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목수의 사랑

어리석은 목수의 사랑

경기도 강화군 소재 전등사를 창건할 때 이야기다.

아침저녁으로 목욕재계하고 톱질 한번에도 온 정성을 다하는 도편수는 어느 날 일을 마치고 피곤을 풀기 위해 마을로 내려와 주막을 찾았다.

텁텁한 막걸리로 목이나 축이려던 도편수는 그만 주막집 작부와 눈이 마주쳤다.

「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 자 이리 가까이 와서 너도 한 잔 마셔라.」

작부는 간드러진 웃음과 함께 술잔을 비우고는 다시 도편수에게 권했다.

「암 들구 말구. 잔이 철철 넘치도록 따라라.」

술이 거나해진 도편수의 눈엔 작부가 더없이 예쁘고 아름다워 보였다.

「너 그 손 참 곱기도 하구나. 이 억센 손과는 비교가 안 되는구나.」

「나으리의 이 손이야말로 보배 손이 아니옵니까?」

「보배라니? 거 별소릴 다 들어 보겠구나.」

「이 손으로 성스러운 대웅전을 짓고 계시니 보배스럽지 않습니까.」

작부가 입이 마르도록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거친 손을 만져주자 도편수는 그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기분이 들떴다.

작부는 이때다 싶어 도편수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앉으며 갖은 애교를 다 부렸다

「정말 나으리의 솜씨는 오묘하옵니다. 나무기둥 조각 하나하나가 어찌 그리 오묘하지요.」

「그래 고맙다.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섭섭할 이 솜씨를 네가 볼 줄 알다니, 오늘밤 내 흠뻑 취할 것이니라. 자 어서 따라라.」

「나으리, 그 공사는 몇 해나 걸리나요?」

「음, 앞으로 대여섯 해는 족히 걸릴 것이다. 한데 그건 왜 묻느냐?」

「소녀가 나으리를 얼마간 모실 수 있나 알고 싶어서지요.」

「오, 거참 영특하구나. 네가 원한다면 내 매일 밤 너를 찾아와서 술을 마실 것이니라.」

「소녀 더 이상 아뢸 말씀이 없사옵니다.」

「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저 이쁘기만 하구나. 이리 더 가까이 오너라.」

「나으리 이러심 안돼요. 이 손 놓으시고 오늘밤은 늦으셨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나으러 모실 날이 오늘만이 아니잖아요.」

「허긴 네 말이 맞다.」

만취하여 주막을 나선 도편수는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거르지 않고 주막을 찾아 곤드레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

그러나 작부는 매일 밤 도편수의 애간장만 태우게 할 뿐 쉽게 정을 주지 않았다.

「허허 목수 녀석, 오늘밤도 돈만 뿌리고 돌아갔구나.」

주막집 노파는 매일 밤 돈을 물 쓰듯 하는 도편수가 마치 큰 봉인 듯 작부에게 단단히 일렀다.

「얘야, 절대로 정을 줘서는 안 된다. 정을 주는 날이면 그날로 돈벌기는 틀리는 게야.」

이 같은 계략을 알지 못하는 도편수는 대웅전 불사가 더디어지는 것도 생각 못하고 매일 술에 취했다.

도편수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초췌해졌다.

작부는 일말의 가책을 느끼는지, 아니면 연민의 정을 느끼는지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제 도편수하고 살림을 차려야 할까봐요.」

「에그, 무슨 소러냐 네 덕분에 내 팔자도 좀 고쳐 볼 참인데…」

「팔자고 뭐고 더 이상 그 순진한 어른을 괴롭힐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쯧쯧, 큰소리 탕탕 치더니 어느새 정이든 모양이구나.」

「아닌게 아니라 정도들만치 들었어요.」

「허나 안 된다. 돈도 돈이지만, 돌쇠가 알면 널 그냥 둘 것 같으냐?」

작부는 그 말에 그만 흠칫했다.

돌쇠와는 오래 전부터 정을 통해온 사이로 돈만 벌면 육지로 나가 잘 살아 보자고 약속한 터였다.

세월은 흘러 대웅전 불사도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공사비로 많은 돈을 받았건만 목수에겐 동전 한 닢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도편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은 약속을 받아내야지. 곧 새 살림을 내자고.」

주막에 이르러 막걸리를 마시며 색시를 찾았으나 보이질 않았다.

「할멈, 색시는 어디 갔기에 이렇게 늦도록 오지를 않소.」

「도편수 어른 뵈러 간다고 나갔는데 웬일일까?」

「나를 만나러요?」

「아니 그럼, 이년이 혹시 그 돌쇠 녀석하고 줄행랑을 친 게 아닌가?」

이미 나룻배를 마련하여 돌쇠와 육지로 도망간 줄 뻔히 알면서 노파는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아니 줄행랑이라뇨? 나를 두고요.」

「글쎄 고것이 사나흘 전부터 어째 수상쩍다 싶더니, 아마 돌쇠 녀석하고…」

「이런 빌어먹을. 」

도편수는 술상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늘엔 별들이 어제와 다름없이 여전히 반짝였고, 바닷바람 역시 무심히 스쳐갔다.

오직 도편수의 마음만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질 듯했다.

몇 날 몇 밤을 지새운 도편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난날의 사랑이 증오로 변하면서 그는 복수를 생각했다.

어느 날 무슨 묘책이 떠올랐는지 목수는 여인상을 깎기 시작했다.

여자의 형체 넷를 조성한 도편수는 법당 네 귀퉁이 추녀 밀에 여인상을 넣고는 무거운 지붕을 받들게 했다.

「나를 배신하다니‥‥어디 세세생생 고통을 받아 보거라.」

장식수법이 화려한 전등사 대웅전(보물제 178호) 네 귀퉁이 용마루 밑에는 지금도 네 개의 여인상이 마치 벌을 서는 형상으로 무거운 추녀를 이고 있다.

이 인물형 조각은 많은 참배객과 관광객등 보는 이로 하여금 도편수의 우매한 사랑과 복수심이 담긴 전설을 음미케 한다.

<한국불교전설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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