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곡(南谷) 화상 –
도란 깨닫기도 어렵지만 깨달음 뒤 그것을
지켜나가기도 어렵다.
옛날 남곡(南谷) 스님이라는 분이 지리산 천은사에 살고
있었다. 일찍이 출가하여 한 소식을 얻었다.
스님은 늘 실상사(實相寺)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공부를 점검하고 있었다.
한번은 실상사를 갔다가 안팎으로 거의 백리가 넘는
벽소령(碧少嶺)을 넘어가는데
소금 한 가마니를 짊어진 소금장수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산은 높이가 1천미터가 넘는 곳이라,
소금장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이 차서 헐떡거리기
시작하였다. 짐이라는 것은 지고 내려가기도 힘드는
것인데 하물며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는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남곡 스님은 혼자 같으면 빈 몸으로 설렁설렁 걸어
훌훌 날아올라가겠지만 소금장수가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애처롭게 올라가는데야
혼자 그냥 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님은 속으로
‘처자식을 먹여살리기가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불쌍하게 생각하고 말을 건네었다.
“여보, 염감, 짐이 무거우신 것 같은데 내가 좀 지고 갈까요?”
“이 놈의 소금이 팔아봐야 몇푼어치 되지도 않으면서
사람의 골만 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주신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고맙기는 뭐가 그리 고마울게 있겠습니까?
어차피 나는 빈 놈으로 가는 사람인데요……”
“그러면 알아서 하시구려.”
하고 영감님은 소금을 내려놓았다. 스님이 지게를 지자,
“스님, 미안합니다.”
하고 감사의 인사말을 하였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내가 영감님보다야 나이로 보나
기운으로 보나 났지 않겠습니까? ”
하고 팡팡 걸어갔다. 영감님도 발걸음 가볍게 따라갔다.
얼마쯤 올라가다 남곡 스님이라고 별 사람일수가 없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그렁그렁 하더니 조금 있으니까
등에서 빗물 같은 땀이 쏟아졌다.
코에서는 단 냄새가 나고 입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물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산봉우리에
무슨 물이 있겠는가. 얼마쯤 가야 마실 물이 있으므로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빨리 그곳에 도착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그만 돌 뿌리에 발이 채어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바람에 소금가마니가
언덕바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소금장수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
“앗! 저런 변이 있나.”
소금장수의 벼락같은 소리에 넘어졌던 스님은 아픈 것도
생각 않고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소금 섬이 걸려있는 곳까지
뛰어 내려가서 가마니를 추켜들고 올라왔다.
소금 섬이 끌러져 약간 흩어졌으므로 그것까지 마저 내려가서
옷자락에 쓸어 담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 영감은 뻑뻑한 말로,
“여보, 대사, 소금 섬이 그만하기에 다행이지 아주 쏟아져
버렸더라면 어떨 번하였겠소?”
“미안합니다. 어쩌다 잘못하여 그리되었으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소금장수 영감은 막무가내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말이 튀어나왔다.
“여보 대사, 잘못하였다고만 하면 그만이오,
소금이 다 쏟아졌더라면 어쩔 번했어?”
“소금 섬이 아주 터졌으면 큰일날 번했지만 그리되지 않았으니
불행중 다행이지 뭡니까?”
“뭐라고, 불행중 다행이라고? 남의 물건을 짊어졌으면 조심해야지
소금까지 쏟아놓고 불행중 다행이라는 말을 어디서 쓰는 거요?”
스님은 좀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소금만 귀한 줄 알았지 사람 중한 것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보통 그리되었으면 소금은 나중 일이고 우선 다치지 않았느냐고
신변의 안부를 묻는 것이 상례인데 전혀 딴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또 큰 소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이게 어디서 굴러먹다가 온 중놈이여,
그래도 잘했다고 변명을 하고 대들어!”
“당신이 대들었지 내가 대들었오, 나는 미안해서 자꾸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으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 했으니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짐이나 짊어지고 어서 갑시다.”
그런데 영감은 끝끝내 고집을 풀지 않았습니다.
“남이야 지고 가건 말건 네가 무슨 상관이야?”
