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육왕전(阿育王傳)제2권
02. 아육왕본연전(阿育王本緣傳)②
왕이 또 물었다.
“태어날 때 장엄하였다고 하는데 그 일이 어떠하였는가?”
수신(樹神)이 대답하였다.
“말로는 미칠 수 없습니다.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마땅히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곧 게송을 지어 말하였다.
몸에서는 금색의 빛이 나고
인천(人天)이 보기 즐겨하며
대지(大地)와 산과 바다가
풍랑 속의 배와 같이 진동하였네.
왕은 10만[百千] 냥의 금으로 이곳에 탑을 세우고 갔다. 이에 존자는 왕과 함께 가비라(迦毘羅)성에 이르러서 오른손을 들고 말하였다.
“이곳은 보살을 안고서 정반왕(淨飯王)에게 보인 곳이며, 또 모든 석가족[諸釋]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이기도 합니다. 보살이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자 했을 때 니목천상(泥木天像)에 모두가 와서 공경하게 몸을 굽혀 예배하였습니다. 서두단(恕頭檀)왕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천중천(天中天)이라 불렸습니다. 또 모든 관상 보는 스승들을 불러 보살의 상을 본 곳입니다. 아사타(阿斯陀) 선인(仙人)이 보살을 보고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한 곳입니다.”
다시 또 왕에게 파사파제(波闍波提)가 보살을 기른 곳을 보여 주었고, 또 보살이 글을 배우던 곳을 가리켰다. 보살이 코끼리를 타던 곳, 말 타는 법을 배우던 곳, 마차를 타던 곳, 활 쏘는 법을 배우던 곳, 보살이 쉬던 곳, 보살이 6만의 채녀(婇女)들과 함께 놀던 곳, 보살이 늙음·병듦·죽음을 보고 혐오와 걱정하는 마음을 내던 곳들을 가리켰다.
다시 또 왕을 데리고 염보수(閻菩樹) 나무에 이르러 손을 들어 말했다.
“이곳은 보살이 앉아 더위를 식히던 곳입니다.”
또 숲 가운데 이르러서 말하였다.
“이곳은 보살께서 사유하시며 욕망과 악과 선하지 않은 것을 버리고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어 생(生)을 여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에 들어간 곳입니다. 나무는 구부려 그늘을 만들고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으며 즉시 오체투지하여 보살께 예를 올렸습니다.”
성문(城門)을 가리키며 왕에게 말했다.
“이곳은 보살이 10만의 천인(天人)에 의해 앞뒤로 둘러싸여서 가비라(迦毘羅)를 떠난 곳입니다.”
또 말과 함께 영락을 차닉(車匿:찬타카)에게 주어 돌려보낸 곳을 가리켰고, 보살이 혼자 몸으로 숲에 들어간 곳을 가리켰다. 또 보살이 칼로 삭발하여 허공에 던지자 제석(帝釋)이 받들어 모신 곳을 가리켰다. 또 보살이 보의(寶衣)를 사냥꾼에게 주고 가사를 입은 곳을 가리켰다. 또 빈바사라(頻婆沙羅)왕이 나라의 반을 주면서 보살을 청하던 곳을 가리켰다. 또 보살이 아란가라(阿蘭加羅)에 이르러 울두람(鬱頭藍)에게 물었던 곳을 가리켰다. 또 보살이 6년 동안 고행한 곳을 가리키며, 곧 다시 게송으로 설하였다.
보살이 6년 동안 행한 어려운 고행은
뜨거운 재와 가시 위에 몸을 눕히는 일
이것이 잘못된 수행이고 바른 도가 아님을 알고
곧 고행을 버리고 정법(正法)을 닦았네.
다시 보살이 난타(難陀)와 발난타(跋難陀)에게 아주 희유한 우유죽을 받은 곳을 가리켰고, 또 보살이 보리수로 향하던 곳을 가리켰다.
가리키는 곳에 왕은 모두 탑을 세웠다. 존자는 또 가라용왕(迦羅龍王)이 보살을 찬탄하던 곳을 가리켰다. 이 때 왕은 존자의 발에 예배하고 합장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지금 가라용왕이 일찍이 부처님을 뵌 일을 묻고자 합니다.”
존자가 즉시 용왕에게 말하였다.
