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주물 무서운줄 알아야 한다”

중생의 앞일까지 내다본 선지식

“시주물 무서운줄 알아야 한다”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노스님은 사중(寺中)의 물건을 어찌나 아끼는지 구두쇠로 널리 알려질 정도였다.

심지어 공양간에 두고 써야 할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을 극락암 공양간에서는 구경할 수 없었다. 고춧가루통, 깨소금통은 말할 것도 없고 참기름병까지 조실스님이 당신의 방 벽장에 넣어놓고 그날그날 필요할 때만 잠시 꺼내주면서 일일이 관리를 하고 계셨다.

어느날, 통도사의 다른 산내암자에 있던 비구니들이 극락암으로 경봉스님을 찾아뵈었다가 점심공양 때가 되어 공양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공양간에 고춧가루통도, 깨소금통도, 참기름병도 없었다.

한 비구니가 조실스님께 여쭈었다.

“스님요, 고춧가루가 어디 있습니까?”

“고춧가루 예 있다. 너무 많이 치지 마라.”

“스님요, 깨소금통도 안보이는데요?”

“그래, 깨소금도 예 있다. 조금만 쳐라.”

“참기름도 여기 있다. 한방울만 쳐라.”

“아이구 스님요 왜 이런 양념까지 조실스님이 방안에다 놓고 쓰십니까? 공양간에 내 놓고 쓰게 하셔야지요.”

“모르는 소리 말거라! 이 귀한 양념들 저놈들한테 맡겨 놨다간 큰 일 난다. 일주일 동안 이 참기름을 써라 하고 맡겼더니 이틀만에 다 쳐먹어버렸다. 그래가지고 절 살림 어찌 살겠노?”

그래서 경봉스님은 양념통에 참기름병까지 당신께서 일일이 간수하시며 “적게 써라”, “조금만 넣어라”, “한방울만 쳐라” 노래를 부르듯 하셨다. 시주물로 들어온 것이니 쌀 한톨, 고춧가루 하나, 배춧잎 한 장도 무서워할 줄 알아야 참된 수행자라는게 경봉스님의 가르침이었다.

그러시면서 경봉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어느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일본 조동종의 사찰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기라.

한 수좌가 보자니까, 살림을 맡고 있는 원주 스님이 매일밤 자정쯤 되면 아무도 모르게 무엇을 끓여서 혼자만 먹는 것이었다. 그래, 수좌가 조실스님께 이 사실을 일러바쳤다. 그 말을 들은 조실스님이 그날밤 숨어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과연 원주스님이 한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남모르게 무엇을 끓여 먹는 것이었다. 그때 조실스님이 ‘이 것 봐라, 너 혼자만 먹지 말고 나도 좀 먹어보자’했더니, 원주가 별수없이 먹던 것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그래 그걸 먹어보니 냄새가 고약해서 먹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조실스님이 ‘이게 대체 무슨 음식이냐?’고 원주에게 물었더니, 그제서야 원주가 할수없이 대답하기를 ‘공양주들이 누릉지와 밥풀을 아까운줄 모르고 하수도에 버리니, 그걸 주워다가 끓여먹는 것입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원주소임을 맡았으면 그만큼 쌀 한톨, 밥풀 하나라도 귀하고 소중하고 무섭게 알아야 하는기라. 그래서 선문(禪門)의 규범에 이르기를 ‘한 낱의 쌀이 땅에 떨어져 있으면 나의 살점이 떨어진 것과 같이 여기고, 한방울의 간장이 땅에 떨어지면 나의 핏방울이 떨어진 듯 생각하라’고 이른 것이야.”

“묘엄 같으면 얼마든지 캐라”

경봉스님이 머물고 계시던 극락암 대밭 앞에는 절에서 가꾸는 고소밭이 있었다. ‘고소’라는 채소는 스님들이 즐겨 드시는 채소인데 처음 먹으면 빈대냄새가 나서 먹기가 힘들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먹다보면 그 독특한 향기와 맛에 ‘고소’를 다시 찾게 된다.

어느날 극락암에 ‘청담스님의 딸’로 잘 알려진 묘엄비구니가 도반들과 함께 경봉스님을 뵈러 찾아왔다.

“스님 그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그래. 우짠일로 왔노?”

“스님요, 고소 몇 뿌리 얻어다 심을까 합니다. 몇 뿌리만 캐가게 해 주이소.”

“고소?”

“예 스님.”

“안된다.”

경봉스님은 한마디로 잘라버리셨다.

대밭 앞에 저토록 많은 고소가 있는데 단 몇 뿌리만 캐다가 심겠다는데 일언지하에 안된다니, 과연 무서운 구두쇠 노스님이 아니신가? 묘엄이 다시 한번 스님께 통사정을 했다.

“스님요, 몇 뿌리만 캐다가 심을테니 허락해 주이소 스님요.”

아직 나이 어린 묘엄이 이렇게 통사정을 하자 경봉노스님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그래? 그럼 어디 내 보는데서 고소를 한번 뽑아 보거라.”

“아이구 감사합니더 스님.”

경봉노스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묘엄은 합장배례하며 감사를 표하고 공양간으로 들어가 식칼을 가지고 나오더니 그 칼로 고소를 캐는게 아니라 그 칼로 대나무 쪽을 쪼개어 끝을 뾰족하게 깎은뒤, 그 대나무꼬챙이를 고소밭에 콕 찔러서 고소뿌리를 하나씩 솎아내고 뽑은 자리는 발로 꼭꼭 밟아주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경봉스님이 드디어 빙긋이 웃으시더니 한말씀 하셨다.

“니 참말로 잘한다. 그렇게 얌전하게 제대로 캐갈라면 한소쿠리라도 캐가거라.”

“아이구 스님, 우짠 일이십니까?”

“내가 와 안된다고 했는줄 아나? 고소 몇 뿌리만 뽑아가겠다고 해서 허락해주었더니, 호맹이로 지멋대로 파 뒤비놓고 고소밭 다 망쳐놓고들 안가나. 그래서 마 속이 상해서 안된다고 한기다. 그런데 니는 참 아가 됐는기라. 너같이 그리 얌전하게 뽑아갈라면 얼마든지 뽑아가거라. 요 다음에도 얼마든지 뜯어다 묵어라.”

“아이구 스님 감사합니다.”

“아이다. 하는짓이 이쁜데 무엇이 아깝겠노.”

경봉노스님은 그런 분이셨다. 제대로 된 수행자에게는 아까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제대로 되어 먹지 못한 사람에게는 경봉스님은 송곳 꽂을 땅도 허락지 않는 무서운 분이었다.

“너는 30살 되면 환속하겠고, 나는 40이 되면 속환이 되겠고, 또 니는, 5,6년 못가서 중노릇 그만 두겠다!”

경봉스님은 당신을 찾아온 사미니들에게 인정사정없이 그렇게 단언을 하셨고, 그 무서운 예언은 훗날 모두 사실로 입증되었다. 스님의 예언대로 모두들 환속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경봉스님은 중생들의 미래까지도 정확히 내다보고 계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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