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 ”
“단월이 시주하기를 즐겨 하면 하나를 베풀어 만 배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신이 항상 가까이 모시며 안락하고 장수할 것입니다. 단월이 시주하기를 즐겨하면 하나를 베풀어 만 배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신이 항상 가까이 모시며 안락하고 장수할 것입니다. 단월이 시주하기를…” 점개스님의 염불 축원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앵무새마냥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축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와 허공을 맴돌다가는 단월의 집으로 날아들어가곤 했다. 점개스님은 서라벌 내 흥륜사에서 나온 화주승이었다. 나이는 이제 마흔을 조금 넘을까 말까한 정도였으나 그의 걸음걸이는 노숙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큰스님의 행동거지와 음성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점개스님의 외모와 음성에 경외스런 시선을 보내곤 했다. 점개스님의 복안장자의 문 앞에 이르니 문을 지키던 하인이 넙죽 절을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큰스님. 오늘은 어떤 복을 나누어 주고 가시렵니까?” 점개스님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하인들에게 말했다.
“복이라! 암, 나누어 드려야 하구말구. 옛소, 복받으시게나.” 점개스님이 주장자를 날렸다. 주장자가 표르르 날더니 하면 들 앞에 툭 떨어지며 땅에 꽂혔다. 그러자 그 주장자에서 갑자기 새순이 돋더니 순식간에 숲을 이루고 새들이 깃들였다. 하인들은 생전 처음보는 점개스님의 신통력에 벌리니 입을 다물줄을 몰랐다. 그들은 환희심에 들떠 점개스님에게 수없이 절을 했다.
그러나 점개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무에 손을 댔고 나무는 다시 주장자로 돌아왔다. 점개스님이 말했다. “복안장자에게 전하시게나. 밖에 점개라고 하는 한 비구가 화주를 하러 왔노라고. 그리고 이렇게 축원하더라고 전하시게. 단월이 시주하기를 즐겨 하면 하나를 베풀어 만 배를 얻고 천신이 항상 가까이 모시며 안락하고 장수할 것이라 하더라고” 한편 하인의 말을 들은 복안장자는 즉석에서 비단 50필을 불사에 보태라며 시주하였다.
이 복안장자의 집에는 또 다른 하인 모자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결조라 했고 아들은 대성이라 했다. 이들 모자는 원래 모량리 사람이었는데, 일찍이 가장이 세상을 떠나가 살기가 너무 힘들어 복안장자의 집안에 들어가 온갖 잡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마음씨가 후덕한 복안장자는 논밭 몇 마지기를 떼어내어 이들 모자에게 주고, 또한 해마다 새경을 후하게 베풀었다. 대성도 이제는 소년티를 벗어나 열댓 살이 되었고, 어엿한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머리도 매우 총명하여 복안장자는 대성을 지극히 총애하였다. 때마침 복안장자가 시주하는 것을 지켜 본 대성은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어머니 경조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어머니. 매우 중요한 일이 있어요.” “뭔데 그리 호들갑이냐?” “네, 흥륜사에 계신다는 점개스님께서 화주를 하러 내려오셨는데 그 스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축원을 하고 계셨어요.” “재미있는 축원?” 풀을 뽑던 여인은 아들의 말에 호기심이 났는지 손을 털며 아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소년 김대성이 말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일 단월이 시주하기를 즐겨하면 하나를 베풀어 만 배를 얻을 것이요, 천신이 항상 가까이 모시며 안락하고 장수할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를 베풀어 만배를 얻는다고요, 어머니!” “그래, 그렇기는 하다만 우리가 뭐 가진게 있어야 보시를 하든 말든 하지.” “어머니, 우리는 복안장자가 주신 논밭 몇 마지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 논밭을 부처님께 바치면 어떨까요?” 여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나마 있는 논 밭을 불전에 시주하면 우린 뭘 먹구 사느냐.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구나.” “어머니, 우리는 복안장자의 집에 있는 한 먹고사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 제 말대로 그렇게 하셨으면 해요. 우리가 금생에 이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도 모두 전생에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만일 금생에 또 베풀지 않으면 내생에는 더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 그렇게 하세요, 어머니.” 여인은 아들의 보챔을 이기지 못해 허락하였다.