“빨리 일어나라, 빨리 일어나라. 왕께서 네가 부처님을 뵌 사실에 대해 묻고자 하신다.”
용왕이 곧 일어나 존자의 옆에 와서는 합장하고 말하였다.
“대덕(大德)이시여, 어떠한 약속의 말씀이 있으셨습니까?”
존자가 왕께 말하였다.
“이 자가 바로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한 가라용왕입니다.”
왕은 즉시 합장하고 게송으로써 말하였다.
너는 보았으리라,
불타오르는 듯한 진정한 금빛을.
위없는 세존의
만월(滿月)과 같은 얼굴을.
너는 나를 위해 말해 주어라.
10력(力)이 조금이라도
얼마나 단아하고 엄정하게
보리수를 향하였는지를.
용왕이 대답하였다.
“단아하고 엄정한 일은 말로써 미칠 바가 못 됩니다. 지금 마땅히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설하여 말하였다.
부처님의 발이 땅을 밟을 때
대지(大地) 산하(山河)는
기뻐서 날뛰며
여섯 종류로 진동하였네.
여래의 몸빛은
일월(日月)을 막아 빛을 끊고
시방 세계를 널리 비추어
일체의 어리석은 자에게 이익되게 하였네.
왕은 이곳에 탑을 세우고는 돌아가 존자를 따라 보리수로 향했는데, 존자가 손을 들어 가리키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이곳은 보살이 자비심에 의지한 힘으로 마(魔)의 무리를 무너뜨리고 파괴하여 아뇩다라삼먁삼불타(阿耨多羅三藐三佛陀)를 이룬 곳입니다.”
왕은 곧 그곳에 탑을 세우고, 10만 냥의 금을 보시하였다.
“여기는 4천왕(天王)이 네 발우를 부처님께 바친 것을 여래께서 받아서 합하여 한 발우를 만든 곳이고, 또 이곳은 5백 명의 상인이 음식을 보시한 곳입니다.”
또 보살이 바라나녀(波羅捺女) 땅으로 향하시던 곳을 가리키고, 또 바라문이 부처님을 찬탄하던 곳을 가리켰다. 왕은 이곳에 또한 탑을 세웠다.
존자가 왕을 데리고 다시 고선림(高仙林) 가운데에 이르러 오른손을 들고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곳은 여래께서 법륜을 굴리시던 곳입니다.”
왕은 이곳에 탑을 세우고 10만 냥의 금을 보시하였다.
또 여래께서 천 명의 바라문을 제도하던 곳을 가리키고, 또 빈바사라(頻婆娑羅)왕이 법을 듣고 진리를 깨달은 곳을 가리켰는데, 또한 이곳은 8만 4천의 천왕들이 번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은 곳이고, 또한 이곳은 한량없는 바라문과 거사들이 수다원을 얻은 곳이다.
또 제석(帝釋)이 교화 받은 곳을 가리켰다. 또 여래께서 신통변화를 보이신 곳을 가리키고, 또 여래께서 도리천(忉利天) 위에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고 내려오신 곳을 가리켰다. 왕은 위에서부터 가리킨 곳에 모두 보배로운 탑을 세웠다.
존자는 왕을 데리고 다시 구시나(拘尸那)성에 이르러 손을 들어 말하였다.
“이곳은 여래께서 화신(化身)의 인연을 마치시고 열반에 드신 곳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번민하다 기절하였다. 얼굴에 물을 뿌려 정신을 차리게 되자, 10만 냥의 금을 이곳에 보시하여 탑을 세웠다. 그리고 합장하고 존자의 발에 존경의 예를 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지금 부처님의 대제자인 성문의 탑에 예를 올리고 싶습니다.”
존자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왕은 능히 귀중한 믿음과 공경의 마음을 내었습니다.”
곧 왕을 데리고 기타(祇陀) 숲에 이르러 손을 들어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사리불(舍利佛)의 탑입니다. 마땅히 공양하셔야 합니다.”
왕이 물었다.
“이분은 어떠한 덕(德)이 있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이분은 세존의 법 가운데 대장(大將)으로서 제일이었습니다. 능히 법륜을 굴렸고 여래께서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고 수기하셨습니다. 오직 여래를 제외하고 일체 중생이 갖고 있는 지혜도 그분의 지혜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단지 간략히 말씀드린다면 어느 누구도 그분이 갖춘 지혜를 다할 수 없습니다.”
