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조와 몽불산
「시랑. 삼칠일이 다 되었는데도 아무런 영험이 없으니 필시 과인의 덕이 부족한가 보오.」
「마마, 황공하옵니다.」
참으로 성군이 되기 위해 명산대찰을 찾아 간절히 기도하는 이태조의 모습에 시랑은 감격 했다.
창업이전의 그 용맹 속에 저토록 부드러운 자애가 어디 숨어 있을까.
「마마, 옛부터 이곳 무등산에는 백팔나한이 있고 대소암자가 있어 수많은 산신들이 나한에게 공양을 올렸다 하옵니다. 들리는 바로는 오랜 옛날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설법을 하셨고, 그 후 제불보살이 설법을 한다 하옵니다. 다시 삼일기도를 올리심이 어떠 하올지요?」
「무학스님 말에 의하면 무등이 보살이라더니, 이 무등산에 부처님의 사자좌가 있단 말인가. 시랑, 그대는 과연 생각이 깊소 그려. 과인은 산신재를 그만 둘까 했는데, 곧 삼일 기도를 준비토록 하시오.」
삼칠일 기도에 이어 다시 삼일 기도를 준비하는 태조는 새벽까지 한참 자려고 자리에 들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온갖 망상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창업도중 희생된 고려 충신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들은 태조를 향해 살인자, 반역자라고 저주했다. 태조는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뒤숭숭하고 숨결이 가빠지자 가슴에서 노기가 치밀었다.
칼을 더듬어 짚고 일어서며
「악」
하고 외치는 순간 태조는 악몽에서 깨었다.
「마마, 어이된 연고입니까? 용안이 몹시 피로하십니다.」
「오! 시랑, 거기 있었구려, 꿈을 꾸었소.」
태조의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시랑, 아무래도 과인의 덕이 부족한 모양이오.」
「마마, 황공하오나 옥체가 허약하시기 때문인가 하옵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시고 좀 쉬시옵소서.」
「시랑, 그러면 시랑이 나의 침상을 지켜주오.」
태조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몽롱한 미열 속에 구름을 탄 기분으로 그는 무등산 산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밝은 빛이 사방에서 산두를 비추는데 태조는 그 빛에 이끌리듯 다가갔다.
이윽고 산정에 이르자 한 신령이 그를 기다리 고 있었다.
「태조대왕,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
「과인이 이곳에 온 것을 어찌 알았습니까?」
「오늘이 무등산에서 열리는 우란분재법회 마지막 날입니다. 대왕께서 삼칠일 기도를 올리는 기도처엔 가질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 대왕이 비명을 질러 석가 부처님께서 지신을 보내 연유를 알아오도록 했지요. 자신이 대왕 처소로 가던 중 정몽주 등 고려 충신을 만나 사연을 듣고 왔습니다.」
「정몽주가?」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의 부덕함을 뉘우치는 겸손을 매우 기뻐하시며 맞아오도록 했습니다.
해서 제가 기다리고 있었지요.」
「오, 석가 부처님께서요!」
태조는 감격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두 사람이 법회 장소에 이르자 석가세존은 가부좌를 하고 설법중이었다.
「대왕이시여, 어서 오십시오.」
부처님은 태조대왕을 손짓해 부르며 맞았다.
「세존이시여, 먼 해동국까지 납시어 법회를 설하시는 자비에 감읍하옵니다.」
「대왕이시여, 벗부터 왕도는 치도이며 인도라고 합니다.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자비로써 왕도를 가야 할 줄 압니다.」
「일러 주십시오. 저의 조선조 창업이 그릇되지 않았다면 백성과 사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나이까?」
이 때 세존께서는 주장자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대왕이시여, 나의 주장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시오.」
주장자는 푸른 밤하늘을 가리켰다.
순간 주장자 끝에서 물이 넘쳐흘러 강을 이루고 강가에서 산봉우리가 치솟아 올랐다.
산은 세 갈래로 갈라져 흡사 솥발처럼 솟았다.
복판에는 주장자가 붓 모양으로 변해 하늘에 치솟고 세 개의 산봉우리가 허리에 강을 끼고 둘러섰다.
강물의 흐름소리는 아득한 말소리가 되어
「대왕이시여, 그대의 치세가 만세에 이르고 그 치적을 나는 하늘에 이르고 그 치적을 나는 하늘에 적으리라.」
고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위를 살핀 태조는 놀랐다.
침상가에는 시랑이 조심스럽게 태조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동안 꿈속의 일을 생각하던 태조는 시랑을 불러 꿈 이야기를 했다.
「마마, 필시 기도의 영험인가 하옵니다.」
「옳소, 어서 과인이 꿈에 본 산을 찾도록 하시오.」
마침내 사람을 놓아 담양군 수복면 삼인산이 꿈속의 산과 흡사함을 발견했다.
삼일 기도가 끝난 일행은 곧 그 산으로 갔다.
「오! 과인이 꿈에 본 산과 흡사하구나. 앞으로는 이 산을 몽불산이라 부르도록 해라.
그리고 해마다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기도처로 삼으라.」
그 후 오랫동안 나라에서 올리는 산신재가 이곳에서 열렸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지금도 아들 낳기를 바라는 여인들의 기도처가 되고 있다.
산 이름은 몽불산으로 바뀌었다.
<한국불교전설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