“그래, 네 소원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려무나.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느냐?” 대성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논밭 문서를 들고 가서 점개스님에게 바쳤다. “우리의 전 재산이에요. 부처님께 잘 기도해 주세요.” 점개 스님은 대성이 올리는 밭문서와 논문서를 받고 축원하였다.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신 분이니, 너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아무 염려 말거라. 너는 네가 베푼 것의 만 배 이상을 얻으리라.” 소년 김대성은 마음이 흐믓했다. 세상은 버린 자의 것이라던 어느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모두를 버릴 때 모두를 얻는다고 했다. 주려 끼고 있으면 마음은 그 끼고 있는 것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라고 했다. 한낮의 햇살이 산산히 부서져 내리며 들판이고 계곡이고 집이고 산등성이고를 가리지 않고 비쳤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김대성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 경조는 땅을 치며서 통곡했다.
“불전에 시주하면 시주한 것의 만 배를 얻고 길이 안락하며 천신이 가호하고 장수를 누린다더니 말짱 헛말이었구나. 세상에,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그 어린 나이에 데려가다니,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얼마를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꿈에 아들 대성이 나타나 말했다. “어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소자는 이제 우리가 불전에 시주한 공덕으로 서라벌 김문량의 가문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업에 이끌려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니라 복 지은 인연 공덕으로 짐짓 몸을 버리고 새 몸을 받아 나는 것입니다.
어머니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열 달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대성아! 대성아! 대성아! ” 사라져가는 대성을 부르다가 깨어 보니 꿈이었다. 그녀는 꿈이 하도 선명하여 서라벌의 대신 김문량 댁을 언젠가 방문해 보리라 마음 먹고 대성의 장례식을 간소하나마 정성껏 치렀다. 한편 서라벌의 대신 김문량은 적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벼슬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아들을 얻지 못해 늘 그것이 근심이었다.(내 비록 재상이 되었으나 아들을 얻지 못했으니, 아무리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은들 어디에 쓰리오. 어찌하면 아들을 얻을 수가 있을까?)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공중에서 소리가 있었다. “재상 김문량 공이여! 너무 그리 고적해 하지 마오.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오. 그 대신 그대는 부처님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는 큰 원을 내시오. 그러면 부처님께서 그대에게 아들을 얻도록 가피할 것이외다.”
김문량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마루 끝에 나서며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추녀 끝으로 보이는 하늘을 주시하고 있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아들을 얻게 되거든 그 아들을 위해 큰 불사를 하도록 하시오.” 김문량이 소리 나는 쪽으로 얼른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 말을 마치고 표표히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영락없는 관세음보살이었다.
재상 김문량은 관세음보살이 사라진 곳을 향해 수없이 절을 했다. 그 산이 바로 남산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안 되어 김문량은 다시 꿈을 꾸었다. “모량리의 김대성이가 그대의 집에 태어나리니 잘 길러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시오.” 김문량이 꿈을 깨고 다시 부인을 불러 꿈 이야기를 하자 부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다만 부인의 꿈은 몇 마디가 덧붙여 있었다고 했다.
“그 김대성이는 본디 모량리 사람인데 서라벌의 갑부 복안장자의 집안에 살고 있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경조라고 한다. 그 김대성이가 오늘 아침나절에 몸을 버리고 그대의 태내에 들었다.” 부인과 자기의 꿈을 종합하여 검토한 김문량은 사람을 시켜 복안장자네 집에 그러한 사실이 있었는가를 알아보게 하였다. 이윽고 하인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주인대감 내외분께서 꾸신 꿈이 그대로 사실이옵니다.
김대성이는 열댓 살난 소년이었는데 오늘 아침나절 갑자기 세상을 하직했다 하옵니다.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과연 그 일이 있고 나서 김문량의 부인은 태기를 느꼈다. 유달리 입덧을 심하게 하는 부인을 보고 김문량은 틀림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부인의 입덧이 있고 7개월쯤 지나 부인은 아기를 낳았다. 순산이었다.
