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위하여

남편을 위하여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넓고 넓은 들판에 五백 마리의 사슴을 거느리고 있는 왕사슴이 살고 있었다. 그 때에, 이전부터 사슴 떼가 거기에 있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잡으려고 벼르고 있던 한 사냥꾼이 있었다.

그는 오랜 동안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어느 날, 강가에 목책(木柵)을 두르고 거기에 그물을 쳐서 사슴을 잡을 차비를 갖추었다. 사슴들은 그런 무서운 함정이 있는 줄은 몰랐으므로 무심코 강가에 놀러 갔었다. 왕사슴이 앞장을 서서 가니 밑의 五백 마리의 사슴들은 줄레줄레 그 뒤를 따라왔다.

맨 앞장을 선왕은 맨 먼저 사냥꾼의 함정에 걸려 들고 말았다. 이것을 본 사슴들은 놀라서 모두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왕의 아내 사슴만은 그 남편이 걸린 그물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왕사슴은 그 목책을 끊어 버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암만해도 끊을 수가 없었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그물이 몸에 엉키어 더욱 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왕사슴의 아내는 남편인 왕사슴의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

『힘센 왕사슴이여, 빨리 그물을 끊으라. 무서운 사냥꾼이, 잡으러 오오.』

하고 남편에게 주의와 격려를 보내었다. 그러나 왕사슴은,

『애써도 소용이 없네. 목책은 높고, 두발은 묶이어, 사무치는 이 아픔.』

하고 대답하였다.

이 때, 사냥꾼은 손에 활과 살을 들고 몸에는 가사(袈裟)를 걸치고 왕사슴에게 다가와서 죽이려고 하였다. 적이 접근해 왔으므로 아내 사슴은 다시 왕사슴에게,

『힘센 왕사슴이여, 빨리 그물을 끊으라. 무서운 사냥꾼이 잡으러 오오.』

하고 사태가 위급함을 알리었다. 그러나 왕사슴은 또 다시,

『애써도 소용이 없네. 목책은 높고, 두발은 묶이어, 사무치는 이 아픔.』

하고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였다.

남편이 아무리 목책을 끊고 도망치려 하여도 도망할 수가 없음을 안 아내 사슴은 이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게 되어 배짱을 정하고 사냥꾼의 곁으로 가서,

『사냥꾼이여, 그 활과 살을 버리라. 칼을 들어 나를 죽이고, 다음에 왕사슴에 달려들라.』

하고 애원하였다.

이 암사슴의 말을 들은 사냥꾼은 깜짝 놀라,

『그런 말을 해도 소용없다. 대체 이 그물에 걸린 사슴은 너의 무엇이냐.』

『나의 남편이요.』

사냥꾼은 이 사슴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먼저 버리는 갸륵한 마음씨에 감격하여,

『나는 너를 해치지 않으리. 또한 왕사슴도 죽이지 않으리. 부부 다시 사랑하고,

즐거이 살아가기 바라네.』

하면서 왕사슴의 발에 엉키어 있는 그물을 끊고 놓아 주었다.

암사슴은 사냥꾼이 그물을 끊고 남편을 구하여 주었으므로, 매우 기뻐서,

『남편과 나란히 재생(再生)을 얻어 사랑의 보금자리 찾아서 가오. 자비로운 그대 집안에도

행복이 있기를 빌면서.』

하고 깊은 감사의 말을 남기고, 왕사슴과 함께 기쁘게 그곳을 떠나갔다. 부부사슴이 손에 손을 잡고 정답게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사냥꾼은 기이(寄異)와 감격에 잠기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암사슴은 지금의 아난(阿難)이요, 왕사슴은 지금의 석존이시다.

<毘奈耶破僧事第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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