“허, 이렇게 빽빽한 양반은 처음 보겠네.
아, 이미 잘못한 것을 가지고 아무리 추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오.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
생각하시고 이해하십시오.”
“뭐, 이 자식이, 나보고 빽빽한 양반이라고?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너 이놈 맛 좀 봐라.”
하면서 대뜸 주먹을 쥐고 뺨을 후려갈겼다.
“아이쿠……”
하고 남곡 스님이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볼테기를
쓰다듬으려 하자 소금장수는 아주 화가 낫는지 다가서서
이 뺨 저 뺨을 마구 치고, 멱살을 잡고 발길로 차고
아무데나 두들겨 팼다.
남곡 스님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우두커니 방어만 하고
섰으니까 아주 바보인 줄 알고 이제는 큰 돌멩이를 들어서
머리에 치려고 달려들었다.
스님은 그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워낙 기운이 장사라
두 손에 힘을 주니 돌멩이가 땅에 떨어졌다.
남곡 스님은 타일렀다.
“피차 이러다간 길도 가지 못하고 고생만 할 것 같소.”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내 손을 놓아라!”
손을 놓으니 그는 두말하지 않고 소금 짐을 걸머지고
씩씩거리면서 고갯길을 올라갔다.
남곡 스님도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생각하였다.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로고. 저런 인생과 같이 사는
처자식은 얼마나 따분하고 속이 상할까?’
이렇게 생각을 다지면서 속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따라갔다. 그런데 소금장수는 또 얼마 올라가지
아니하여서 비지땀을 흘리며 끙끙거리기 시작하였다.
남곡 스님은 또 마음이 퍽 안되게 생각되었다.
“힘드시죠?”
“네, 힘듭니다.”
“아까는 내가 실수를 하여 소금 짐을 넘어뜨렸으나 이번에는
조심하여 져다 드릴 테니까 지게를 내려놓으십시오.”
하니 소금장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소금 짐을 내려놓고
뚫어지게 스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곡 스님은 조금도 불쾌한 마음이 없이 소금 짐을 짊어지고
이제는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발자국에 맞추어서 염불하면서
걸어갔다. 얼마쯤 가다보니 헤어질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지게를 내려놓고 남곡 스님이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인사하니 소금장수는 그때서야 물었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시요?”
“나는 천은사에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에 도승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만
아직까지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야
비로소 도승을 뵈온 것 같습니다. 미처 내가 속이 없어
스님에게 행패를 부려서 죄송합니다.”
“내가 실수한 것이 잘못이지 영감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스님같은 도인에게 행패를
부려 다음에 어떤 과보가 올지 두렵습니다.”
“내가 무슨 도승입니까. 이렇게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도반일 뿐입니다. 부처님은 누구에게나 힘을 따라 자비를
베풀어라 하셨습니다만 나는 그러한 마음도 없이하였으니
뒤에 과보가 올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고 서로 웃는 낮으로 헤어졌다. 그 영감님은
집에 돌아와 처자 권속을 모아놓고 말하였다.
“나는 오늘 부처님을 보았다. 2천여 년전 부처님이
인도에 나셨다 하더니 그가 죽어 우리 나라에 태어난 듯하다.”
하며 그간의 모든 사정을 말하고 온 가족이 함께
떡과 엿을 빚어 그 스님을 공양코자 천은사를 찾아갔다.
남곡 스님은 그 때 똥통을 지고 밭에 나가 채소를
가꾸고 있었다.
“어, 어, 소금장수 영감님이 여기 웬일이요?”
하고 반겨 맞아주자, 아내와 남편, 한 아들과 두 딸이
길거리에 넙죽 엎드려 오체투지하고 절로 함께 들아가서
크게 공양을 올린 뒤 며칠을 스님의 뒷일을 보아주고 떠났다.
그때서야 천은사 스님들도 남곡 스님이 실로
숨은 도인임을 깨닫고 큰스님으로 대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 도를 찾는 사람은 많고 도를 행하는 사람은 드물다.
도는 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도를 행하는 사람에게 있으니
사람들아, 도를 입으로만 말하기에 앞서, 도를 몸으로 행할 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