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왕자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왕자의

아쇼카왕(阿輸迦王)의 왕비의 한 사람인 연꽃부인은 왕의 아이를 배어 달이 차자 한 왕자를 낳았다. 점잖은 얼굴에 매우 아름다운 눈을 가진 왕자이었다.

대신은 이 일을 곧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님, 축하하옵니다. 왕자께서 탄생하셨습니다. 더우기 아주 훌륭하시고 매우 시원스러운 눈을 가 진 왕자입니다.』

왕은 이 소리를 듣고 매우 기뻐하며,

『우리 공작 왕통(孔雀王統)은 명예로운 왕통이다. 더우기, 나는 불법의 융성에 힘을 썼다. 그 공덕으로 이 아이가 태어난 것이리라. 나는 이 아이에게 법익(法益)이라는 이름을 붙여 줄 것이다.』

거기에 유모가 갓 태어난 왕자를 안고 왕에게 보이려 왔다.

왕은 이 왕자를 보고 매우 귀엽고 또 기쁜 나머지 노래로써 말하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눈이냐.

이 얼마나 고상한 눈이냐.

피기 시작한 연꽃인 양,

귀여운 얼굴 위에 반짝이고

둥근 달인 양

누구나 반겨서 우러르네.』

다시 왕은 대신을 보고,

『이토록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인간 세상에서는 보도 듣도 못하였습니다.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구나라새의 눈은 왕자의 눈처럼 아름답습니다.』

왕은 곧 야차(夜叉)에게 명령을 내렸다.

『히말라야에 가서 구나라새를 잡아 오너라.』

야차는 왕의 명령을 받고 순식간에 히말라야에 날아가 구나라새를 잡아 가지고 돌아왔다. 왕은 이 새의 작고 아름다운 눈이 왕자의 눈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보고, 왕자에게 구나라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 구나라 태자는 성장하여, 이윽고 장가를 들었다.

어느 때, 왕은 왕자를 데리고 계두마사(鷄頭摩寺)에 갔더니, 상좌중이 구나라 태자를 보고 왕에게 말하였다.

『태자는 멀지 않아 두 눈을 잃을 것입니다. 왕이시여, 왜 왕자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 주려하지 않습니까.』

왕은 이 말을 듣고서 왕자에게,

『왕자야, 너는 이 상좌를 따라 가르침을 듣도록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구나라는 두 손을 모아 상좌중에게,

『어떤 가르침이십니까. 어서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침대로 따르겠습니다.』

상좌는 엄숙히 왕자에게 가르치기를,

『육안(肉眼)은 덧없는 것이다. 결코 그것을 믿고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여 영원히 상하지 않는 법안(法眼)을 뜨십시오.』

그는 이 가르침을 받고 왕성에 돌아와 조용한 곳을 가려 혼자서 좌선(坐禪)을 하여 자기의 눈에 대하여 이것은 괴로움이요, 헛것이요, 무상(無常)이요, 무아(無我)임을 생각하고 법안을 뜨기를 일심전력 바랐다.

아쇼카왕의 총애를 모으고 있던 또 하나의 왕비가 있었다. 이 왕비는 구나라 왕자의 아름다운 눈에 남모르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왕자가 혼자서 왕궁 한 구석에서 좌선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넌지시 그를 찾아갔다.

왕비는 구나라의 아름다운 눈을 보자 애욕을 누를 길이 없어 느닷없이 왕자에게 달려들어 껴안고 하소연을 하였다.

『불이 산과 들을 태우듯이 사랑이 내 몸을 태우고 있습니다. 왕자여, 이 내 심정을 살펴 주소서.』

인간 세상의 괴로움과 덧없음을 명상하고 있던 지금의 왕자가, 어떻게 요망한 이 사랑을 받아드릴 리가 있으랴.

그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음탕한 마음에 불타고 있는 왕비를 달래었다.

『그런 더러운 소리는

귀를 막고 듣지 않으리.

적어도 어머니라 불리는 몸으로서

그 아들에게 사랑을 건다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길이오니까.

나는 짐승의 흉내를 낼 수 없소.』

자기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는 왕자의 말에 왕비의 가슴은 노여움에 불탔다.

『이토록 간절한 내 심정을 받아주지 않는 너라면 나는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왕자는 대답하여 말하였다.

『더러운 사랑에 사느니보다

깨끗한 법에 죽겠오이다.