왕이 이를 듣고 기뻐하면서 10만 냥의 금을 이 탑에 받들어 보시하였다. 그리고 사리불에게 귀명하면서 게송을 지어 말하였다.
갖고 있는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시어
이름이 세간에 가득하네.
모든 지혜로운 자 가운데
이분이 가장 제일이네.
다시 왕에게 목건련(目犍連)의 탑을 가리키며 공양하도록 하였다.
왕이 또 물었다.
“이분은 어떠한 덕이 있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신족제일(神足第一)이라 수기하셨습니다. 능히 오른쪽 발로 제석궁(帝釋宮)을 움직일 정도이고 능히 난타와 발난타 용왕을 항복시켰습니다. 간략히 말한다면 이 세상에서는 그 공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왕은 10만 냥의 금으로 이 탑에 공양하고 곧 합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귀명합니다,
신족제일이라는 큰 이름을 가진 분께.
태어나고 늙고 근심하고 고통 받는 속에서
해탈을 얻으신 분께.
다시 왕에게 가섭의 탑을 가리키며 손을 들어 말하였다.
“이것은 마하가섭의 탑입니다. 역시 마땅히 공양하여야 합니다.”
왕이 물었다.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두타제일(頭陀第一)이십니다. 여래께서 자리를 내어 주며 앉게 하셨고, 부처님께서 가사를 가섭에게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겼고, 불법(佛法)을 보호하고 유지하였습니다. 지금 간략하게 말씀드리나 어찌 그 고행의 공덕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왕은 10만 냥의 금으로 가섭의 탑에 보시하고 곧 합장하고 게송을 지어말하였다.
산 속 동굴에 앉으셔서
논쟁을 멀리하니
모든 분노가 없고
항상 선정(禪定)을 행하네.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니
공덕이 가장 뛰어나네.
나는 지금 머리 숙여 예를 올리며
지극한 마음으로 귀명하나이다.
다시 왕에게 바구라(婆駒羅)의 탑을 보이며 공양하도록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이분은 어떤 덕이 있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늙어 쇠약해져 일어나는 모든 병이 없으므로 여래께서 소욕제일(少欲第一)이라 수기하셨습니다. 일찍이 남에게 하나의 4구(句)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왕은 곧 사람을 시켜 금 1전(錢)으로 이 탑에 보시하도록 하였다.
재상이 왕에게 말하였다.
“마찬가지로 이것도 대덕이신 아라한의 탑입니다. 어찌하여 유독 1전을 보시하십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자기를 제도하는 것으로써 능히 타인을 제도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오직 1전을 보시한 것입니다.”
탑의 신이 받지 않고 도로 왕에게 돌려주자, 재상이 다시 말하였다.
“실로 소욕(少欲)입니다. 1전이라도 받지 않습니다.”
존자가 이 때 다시 왕에게 아난의 탑을 보이면서 왕에게 공양하도록 말했다.
왕이 말하였다.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총지제일(摠持第一)이라 수기하셨습니다. 불법을 굳게 지니고 염력(念力)과 지혜와 다문(多聞)이 바다와 같았으며, 오묘한 뜻을 설하여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았습니다. 능히 부처님의 뜻을 알고 일체의 뛰어난 공덕과 많은 법을 담은 상자와 같았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매우 크게 기뻐하면서 1억(億) 냥의 금을 이 탑에 보시하도록 하였다.
대신(大臣)이 물었다.
“어찌하여 모든 공양 가운데 이곳이 가장 많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법신(法身)을 총지(摠持)하고 있었던 까닭에 능히 법의 등불을 지금까지 이르게 하고 멸하지 않게 한 것이 아난의 힘이니라. 비유하자면 소의 발자국은 바닷물을 담을 수 없으나 부처님의 지혜의 바다는 아난이 능히 받을 수 있었느니라. 이러한 인연 때문에 모든 공양 가운데 이곳이 가장 많은 것이다.”
왕은 뛰어난 모든 제자인 성문의 탑에 공양하기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존자에게 공경하는 예를 올렸다. 그리고 탑(塔)에도 합장하여 공경하면서 게송으로 설하였다.
