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 원효 척판 구중(海東 元曉 擲板 救衆)

무량수(無量壽)

신라(新羅)의 원효(元曉)스님이, 좌천(지금의 척판암)에서 선정삼매에 들어있었다.

문득 관(觀)하여 살펴보니, 중국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 뒷산이 여름 장마로 무너져 내리려는 찰나였다. 이때 운제사에는 천 명이넘는 大衆이 정진하고 있었는데, 위급함을 알고 깔고 앉아 있던 널빤지를 그곳으로 날려보냈다.

그때 운제사의 한 스님이 도량을 거닐다가 이상한 물건이 마당 한 가운데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대중들에게 알렸다.

천 여명의 대중들이 공중에 떠도는 이상한 물체를 보려고 모두 마당으로 나오자, 그 순간에 뒷산이 무너지면서 법당을 덮쳐 절이 허물어졌다.

아슬아슬하게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대중은 공중에 떠있는 그 물체를향해 합장 예배를 드렸더니, 그 널빤지가 마당에 떨어 졌는데,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신라의 원효가 널빤지를 던져 대중을 구하다'(海東 元曉 擲板 救衆)해동 원효 척판 구중. 이 글을 읽은 대중들은 원효의 道力을 흠모하여,신라 땅으로 원효를 찾아와서 弟子되기를 간청하였다.

원효는 그 들의 청을 받아들여 지금의 내원사를 창건하고, 원적산산중에 88 암자를 두어 일 천여 대중을 가르쳐 득도하게 하였다.

들판에 마련된 설법 자리가 얼마나 성황을 이루었던지, 야단법석(野壇法席) 이란 말이 생겨나 오늘날 도 쓰여지고 있다.

넓은 들판에서 화엄경을 강설하였다 하여 뒷날 사람들이 ‘화엄벌’이라 불렀다.

천 여명이 득도하여 聖人이 되었으므로, 이때부터 원적산을 천성산(千聖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잡역을 하던 열두 스님 중 여덟 명이 대구 桐華寺 에서得道했으므로, 그 절이 있는 산을 ‘八空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나머지 네 스님은, 문경 大乘寺 에서 득도하였다 하여 그 산을’四佛山’이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道가 높은 원효대사 한 사람의 공덕은 무량수(無量壽) 의 생명력으로,천 여명의 생명을 구하고, 得道(득도)를 하게 하였다는 生生한 증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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