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구천동의 유래

백련사 구천동의 유래

전라북도 무주군의 덕유산 계곡을 일컫는 무주구천동은 지금이야 관광객이 끊어지지 않는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깊은 산골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첩첩 산중이었다.

이 ‘구천동’이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명종 때 광주목사를 지낸 임갈천이 쓴 「덕유산 향적봉기」에 의하면 성불공자 9천명이 이 골짜기에서 수도를 했으므로 ‘9천명이 은둔한 곳’이라 하여 이곳을 구천둔(九千屯)이라 하였고, 그들의 아침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은 쌀뜨물로 인해 개울물이 온통 부옇게 흐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이웃고을 금산에 살던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수도를 하기 위해 3년을 약속하고 구천둔에 입산하였다.

그런데 약속한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여인은 남편을 찾아 나섰는데, 2년 동안 찾아 헤매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되돌아갔다고 할 정도로 산과 계곡이 깊다.

이때부터 구천둔이라는 지명이 구천동으로 바뀌어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다른 이야기로서 암행어사 박문수의 설화에 의하면, 이곳에 구씨와 천씨의 성을 가진 집안의 집단주거지인데, 두 성씨를 따서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혹자는 이곳에 기암괴석들 9천 개가 널려 있는 곳이라서 구천동이 되었다는 설도 함께 전하고 있어, 그만큼 이곳 구천동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는 많기도 하다.

숙종 때 소론의 거두였던 윤명제와 같은 이는 구천동을 비롯하여 14개의 사찰을 품고 있는 덕유산을 ‘불교의 소국(小國)’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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