백천(百千)의 제사를 베풀어
드디어 사람이 되었네.
내가 지금 곧 행하니
공(空)하지 않은 몸을 받았네.
좋은 복전(福田)을 만나
사람 되는 과보를 갖추어 짓고
위태롭고 허약한 재물로
견고한 법(法)을 닦네.
내가 탑을 조성하고
염부제를 장엄하게 하는 것은
흰 구름으로 허공을
장엄하는 것과 같으나
내가 불법을 만나
일체가 청정하네.
이 게송을 설하고는 예를 올리고 갔다. 아서가왕이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의 탑·보리수 탑·전법륜(轉法輪) 탑·반열반(般涅槃) 탑에 비록 각각 10만 냥의 금을 시여하였지만 보리(菩提)의 탑에 가장 귀중한 마음을 들였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정각(正覺)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귀중한 보배를 얻으면 보리의 탑에 항상 받들어 보시하였다.
왕의 첫 번째 부인인 제사라차(帝舍羅叉)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왕께서 좋아하는 보배를 얻어 모두 보리수[菩提]에 줘버리는데, 주는 것을 더 볼 수가 없구나.’
그리고는 곧 진타라(眞陀羅)인 마등가(冕伽)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원수를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진타라인 마등가는 대답하였다.
“만약 저에게 금을 주신다면 능히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곧 금전을 주도록 허락하였다. 이 때 마등가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그를 보리수로 인도하니, 곧 주술(呪術) 끈으로 보리수를 묶어 점점 말라죽도록 하였다.
그러자 나무를 지키는 사람이 왕에게로 와서 말하였다.
“보리수가 점점 말라죽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게송을 설하였다.
여래께서 이곳에 계시면서
모든 세간(世間)을 깨달으시고
보리도(菩提道)를 얻고
일체의 지혜를 증득하셨지만
지금 이 나무는 파괴되어 가고
점점 말라 죽어가고 있네.
왕이 이 말을 듣고 혼절하여 땅에 넘어졌다. 물을 얼굴에 뿌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정신이 돌아오자 소리 내어 울며 말하였다.
“내가 이 수왕(樹王) 보기를 부처님 보듯 하였다. 보리수가 죽는다면 나도 반드시 죽을 것이다.”
제사라차(帝舍羅叉)가 왕에게 말하였다.
“보리수가 비록 죽더라도 저는 또한 대왕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보리수는 여인이 아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위없는 도를 얻으신 곳이다.”
제사라차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놀라움과 후회가 생겨나 마등가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돌아가 보리수를 예전처럼 살려낼 수 있겠는가?”
마등가가 대답하였다.
“만일 말라서 완전히 죽지 않고 조금이라도 생기(生氣)가 있다면 예전처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곧 묶어 놓았던 주술 끈을 풀고 날마다 천 병의 우유를 뿌려 주었다. 오래지 않아 나무는 전과 같이 살아났기 때문에 나무를 지키는 사람이 왕에게 와서 말하였다.
“나무가 본래대로 살아나서 본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보리수로 가서 나무를 보면서 말하였다.
“빈바사라왕 등도 능히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내가 오늘 마땅히 두 가지를 행하리라. 두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천 개의 보병(寶甁)에다 향기 나는 즙을 가득 채워서 보리수에게 뿌려 주리라. 둘째는 마땅히 지극히 큰 차별없는 법회[無遮會]를 베풀겠노라.”
왕은 즉시 금·은·유리로 천 개의 보병을 만들고 그 속에 향기로운 물을 가득 채우고는 나무에 뿌려 주었다. 그와 함께 만말향(鬘末香)과 바르는 향으로 다시 이를 장엄하게 하였다. 왕은 스스로 목욕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8재(齋)를 수지하고, 높은 누(樓)에 올라서 두루 사방을 바라보았다.