사람의 길을 잘못 디디고

부처님의 가책을 받고 싶지 않소.』

왕비는 일다 돌아갔으나 그 후로부터는 구나라를 모함하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어느 때 북쪽의 켄다라국(建馱羅國)의 서울 독사시라에 반란이 일어났다. 아쇼카왕은 친히 가서 토벌하려 하였으나 대신들이 말리기를,

『친히 토벌하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태자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왕은 구나라를 불러,

『너는 독사시라의 반란을 평정할 수가 있겠느냐.』

하고 물으니, 태자는 자신있게,

『평정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왕은 태자의 용감한 말에 매우 만족하여 출진의 준비를 명령하였다. 또 길을 청소하고, 노인과 병자와 거지의 무리를 길 옆에서 멀리하고, 수레에 타고 태자를 국경까지 전송하였다.

작별할 때에 왕은 태자의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독사시라 사라들은 행복하다. 너의 아름다운 눈을 볼 수가 있으니 말이다.』

하고 말하니, 옆에 있던 점장이 바라문은 이것을 가로막으며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대왕은 태자의 눈을 둘도 없는 보배처럼 사랑하고 계시지만, 그 아름다운 눈은 멀지 않아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태자의 눈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그 얼마나 괴로운 생각을 하시게 될지.』

이리하여 태자는 왕과 작별하고 독사시라로 전진하였다. 독사시라 사람들은 태자가 오는 것을 알고, 길을 청소하고 미음 단지를 들고, 항복의 자세를 보이며 태자를 맞이하였다. 태자를 보자, 모두 합장하고 입을 모아,

『독사시라의 백성들은 왕을 배반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태자를 배반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왕을 모 시고 있는 나쁜 대신들에게 항거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공손히 태자를 인도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정성껏 태자의 일행을 환대하였다.

태자는 잠시 독사시라 성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태자가 독사시라 원정길에 오른 뒤에 아쇼카왕은 이상한 중병에 걸렸다. 그것은 입에서 똥냄새가 나고, 온 몸의 털구멍에서 똥물이 흘러나오는 병이었다. 아무도 이 병을 고치는 방법을 몰랐다.

왕은 대신에게 명령하여,

『빨리 구나라를 불러라. 그리고 왕위에 오르게 하라, 나는 멀지 않아 죽을 것이다.』

태자를 원망하고 있는 왕비는 왕의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구나라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나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왕에게,

『저는 꼭 대왕의 병을 고쳐 보이겠습니다. 그 대신 의사를 멀리해 주십시오.』

왕은 왕비의 말대로 의사를 거절하고, 사랑하는 왕비에게 목숨을 맡겼다. 왕비는 전국에 포고를 돌려,

『왕과 같은 병에 걸린 자는 신고하라.』

하였다. 어느 곳에 한 사나이가 있는데, 그것이 왕과 같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이 포고를 듣고, 정직하게 궁중 의원에게 신고해 왔다. 의원은,

『곧 이리 데리고 오라. 고쳐줄 터이니.』

그 소리를 들은 아내는 기꺼이 남편을 데리고 왔다.

왕비는 이 병자를 눕혀 배를 가르고 검사해 보았더니, 뱃속에 큰 벌레가 한 마리 있어 그 벌레가 위로 올라가면 똥도 붙어서 올라간다. 벌레가 아래로 내려가면 똥도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하여, 똥은 언제나 몸 밖으로 배설되지를 않는다. 시험삼아 후추가루를 주어 보았으나 벌레는 죽지 않는다.

다시 여러 가지 매운 것을 주어 보았으나 벌레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최후로 파를 주었더니 벌레는 죽어 버렸다. 그리고 항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 버렸다. 왕비는 파를 먹을 것을 왕에게 권하였다.

그러나 왕은 듣지를 않는다.

『적어도 나는 왕족이야, 어떻게 파 따위를 먹을 수가 있는가.』

왕비는,

『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오니 꼭 잡수십시오.』

왕도 할 수 없이 파를 먹었더니 뱃속의 벌레는 죽어서 똥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리하여, 왕의 병은 거뜬히 나았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왕비에게,

『당신 덕분으로 나는 목숨을 건졌소. 그 보답으로 당신의 소망은 무엇이든지 들어주리다. 무엇이 가지 고 싶은게 있으면 말해 보오.』

그랬더니 왕비는,

『이레 동안 왕의 자리에 올라 보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앙큼한 꿍꿍이속이 있은 줄을 모르는 왕은 그것을 허락하여 이레 동안 왕비를 왕위에 올려놓았다.

