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품에 안고 나은 도선율사
당나라 도선율사(適宣律師)는 이부상서(吏部尙書) 전신(錢申)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아기 설 적에 해가 품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더니, 어려서부터 예법을 좋아하고 행동이 얌전하고 위의가 의젓하였다.
어려서는 글을 읽었고 자라서는 진리를 연구하면서 이렇다 한 큰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제자백가(諸予百家)와 경을른(經律論) 삼장을모두 통달하고, 더욱 계율에 엄정하고 불법을 옹호하며 저술에 힘을 쓰고 율문에 정통하여 천인(天人)들이 항상 모시고 호위하였다. 도선 율사가 오대산에 갔다가 중대(中臺)에 이르러 밤에 좌선하고 있는데 어떤 동자가 곁에서 모시므로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이름은 현창(玄暢)이온데 천인(天人)이옵니다. 제석천왕의 명을 받잡고 오대산에서 수행하옵다가 스님이 여기 계시다 하므로 와서 모시나이다.』
『화엄경에 보면 청량산은 문수보살이 사는 곳이라 하였는데 지금 보건대 등성이와 골짜기에 초목이 우거졌으니, 범부가 사는 곳과 다름이 없거늘 어찌 성인의 경계라 하겠는가?』
『대성인의 경계를 범부나 2승으로는 헤아릴 수 없나이다. 저는 범부요 스님은 2승입니다.』
그러므로 분별이 있는 생각으로는 부사의한 경계를 찾아볼 수 없나이다.
「경계는 하나이나 세 사람의 보는 것이 다르다.」는 말을 스님도 잘 아시리이다.
제각기 업보로 받은 눈이오매, 보는 것은 역시 다른 것입니다. 제가 보기로는 이 오대산은 벽유리 빛이고 다섯 봉우리의 등성이와 골짜기는 모두 보배로 되었사오며, 광명이 항상 찬란하여 밤낮이 다르지 아니하오나, 보살이 계신 곳을 저도 알지 못하나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율사는 건봉(乾封) 2년(667) 겨울에 장안의 서명사(西明寺)에서 입적하였다.
<佛心과 修行功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