모든 부처님의 제자 성문들 가운데 정견(正見)을 닦는 자들의 모든 근기는 적정(寂定)하여 욕망과 번뇌를 끊어 멸하였다. 인천(人天)과 아수라(阿修羅) 등으로부터 마땅히 공양 받을 만한 분들이었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시어 저의 청을 받아 주십시오. 선정과 지혜를 즐기는 모든 분들과 해탈한 많은 스님과 가장 뛰어난 진실한 자, 그리고 여래의 법 가운데에서 나신 분들도 가엾게 여기시어 저의 청을 들어 주십시오. 계빈(罽賓)1)에 거주하시면서 밤낮으로 두려움 없으시고 모든 성스러움을 떠난 마하바나(摩訶婆那)께서도 가엾게 여기시어 저의 청을 들어 주십시오. 아뇩(阿耨)의 큰 못과 험준한 곳 그리고 강변과 모든 산 속의 사리굴(舍利窟)에 거주하시는 분, 향산(香山)에 거주하시는 분 모두 원하옵건대 바로 저의 청을 들어 주십시오.
왕이 이와 같이 청하기를 마치자 사방에서 30만의 승려가 몰려왔다. 이 가운데 10만의 승려는 아라한이고, 20만의 승려는 수다원과 사다함 그리고 아나함이었다. 청정한 범부(凡夫)들도 모두 자리로 나아갔다. 오직 상좌가 앉는 자리에는 감히 앉는 자가 없었다.
왕이 상좌에게 물었다.
“어찌해서 이 자리만 비어 있습니까?”
상좌가 대답하였다.
“마땅히 상좌가 있다면 이 자리에 앉을 것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당신보다 훌륭한 상좌가 있습니까?”
야사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사자후 가운데 가장 제일인 분을 수기하셨습니다. 이름이 빈두로발라두바사(賓頭盧跋羅豆婆闍)2)인데, 제가 가장 존중하는 분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옷과 털이 모두 가담화(迦曇花) 나무와 같이 뻣뻣하게 되었다. 또 물었다.
“여래를 보신 분이 계십니까?”
야사가 대답하였다.
“빈두로(賓頭盧)라는 아라한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보았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만나볼 수 있습니까?”
야사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왕께서 찾는다면 마땅히 올 것입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지금 비할 수 없는 동정을 받아 빈두로라고 하는 대덕을 제일 먼저 뵐 수 있으리니, 나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겠구나.”
곧 합장하고 우러러 바라보면서 기다리니, 빈두로가 반월(半月)같이 또한 큰 거위의 왕과 같이 나타났다. 수천만 명의 아라한들이 시종하면서 공중으로부터 내려와서 상좌(上座)에 앉으니, 30만의 무리들이 모두 일어나 공경하였다. 왕이 빈두로의 머리를 보니 백미(白眉)가 뛰어났고, 신체의 상호(相好)는 벽지불(辟支佛)과 같았다. 즉시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예를 표하였다. 그리고 존자는 다리를 펴서 호궤(蝴跪)의 자세로 게송을 지어 설하였다.
여래께서는 비록 멸도하셨으나
존자께서는 보처(補處)로 나시어
불쌍히 여기시고 바로 가르쳐 주시니
나는 마땅히 따르고 행할 것입니다.
이 게송을 마치고 나서 존자가 말하였다.
“여래를 보셨습니까?”
빈두로가 대답하였다.
“내가 보았습니다. 빛깔은 금빛과 같고 얼굴은 만월(滿月)과 같으며 32상(相)이 그 몸을 장엄하였고, 범음(梵音)은 매우 묘하고 대비(大悲)는 토굴의 방과 같았습니다.”
왕이 또 물었다.
“어느 곳에서 보았습니까?”
존자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5백 명의 아라한들과 함께 왕사성에서 여름철 안거를 보낼 때였습니다. 나는 그 가운데 있으면서 복전(福田)을 뵐 수 있었습니다. 사위국(舍衛國)에 계시면서 큰 신통변화를 나타내시어 외도를 물리칠 때 상호를 장엄하고 무수한 부처님으로 변화하시고, 차례로 올라가서는 아가니타(阿迦膩吒)3) 하늘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 때에도 역시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忉利天)에 계시면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시고 여러 천신들에게 둘러싸여 아래로 내려오실 때에도 나는 역시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승가호사(僧伽戶沙)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에도 나는 역시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연화(蓮花)라는 비구니가 전륜성왕으로 변화하여 천 명의 아들을 모두 갖추고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릴 때에도 역시 그 가운데 있었습니다. 만부성(滿富城) 안의 소마가제(蘇摩伽帝)가 부처님을 초청할 때 5백 명의 나한이 각기 신통변화를 일으키면서 만부성에 이르렀는데, 나는 그 때 보산(寶山)을 변화로 만들어 보굴(寶窟) 가운데 앉아 만부성으로 갔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들어가셔서 차례로 걸식을 나가셨을 때, 당신은 흙을 보시하고 나제국다(羅提國多)는 따라 합장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당신에게 수기하실 때 나도 또한 그것을 보았습니다.”