구나라에 대한 원수를 갚는 것은 이때라고 왕비는 독사시라 백성에게 보내는 한 통의 조서(詛書)를 꾸몄다.

『태자 구나라는 큰 죄를 범한 자이다. 이 조서가 닿는 대로 당장 그의 눈을 도려내어 성 밖으로 내어 쫓으라. 이 명령에 위반하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

하는 조서였다. 그 시대의 규칙으로 조서는 반드시 그 봉에 왕의 치인(이빨 도장)을 찍기로 되어있었다. 왕비는 치인을 찍으려고 왕이 자고 있는 옆에 갔더니 왕은 갑자기 눈을 뜨고,

『나는 지금 불길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두 마리의 독수리가 태자의 눈을 도려내려는 꿈이다.』

잠꼬대처럼 이렇게 말하고는 또 잠이 들어 버렸다. 지켜보고 있다가 왕비가 치인을 찍으려 하자, 또 눈을 뜨고,

『나는 또 불길한 꿈을 꾸었다. 구나라가 머리털을 길게 땅에 끌고 앉아 있는 꿈이다.』

하고 말하였다. 왕비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것은 좋은 꿈이 아닙니까. 누가 그 점잖은 태자에게 위해를 가하겠습니까. 안심하고 주무십시오.』

이 말을 듣고 왕은 안심하고 또 잠이 들어 버렸다. 왕비는 그 사이에 왕의 치인을 조서 겉봉에 찍어 버렸다. 사자는 이 조서를 가지고 독사시라로 달려갔다. 왕은 그날 밤 또 하나의 꿈을 꾸었다. 그것은 이가 빠져 땅에 떨어지는 꿈이었다. 왕은 아침 일찍 일어나 급히 점장이 바라문을 불러 해몽을 시켰다.

그랬더니 점장이는,

『이 꿈은 태자가 두 눈을 잃게 될 꿈입니다.』

왕은 이 소리를 듣고 손을 모아 시방제불에게 태자의 무사를 빌었다.

한편, 조서를 받은 독사시라의 사람들은 왕의 무정함에 겁을 먹고, 태자의 불행을 동정하여 모여서 협의를 하였다.

『불교를 숭앙하고,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며, 마음속에 거만한 생각을 가지지 않고, 행동에 거칠고 사 나운데가 없는 저 훌륭한 태자가 어째서 죄인이란 말인가. 우리들은 왕의 냉혹 잔인함을 미워한다. 그러나 귀여운 외아들에게까지 이런 형벌을 가하는 왕이다. 만일에 태자를 두둔하였다고 하게 되면, 우리들은 어떠한 혹독한 벌을 받을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고, 이 조서를 구나라에게 내어 보였다. 그는 이 조서의 말을 믿고, 결심을 하고 사람들에게,

『독사시라 사람들이여, 나의 눈을 도려내어 주게.』

그러나 아무도 나아가 태자의 눈을 도려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태자는 선다라(旋陀羅:백정 인도의 천민)를 불러 이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선다라도 응하지 아니하였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의 눈을 도려낼 정도라면 내 눈을 도려내겠습니다.』

태자는 다시 보물상자에 십만금을 채워 그것을 보수로 눈을 도려낼 것을 다든 선다라에게 명하였다. 그 선다라도 도망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태자가 눈을 잃는 것은 그 인연이 이미 성숙된 바이다. 독사시라 사람들은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아니하였으나, 이상한 인물이 나타나 태자의 눈을 요구하였다. 그 사나이는 말할 수 없이 못생긴 추한 사나이였다. 구나라는 이 사나이를 보고 생각하였다.

(언젠가 상좌중이 내 눈의 덧없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 분은 나에게 오늘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그렇게 말해준 것이다. 그 분은 진정 나의 선지식(善知識)이었다. 내가 눈을 잃을 때에 당황하지 않게 하 기 위하여, 그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태자는 상좌중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하였다. 다시 이것을 인연삼아 세법(世法)의 덧없음을 깨닫고자 하여,

(상좌중은 간곡히 세법의 덧없고, 망가지기 쉽고, 곡두와 같음을 설명해 보여 주었다. 나는 내 눈의 망가진 꼴을 보고 깨달음을 여는 계기로 삼고 싶다.)

이렇게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그 추한 사나이에게,

『한쪽 눈을 도려내거든 그것을 내 손바닥 위에 놓아 나에게 보여 주기 바란다.』

그 사나이는 태자의 아름다운 눈을 사정없이 도려내어 그것을 태자의 손바닥 위에 놓았다. 사람들은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모두들 울부짖었다.

