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위국의 제타 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실 때였다.
그 당시 베를 짜며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은 수마 였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집에 한 되의 곡식도 저장할 수 없는 날품팔이로 겨우 그날그날을 연명해 가는 처지 였다.
어느 날 수마는 자신의 신세를 되돌아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전생에 보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같은 가난과 고통을 겪는다.
그렇다면 현재에 보시를 하지 않으면 곧 닥쳐올 미래세에 가서는 보다 더한 가난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부터라도 노력해서 조그마한 물건이나마 보시하여 내세에는 보다 나은 과보를 받아야 겠다.
어느날 수마는 실 한 타래를 구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거리 복판에서 발우를 든 부처님이 여러 바구들과 함께 걸식하는 모습을 보았다.
수마는 들고 있던 실타래를 만지작거리며 ‘이거라도 부처님께 보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이를 보시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 실을 받아들더니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몇 군데 떨어진 가사를 꿰매시었다.
이때 부처님께서 떨어진 가사를 꿰매시는 것을 본 수마는 너무도 기뻐 부처님 앞에 엎드려 예배를 드린 후 큰 서원을 세우고 다움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비록 변변치 못한 보시이지만
큰 복밭을 만났기에 보시하나니
서원대로 미래세에는 성불하여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려 하오니
큰 덕망을 갖추신 부처님께옵서
이 일을 증명해 주소서.
부처님께서도 게송으로 답하셨다.
그대 이제 나를 만나
성실한 신심으로 보시하였나니
미래세에 가서 성불할 때엔
십언이란 명호로 그 소문이 널리 퍼져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리라.
수마는 부처님의 게송을 듣고는 더욱 깊은 선심과 공경심을 내어 땅에 엎드려 예배한 다음 다음과 같은 큰 서원을 세웠다
“원컨대 이 실을 보시한 공덕으로 미래세에는 눈 어두운 자에게 밝은 눈을 얻게 하고, 의지할 데 없는 자에겐 의지할 곳을 얻게 하고, 구호를 받지 못한 자에겐 구호를 받게 하고, 해탈하지 못한 자에겐 해탈하게 하고, 평온하지 못한 자에겐 평온을 얻게 하고, 열반에 들지 못한 자에겐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게 해주소서.”
이와 같은 서원을 세우자 부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고 곧 얼굴에 다섯 빛깔의 광명을 나타내시니, 그 광명이 세겹으로 부처님을 둘러싼 후에 부처님의 정수리로 들어가 버렸다.
이때 아난다가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함부로 웃음을 나타내지 않으시는데 지금 빙그레 웃으신 까닭은 무엇 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아난다야, 너는 저 가난한 수마가 나에게 실을 보시하고 환희심을 내어 큰 서원을 세우는 것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저 수마가 정성어린 마음으로 나에게 실을 보시하였기에 그는 미래세에 성불할 때 십연이란 명호로 한없는 중생을 제도할 것이니 이 때문에 웃었을 뿐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여러 비구들은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을 더욱 받들어 존경하였다
(천집백연경)
내가 소유하고 아끼는 것을 남에게 베풀라는 가르침은 단순히 ‘남에게 주라’는 의미가 아니라 부의 증대는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에서 출발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나의 풍요는 곧 타인의 풍요이어야 한다는 생각, 나의 풍요를 남에게 베풀고 안녕과 평화를 함께 나누어 생명을 보전하고, 진리를 베풀어 바른길을 함께 걷자는 이타적인 행위가 바로 불교가 가르치는 보살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