왕이 또 물었다.
“존자시여, 근래 어느 곳에서 머무셨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향산(香山)에서 머물렀습니다.”
다시 물었다.
“몇이나 거느리십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6만입니다. 대왕이여, 그만 멈추소서. 어찌하여 질문이 많습니까? 때가 되었으니 스님들에게 식사를 주십시오. 공양을 마치고 마땅히 왕을 위해 곧 설하겠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청컨대 존자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먼저 제 마음 가운데 부처님의 마음을 일으키셨으니, 보리수에 물을 뿌려준 다음 공양드리겠습니다.”
왕은 유나(維那) 살사밀다(薩娑蜜多)를 불러 말하였다.
“저는 지금 십만 냥의 금으로써 많은 승려들에게 보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천 개의 보병(寶甁)에 향기로운 물을 채워 보리수에 뿌리겠으니, 건추(揵搥)를 쳐서 제 이름을 단월로 삼아 널리 차별 없는 법회를 베풀도록 하십시오.”
왕자 구나라(駒那羅)가 오른쪽에 서 있다가 입은 벌리지 않고 문득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말하였다.
“저는 두 배로 드리겠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왕도 또한 웃으면서 나제국다에게 말하였다.
“네가 시킨 일이냐?”
나제국다가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지극히 많으므로 복을 탐하는 자도 많습니다.”
왕이 다시 말하였다.
“나는 30만 냥의 금으로 스님들께 보시하고, 3천의 보병에 향기로운 물을 가득 채워 보리수에 뿌리겠다.”
이 때 구나라가 다시 손가락 넷을 들었다. 왕이 나제국다에게 말하였다.
“누가 나와 경쟁하려는 것인가?”
나제국다가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누가 감히 왕과 함께 경쟁하고자 하겠습니까? 구나라가 갓난아이여서 아버지께 농담한 것입니다.”
왕이 오른쪽에 있는 구나라를 보고는 바로 상좌(上座)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니고 있는 창고의 보물과 일체의 궁인, 그리고 모든 보상(輔相) 및 내 아들인 구나라 등 모든 것을 대중 스님께 보시하겠습니다. 청컨대 내 이름을 반차우슬(般遮于瑟)이라 불러 주십시오.”
보시를 마치자 스님이 주원(呪願)하였다. 주원 받는 것을 마치고 보리수 주위에 담장을 세우고는 스스로 그 위에 올라가 4천의 보병에 가득 찬 향기로운 물을 보리수에 부리고 나서 스님들께 공양하고자 하였다. 상좌(上座)인 야사(夜舍)가 말하였다.
“왕은 뛰어난 복전을 만나셨습니다. 우열(優劣)의 마음을 내지 마십시오.”
왕은 손수 사미에 이르기까지 식사를 날랐다.
이 때 두 명의 사미가 화경법(和敬法)을 행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보릿가루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다른 사람은 이 보릿가루를 이쪽에 되돌려 보시하는 것이었다. 이쪽이 떡을 만들어서 저쪽에게 다시 보시하면 저쪽도 역시 떡을 다시 되돌려 보시하는 것이었다. 이쪽에서 다시 환희환(歡喜丸)으로 저쪽에게 보시하면 저쪽은 다시 환희환을 되돌려 보시하였다.
왕이 이를 보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아이들같이 노는구나.”
이 때 왕이 공양을 베풀다가 상좌(上座)에게 이르니, 상좌가 물었다.
“왕께서는 위의에 맞지 않는 일을 보시고 능히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십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생기지 않습니다. 두 사미가 어린애처럼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좌가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나무라거나 싫어하지 마십시오. 이 두 사미는 지금 해탈한 아라한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자 환희심이 생겼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마땅히 모든 승려들에게 좋은 옷을 보시하리라.’