그런데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왼쪽 주먹을 말아 쥔 채 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아기가 주먹을 펴지 않아 김문량은 점술가를 불렀다. 점술가가 말했다. “이 아기는 전생의 어머니가 오시기 전에는 절대로 손을 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전생에 누구였는가를 증명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니 이 아기의 전생 어머니를 부르십시오.” “허, 그것참! 여봐라. 이 서라벌 내의 갑부 복안장자의 집에 가서 경조라는 여인을 모셔오도록 하라.” “에이” 분부를 받은 하인이 복안장자의 집에 이르러 경조 여인을 데리고 왔다. 그러자 아기는 태어난 지 일 주일밖에 안 되어는데도 생글 생글 웃으며 주먹을 폈다.
그런데 그 손바닥에는 ‘대성’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김문량은 비로소 모든 것이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믿고 아이의 이름을 그냥 대성이라 부르게 하였다. 대성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머리가 총명하여 열두서너 살이 되자 이미 학문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고 또 무예를 익혀 활쏘기, 말달리기, 창과 칼쓰기와 수레몰기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대성은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 곰 사냥을 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날이 어두워져 더 갈수가 없게 되자 대성은 산 아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곰 사냥을 하고 난 대성은 들뜬 기분에 잠도 잘 오질 않았다.(아! 나는 곰을 잡았다. 나는 곰을 잡았다구 아마 서라벌안에서 나만큼 활을 잘 쏘는 사람은 없을걸.) 그러다가 그는 잠이 들었다.(으악! 곰이다 곰!) 그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곰이 말을 했다. “나는 네가 죽인 곰의 귀신이다. 네가 나를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죽이리라.” 대성은 땀을 비오듯이 흘렀다. 대성이 마구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말했다. “네가 곰의 귀신이라면 정말 미안하다. 나는 죽는게 그다지 섧지가 않다. 다만 나는 전생의 어머니와 금생의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렴.” 곰 귀신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헀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참으로 딱하게 되었구나. 하지만 나는 내 원수를 갚아야 겠다.” 곰의 귀신이 다시 달려들었다. 곰 귀신은 실제 곰보다 더 무서웠다. 더 날렵했고 더 컸다. 게다가 곰 귀신은 말을 할 줄 알았다. 대성이 생각했다.(나는 전생에 하도 가난하여 어머니에게 졸라 논 밭 몇마지기를 흥륜사 스님께 보시하고 금생에 그 공덕으로 명문대가 재상의 집안에 태어났는데 이제 와서 곰의 귀신에게 영락없이 죽게 되었구나 어찌한다?)
그에게 순간적으로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곰 귀신이여! 내가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을 하면 나를 안 잡아 가겠는가? 가령 절을 지어준다면 어떻겠느냐?” 절을 지어 준다는 말에 곰 귀신은 달려들던 동작을 멈추며 말했다.
“절을 지어준다고 했겠다? 그렇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지. 만일 절을 지어 나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 주고 또 나와 같은 모든 살아 있는 산짐승을 마구 죽이지 않은다면 그도 손해날 것 같지는 않구나. 꼭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꼭 그렇게 하겠다. 나만 잡아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냥도 하지 않겠다. 미안하다 곰귀신이여!” 꿈을 깨고 난 대성은 그길로 화살을 꺾어 버리고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곰 사냥을 했던 자리에 절을 짓고 장수사라 이름하고 곰 귀신 천도재를 올렸다. 대성이 장성하여 벼슬길에 나가자 대성의 전생 어머니와 금생의 부모도 모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어느날 대성은 부인을 불러 의논했다.
“여보 부인! 부모님의 은혜는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다고 했소. 나는 전생의 어머니와 금생의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살았는데 이제 그분들이 모두 세상을 뜨셨구려. 내 들으니 부모님 위한 가장 좋은 효도는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열심히 지극 정성으로 재를 올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던데 당신 생각은 어떠하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절을 짓도록 하시지요. 어차피 재산은 있는 것이고 당신도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리 어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대성은 부인의 말에 크게 감격했다. “고맙소 우리가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겠소? 우리, 있는 재산을 모두 털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부모님의 명복을 빌어드립시다.” 그렇게 해서 김대성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었다.
토함산 중턱 동쪽 기슭에는 석굴암을 지어 전생의 부모님의 명복을 빌었으며 토함산 남쪽 자락에는 불국사를 지어 금생의 부모님의 명복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