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스님이 불교를 열다
백제 본기(本記)에 제 15대 침류왕(枕流王)이 즉위한 갑신년(384)에 인도의 스님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이르니, 그를 맞이하여 궁중에 두고 예로써 공경했다.
이듬해 을유년[358]에 새 서울 한산주(寒山州)에 절을 짓고 스님 열명을 두었으니 이것 이 백제 불법의 시초다. 또 아신왕(阿幸王)이 즉위한 태원 17년[392] 2월에 명령을 내려서 백성들에게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고 했다.
마라난타는 번역하면 동학(童學)이 된다.
백제의 29대 법왕(法王)의 이름은 선(宣)인데, 혹 효순(孝順)이라고도 한다.
개황(開皇) 19년 기미[599]에 왕위에 올랐다.
이해 겨울에 조령(詔令)을 내리어, 살생을 금지시키고 민가에서 기르던 매 따위를 놓아주게 하고 사냥하는 기구를 불살라 살생을 일체 금지시켰다.
이듬해 경신에는 30인의 중을 새로 두고, 그 때 서울인 사비성(泗毗城)―지금의부여―에 왕흥사(王興寺)를 세웠는데, 겨우 담틀(築板)을 세우고 세상을 떠났다.
무왕(武王)이 왕위를 이어 아버지가 시작한 것을 아들이 경영하여 몇십년을 지나서 낙성했다.
그 절을 또한 미륵사(彌勒寺)라고도 한다.
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다보며, 꽃나무가 수려하여, 사시의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왕은 언제나 배를 타고 강물을 따라 물에 들어 그 지형과 경치의 장엄하고 수려함을 구경 했다.
<三國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