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흥사 창건설화

용흥사 창건설화

용흥사는 이전에도 존속한 것을 보이나, 일설에는 숙빈최씨(淑嬪崔氏)와 관련하여 영조(英祖)가 그의 어머니 최씨를 위해 세운 절이 용흥사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것으로, 숙빈최씨와 용흥사의 인연을 부각시키기 위해 창건설과 직접 연결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영조의 어머니 최숙빈은 창평에서 태어난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는데, 온 가족이 장티푸스에 걸려 동네에서 쫓겨나 인적 드문 용구산의 한 암자에서 살게 되었다.

큰딸인 복순(福順, 숙빈최씨의 이름)은 온갖 정성을 다해 부모와 동생들을 간호했으나 효험 없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복순은 암자에서 매일 기도하며 슬픔을 달래고 있었는데, 어느날 꿈에 암자 뒷산 용구산 산신령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네 효심과 불심이 지극하여 좋은 길을 안내할 터인즉, 내일은 이 암자를 내려가 장성 갈재에 가도록 하거라, 그러면 나주목사 부임행차를 만날 것이고 너는 그곳에서 길을 얻을 것이다.”

이상스런 꿈이라고 생각한 복순은 이튿날 산신령의 말대로 갈재에 나갔더니, 정말로 나주목사의 부임행차가 이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복순은 길에 엎드려 목사 만나기를 청하였고, 자신의 처지와 꿈이야기를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나주목사 부인 민씨는 얌전하고 영특해 보이는 이 소녀를 데리고 가서 몸종으로 삼았다.

민씨부인은 조선 19대 왕인 숙종의 계비(繼妃) 인현왕후 민씨의 친척이었다. 당시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 김씨는 두 딸을 낳았으나 후사 없이 죽고 민유중의 둘째딸이 계비로 들어갔던 것이다.

민비는 왕후가 되고 난 후 궁녀를 모집했는데, 집안인 나주목사 부인이 자신이 데리고 있던 복순을 천거하여 궁중으로 들어가 궁녀가 되었다. 후사가 없던 민씨는 궁인 장씨(張氏)를 후궁으로 맞아들여 장희빈은 2년 만인 1692년에 왕자(경종)를 낳았고, 민왕후는 장희빈의 모함으로 이듬해 폐비되어 안국동에 유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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