『저 아름다운 눈이 저 기품 있는 눈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아름다운 연꽃잎이 진흙 속에 흩어지듯 이』

그렇게 말하고 하늘을 우러러 울었다. 구나라는 손바닥 위의 자기의 눈을 보고, 뼈저리게 육체의 덧없음을 느꼈다.

(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나의 눈이냐. 이렇게 해 버리면 이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것이고, 전에는 음란한 왕비를 유혹하여 음탕한 불길에 몸을 태우게 한 그 아름다운 눈은 보기도 흉한 한 덩어리의 살 이 되어 내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물 위에 뜨는 물거품과도 같이 덧없는 나의 눈이었다. 인연이 풀리 면 언젠가는 무(無)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 이 눈의 덧없음을 보고 생사의 괴로움 을 벗어 보자.)

이 때에 태자는 진리를 알게 되고, 깨달음의 첫걸음을 내어디디게 된 것이다. 이에 추한 사나이를 보고,

『어서 또 한쪽 눈을 도려내어 주게.』

말대로 눈을 도려내어 다시 태자의 손바닥 위에 놓았다. 이 때, 태자에게는 이미 육안은 없어졌지마는 깨끗한 법안(法案)을 얻어, 또렷이 자기 눈의 흉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태자는 법열(法悅)의 눈물을 흘리면서,

『흉한 육안을 버리고

깨끗한 법안을 얻었네,

죽살이(生死)의 아버지를 버리고

법임금의 아들 되었네.

속세의 부귀를 잃고

법의 재물을 잡았네.

길고 긴 괴로움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되었네.』

태자는 그로부터 훨씬 뒤에 이 일이 왕비의 간계였다는 것을 알았으나 결코 그를 원망하지 아니하였다. 원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감사하여 왕비의 장수와 안락을 빌었다. 왜냐하면, 태자는 이 때문에 참된 깨달음의 길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태자의 부인은 남편이 두 눈을 도려내었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태자는 이미 두 눈을 잃고 붉은 피가 근처를 물들이고 있었다. 이 광경에 기절하여 땅 위에 털썩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부인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소생시켰다.

부인은 하늘을 우러러 땅에 딩굴며 몸부림치며 슬퍼하였다.

『그 아름다운 눈, 나를 정답게 지켜보아 주던 그 아름다운 눈은, 다시는 나를 보아 주지 않을 것이구려.』

그렇게 말하고, 태자에게 매어 달렸다. 태자는 정답게 부인을 달래면서,

『울지를 마시오.

옛날의 죄를 이제 알았소.

세상은 온통 고생의 바다,

사랑도 이별이 있으니

서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그러나, 부인은 그저 울기만 할 뿐이었다. 장님의 태자와 울부짖는 태자의 부인은 조서의 명령대로 독사시라성 밖으로 쫓겨나 버렸다. 궁중에서 자라난 그들은 무엇, 하나 생활의 수단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하는 수 없이 거문고를 뜯고 노래를 부르며 이집 저집 동냥을 하면서, 고향을 향하여 유랑의 길을 헤매었다. 풀 베개의 이슬에 몸을 적시고, 들개의 울음소리에 겁을 먹으면서, 숱한 세월이 걸려 가까스로 고향에 다다랐다. 두 사람은 왕궁 문 앞에 이르러, 궁중으로 들어가려 하니, 문지기는 이 더러운 거지가 태자와 그 부인이라는 것을 알 까닭이 없으니 들여보내 줄 리가 없다.

태자는 대문 밖 코끼리 집에서 하룻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거문고에 맞추어, 눈을 잃고 도를 깨달은 자기의 인연을 노래로 불렀다. 문지기들은 이 노래를 듣고, 세상의 덧없음을 깊이 느끼고 눈물을 흘리면서 들었다.

아소카 왕도 대문 밖에서 가물가물 들려오는 거문고와 노래 소리를 듣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저 목소리는 구나라의 목소리와 꼭 같구나. 그런데, 또 무슨 노래냐.』

왕은 그 구슬픈 노래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태자에 대한 그리움에 못 이겨 외치며 말하였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다. 누구든지 가서 노래의 주인을 알아보고 오너라.』

신하 한 사람이 급히 문 밖으로 가서 보니, 햇빛에 그을고 야위어빠진 거지가 그 아내와 함께 코끼리집 안에 앉아서 거문고를 타고 있다. 신하는 왕에게 그렇게 여쭈었다.

