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였다.
그 당시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어서 품팔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도리천( 利天)은 아주 즐거운 곳이며 그곳에 태어나려면 부처님과 스님을 공양해야 된다는 말도 들었다.
그는 스님들에게 크게 공양하려면 금 30냥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는 곧 어느 장자를 찾아가서 자기를 써달라고 했다.
장자가 물었다.
“너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
“저는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3년 동안 일해 준다면 얼마를 주시겠습니까?”
장자는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는 청년을 쓰기로 결정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 30냥을 찾아갈 것이다.”
이렇게 일꾼으로 들어간 그는 3년의 기한이 차서 품삯을 받게 되었다.
장자가 품삯을 주면서 물었다.
“너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느냐?”
“저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그릇과 쌀. 국수 등을 너에게 줄 것이니 음식을 만들어 부처님과 스님을 청하도록 해라.”
청년은 즉시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에 초청하였다.
부처님은 이 청년의 공양 초대를 여러 스님들에게 알려 참석하게 했다.
청년은 금 30냥을 들어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놓고 스님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스님들을 초청한 날이 명절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음식을 해 가지고 스님들에게 가져갔다.
그래서 스님들은 배를 잔뜩 채운 뒤에 그 청년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소식을 받은 스님부터 “조금만 다오.”하더니, 모두가 하나같이 “조금만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그만 근심이 태산 같아 울음을 쏟았다.
3년 동안 고생하여 준비한 음식을 스님들이 많이 드시기를 바랬는데 드시지 않으니 큰일이었다.
천상에 태어나는 소원은 이루어지기 틀렸다고 생각하며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다.
“스님들이 제 공양을 드시지 않으니 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청년에게 물으셨다.
“전혀 드시지 않던가?”
“아닙니다. 조금은 드셨습니다”
“그러면 되었다. 전혀 드시지 않더라도 너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인데, 하물며 조금씩은 잡수셨다니 너의 소원은 이루어 질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청년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서 자신도 음식을 먹었다.
여러 스님들은 공양을 끝내고 모두 돌아가고 없었다
이날 마침 5백명의 상인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다.
그들은 온 성안을 뒤졌으나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근년에 없던 흉년을 만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때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어떤 청년의 집에서 오늘 보시회를 열었으니 거기 가면 음식이 있을 것입니다.”
청년은 음식이 산더미처럼 남아 큰 걱정을 하고 있는데, 마침 상인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굶주린 배를 채우고 난 상인들은 고맙다며 모두가 한 가지씩 선물을 했다.
제일 나이 어린 상인은 만 냥짜리 구슬 하나를 주었고, 제일 나이 많은 상인은 10만냥의 값이 나가는 구슬 하나를 선사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구슬하나씩을 주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구슬을 받기 위해 음식을 준 것이 아니라며 그 구슬을 받지 않고 곧 부처님께 가서 아뢰었더니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것이 현세에서 받는 과보 이다. 갖는다 해도 괜찮을 것이다.
너는 후세에 반드시 천상에 태어날 것이니 두려워할 것이 없느니라.”
청년이 품팔이를 했던 주인 장자에게 외달이 있었는데, 그 주인은 청년에게 딸을 아내로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장자가 목숨을 마치자 마사닉왕은 젊은 신랑이 총명하고 지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장자의 재산을 모두 그 신랑에게 주었다.
원래 이 나라 법은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재산은 국가에 귀속되게 되어 있다.
이리하여 청년은 가업이 융성해져서 마침내 사위성 안에서 제일 가는 부호가 외었다.
이와 같이 그가 받는 현세의 과보도 이러한데 후세에 받을 과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잡보장경)
보시 즉 남에게 베푼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보시의 의미는 하늘이 베푼 부를 자기 혼자 소유할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공유하려는데 있다.
기업이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기업윤리도 큰 뜻의 보시행위 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보시의 참뜻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TV한대, 쌀 몇 가마니 보시했다고 해서 신문이나 방송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으려는 속셈은 명예를 바라는 야욕이 깃들여 있기 때문에 참된 보시의 공덕이 될 수 없다.
보시는 베푸는 이의 지극한 정성과 기쁜 마음 이외에 조금도 삿된 생각이 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