 조성할 수 없다고 마음먹고 짐짓 생병을 앓기 시작했다.

아비지에게 사모의 정을 품은 채 늘 가슴만 조이던 낭자가 있었다. 그녀는 아간 용춘의 외동딸이었다. 그녀는 문병과 간병을 핑계삼아 방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지극정성으로 아비지를 보살폈다. 하루는 아비지가 물었다. “아미 낭자, 그대는 구층탑을 세우려는 의도를 알고 있지요?” “소녀는 모르는 일이옵니다.” 아비지는 아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낭자도 틀림없는 신라의 여인이군.” 아미 낭자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인사, 특히 아비지에게는 극비에 해당하는 일이었으므로 발설할 수가 없었다.

사모하는 사람 앞에서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자신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아비지가 불쌍하고 측은하게 보였다. 며칠간 병석에 누워 있던 아비지는 모든 것을 단념키로 하고, 병석에서 일어나 탑불사에 다시 전념했다. 마침내 총 높이 2백 25척의 거대하고 웅장한 탑이 완성되었다. 그는 탑을 바라보다가 문뜩 무슨 생각에선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아비지의 눈에서는 주먹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도도히 흐르는 강가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는 백제의 사비성이 있는 쪽을 향해 큰절을 네 번 올렸다. 그리고 반짝이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풍덩.” 아비지가 물 속에 뛰어든 것이다. 아비지를 사모하던 아미 낭자였다. 그녀는 함께 죽음으로써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을 완성하려 했던 것이다. 한편 구층탑을 세운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고 그 탑은 신라의 3대 보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탑이 있던 경주 황룡사지 일대를 구황동이라 부른다. 일설에는 황룡사의 구층탑을 줄여서 구황동이라고도 한다. 또 황룡사, 분황사, 황복사 등 ‘황’ 자가 들어가는 절이 아홉 개가 있었다고 해서 구황동이라고도 하고, 또는 진흥왕 때 황룡사터에 신궁을 지으려고 하는데 아홉 마리의 황룡이 나타나 승천하므로 궁궐 대신 절을 세우고 구황동이라 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황룡사는 빈터만 남아 있고 구층탑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만, 경주시 구황동에는 아비지의 예술혼이 아직도 살아 남아 있는 것이다. <동봉스님이 풀어쓴 불교설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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