왕은 이 소리를 듣고 생각하였다.

(나는 언젠가 구나라가 두 눈을 잃어버린 꿈을 꾸었다. 어쩌면, 그 소경 거지가 구나라가 아닐지 모른 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들 그리운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고, 왕은 신하에게 명하여 그 소경에게,

『네 이름은 무엇이냐. 그리고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하고 물어 오라고 하였다. 소경은 대답하여 말하였다.

『나는 구나라라고 합니다. 전에 나는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아소카왕의 태자였습니다마는, 지금은 가르침에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부처님의 아들입니다.』

왕은 당장 이 소경 부부를 불러들여 만나 보았다. 비바람에 그을러 얼굴빛은 검고, 긴 여행으로 여윌 대로 여위고, 몸에는 누더기를 두르고, 아름답게 반짝이던 두 눈은 흔적도 없이 파여졌지마는 얼굴과 몸매에 조금은 옛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왕은,

『너는 구나라가 틀림이 없느냐.』

하고 물으니 태자는,

『예, 그러하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목소리를 듣고, 왕은 너무도 놀랍고 슬퍼서 기절하여 침상 위에 쓰러져 버렸다. 신하들은 황급히 왕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여러 가지로 손을 써서 겨우 소생시켰다.

왕은 태자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가락으로 태자의 먼 눈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네 눈이 너무도 구나라새의 눈을 닮았으므로 구나라라는 이름을 너에게 붙여 준 것이다. 지금은 그 아름다운 눈은 멀어 버렸다. 구나라라는 이름은 이제 추억거리가 될 뿐이다. 오늘부터 너를 무슨 이름으로 부를까. 구나라야, 네 눈을 도려낸 자가 누구냐, 내게 들려 다오.

하늘에서 달과 별을 따 버리면 그 누가 슬퍼하지 않으랴. 네 얼굴에서 그 아름다운 눈이 멀어져 버렸다. 어찌 이것을 슬프지 않으랴. 구나라야, 누가 네 눈을 도려내었느냐, 너를 이 꼴로 만든 것이 도대체 누구이냐. 나에게 그 이름을 꼭 들려다오. 너의 이 불쌍한 모습을 보니, 나는 몸도 마음도 다 타 버리는 듯하다.』

구나라는 왕을 위로하여 말리었다.

『아버님, 그렇게 슬퍼하지 마십시오. 신앙이 깊은 아버님은 이미 들고 계실 것입니다. 부처님도 과거의 업을 모면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 누구나 숙업에 대한 과보를 받기 마련입니다. 나는 과거세의 죄의 대가로 이 눈을 도려내었습니다. 제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

결코 남을 원 망하지 않습니다. 칼이 도려낸 것이 아닙니다. 불에 탄 것도 아닙니다. 독(毒)에 상한 것도 아닙니다. 독사에게 물린 것도 아닙니다. 나의 과거의 죄가 도려낸 것입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받은 고통인데 어떻게 남을 원망하겠습니까.

육신을 가진 이상은 과녁에 무수한 화살이 박히듯이 무수한 숙업의 과보가 모여듭니다. 내 몸도 그와 마찬가지로 숱한 고통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숙업의 인연으로 알고 그 어떤 고통도 참겠습니다.』

하고, 간곡히 설명했으나, 왕의 가슴의 불은 아직도 꺼지지가 않는다.

『그것이 누구냐. 네 눈을 도려낸 것은. 그 이름을 나에게 들려 다오.』

왕은 미친 듯이 추궁하여 마지아니하였다.

할 수 없이 태자는 왕에게,

『아버님께서는 내 눈을 도려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무어, 내가 명령을 했다고, 만일, 내가 그런 명령을 내렸다면 내 혀를 자르리라.』

『그 조서에는 아버님의 치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이빨을 뽑아버려라. 네 눈을 도려내는 것을 내가 보았다면 나는 차라리 내 눈 을 도려냈을 것이다.』

왕은 궁중의 누군가가 태자를 원망하여 간계를 쓴 것이 분명하다 생각하고 가만히 죄인을 찾고 있었다.

태자가 돌아온 것을 안 왕비는 저지른 죄책감에 시달려 태자의 생모인 연꽃부인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내 눈을 도려내어 태자에게 주고, 거지의 무리 속에 들어가 버리고 싶습니다.』

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태자의 눈을 도려낸 것은 그녀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왕비를 불러다 문초하였다.

왕비는 저지른 죄를 남김없이 자백하였다. 왕은 미친 듯이 대노하여 왕비를 꾸짖어 말하였다.

『이 요망한 계집년, 잘도 지금까지 나를 속여 왔구나, 너 같은 년이 살아남을 땅은 한치도 없다. 너는 내 원수다.』

왕은 몸부림을 치며 원통해 하였다.

노여움에 불타는 왕은 왕비를 노려보며 꾸짖어댔다.

『네년이 태자의 눈을 멀게 하다니. 이제야말로 네년의 살을 뜯어내고, 산채 나무에다 묶어 놓고 톱으로 손발을 끊어버리고, 칼로 혀를 자르고, 도끼로 뼈를 빻아 불구덩이 속에 던져 버릴 것이다. 네년의 입에 독이라는 독을 모조리 몰아넣어 줄 것이다.……』

태자는 이것을 듣고 깊이 슬퍼하여,

『대왕님, 이 부인은 악인의 법을 배웠기 때문에 이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성자 의 가르침을 닦고 행하고 계십니다. 저 왕비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젖먹이나 백치가 한 짓에 성을 내어서는 안 됩니다.』

태자가 아무리 간을 하여도 왕은 듣지 않았다. 왕은 난데없이 감옥을 만들어 그 속에 왕비를 집어넣고, 불을 질러 태워 죽여 버렸다. 왕의 노여움은 그것으로도 풀리지를 아니하였다.

다시 독사시라 성안의 백성을 모조리 불태워 죽여 버렸다.

이 비극을 목격한 중들은 성자 바구타를 찾아뵈고 그 인연을 물었다.

『마음이 맑은 구나라 태자가 어떤 인연으로 눈을 도려내게 되었습니까.』

『옛날, 바라나시에 한 사냥꾼이 있었다. 여름에는 마을에 살고, 겨울에는 산으로 들어가 사냥을 하였다. 어느 겨울에 히말라야산 깊은 속으로 들어가려 했더니 난데없이 커다란 우박이 쏟아져 내렸으므로 한굴속에 몸을 피하였다.

그랬더니, 그 속에 五백마리의 사슴이 살고 있었다. 사냥꾼은 생각하기를 이 사슴을 한꺼번에 다 죽이면 고기가 썩어 버린다. 하루 한 마리씩 죽이리라.

그는 한 마리씩 그 눈을 도려내어 버렸다. 그 때의 사냥꾼은 지금의 구나라이다. 그는 그 업연(業緣)으로 말미암아 五백번의 생을 받는 동안 늘 눈을 도려내게 되었던 것이다.』

중들은 다 듣고 나서, 다시 물었다.

『그렇게 업연이 깊은 구나라가 어째서 또 왕족으로 태어나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진리를 알 수가 있었습니까.』

성자는 또 하나 더 과거의 인연을 이야기하였다.

『옛날, 사람의 목숨이 四만살이나 길던 때의 일이다. 가라가손대(迦羅迦孫大)는 부처가 세상에 나오셨다. 이 부처가 화연(化緣)이 다하여 열반에 드시자, 단엄(端嚴)이라는 국왕이 부처를 위하여 온 돌탑을 세우고, 사방 四십리의 칠보장엄(七寶莊嚴)의 벽으로 둘러쌓다. 단엄왕이 세상을 떠나자 불신(不信)이 라는 사람이 왕이 되었다. 그 왕은 몰래 불탑과 벽에서 칠보를 모조리 떼어 버리고 흙과 나무만 남겨 놓았다. 많은 사람들은 보잘것없이 된 불탑을 보고 울며 슬퍼하였다. 그 째 한 장자의 아들이 이 모습 을 보고 그 유래를 물었다.

사람들은 대답하여 말하였다.

『가라가손대의 불탑은 칠보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칠보를 훔쳐 가고, 흙과 나무만을 남 겨놓고 가 버렸다. 그래서 울고 있는 것이오.』

장자의 아들은 이 소리를 듣고 가엾이 여겨 칠보로 탑을 수리하여 전과 같이 아르답게 장엄하였다. 또 가라가손대불상과 같은 크기의 불상을 만들어, 다시 원을 일으켜 말하였다.

『미래는 이 부처와 같은 맑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시옵소서.』

그 때의 장자의 아들은 지금의 구나라이다. 그때의 불탑을 수리한 인연으로, 지금 왕족의 집안에 태어 난 것이다. 또 그 때의 불상을 세운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단려(端麗)한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 때의 맹세를 한 인연으로 지금 진리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阿育玉息壤因緣>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