이 때 두 사미가 왕의 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지금 마땅히 왕으로 하여금 믿음과 존경이 두 배가 되도록 해야겠다.’
이에 두 사미 가운데 한 사람은 큰 솥을 갖추었고, 다른 사람은 염구(染具)를 갖추었다.
왕이 이를 보고 사미에게 말하였다.
“어떤 물건을 만들고자 합니까?”
사미가 말하였다.
“왕께서 저희들 때문에 모든 승려들에게 좋은 옷을 보시하고자 하니, 지금 염구를 갖추어 염색하고자 합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저 두 사미가 이미 나의 마음을 알고 있구나.’
왕은 크게 기뻐하며 오체투지하여 사미에게 예를 올리고 일어나면서 합장하며 말하였다.
“나의 권속들이 커다란 이익을 얻고 뛰어난 복전을 얻었으니, 지금 나의 힘을 다하여 보시하겠습니다.”
사미에게 말하였다.
“당신들로 인해서 일체의 모든 스님들에게 3의(衣)를 보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널리 차별 없는 법회를 베풀고 40만 냥의 금으로 국토·궁인(宮人)·보상(輔相),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구나라 등 모든 것을 많은 승려들에게 보시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서가왕(阿恕伽王)은 믿음과 존경이 갖추어져 8만 4천의 탑을 세웠다. 반차우슬을 마치자 염부제 내의 대부분이 불법을 믿게 되었다.
03. 아서가왕제본연(阿恕伽王弟本緣)
아서가왕 동생의 이름은 숙대치(宿大哆)였는데, 외도를 믿어 불법을 설하는 것을 나무라며 이와 같이 말하였다.
“출가 사문 가운데 해탈한 자가 없다.”
이 때 아서가왕이 숙대치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알고 있느냐?”
숙대치가 대답하였다.
“모든 사문들은 고행을 닦지 않고 즐거운 일에 집착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아서가왕이 숙대치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신심을 내서는 안 되는 곳에서 강한 믿음을 내지 말고, 가히 신심을 내어야 할 곳에서 신심을 내지 않는 일을 하지 말아라. 불(佛)·법(法)·승(僧)에 마땅히 깊은 믿음을 내어야 할 것이다.”
아서가왕은 일찍이 한때 숙대치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한 바라문이 5열(熱)로 몸을 달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숙대치는 마음에서 믿음이 생겨나 그 옆에 이르러서 발에 예를 올리고는 물었다.
“고행을 시작한 지 지금 얼마나 지났습니까?”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12년이 지났습니다.” “항상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열매나 뿌리를 먹습니다.” “어떤 옷을 입습니까?” “풀로 만든 옷을 입습니다.” “어떤 물건을 깔고 있습니까?”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듭니다.”
다시 물었다.
“지금 당신이 행하는 것에서 어떤 것이 가장 괴롭습니까?” “벌레나 사슴이 짝을 이루는 것을 보면 욕심의 불길이 치솟아 오릅니다. 이것이 괴로움입니다.”
숙대치가 말하였다.
“그대가 나쁜 옷을 입고 나쁜 음식을 먹으면서도 오히려 탐욕이 생기는데, 하물며 사문인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좋은 의복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니 어찌 욕심이 없겠는가? 나의 형 아서가왕은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없어 모든 사문들의 속임에 속는구나.”
이 때 아서가왕이 동생의 말을 듣고 보상(輔相)에게 말하였다.
“좋은 방편을 써서 숙대치로 하여금 믿음을 갖도록 해야겠다.”
보상이 대답하였다.
“왕의 교칙(敎勅)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왕이 천관(天冠)과 구슬로 장식한 옷을 벗고 목욕할 때 입는 옷을 입고 욕실에 들어가자 보상이 숙대치에게 말하였다.
“왕이 만약 죽는다면 당신이 마땅히 이를 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천관과 영락(瓔珞)을 입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숙대치는 곧 그 말을 따라서 천관과 영락을 입고 임금의 자리 위에 앉았다. 왕이 욕실을 나와 숙대치가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내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네가 이미 왕이 되었구나.”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에 누가 없느냐?”
이 때 진타라(眞陀羅)는 한손에 검을 잡고 한손에는 방울을 잡고 있었는데 왕 앞에 나아가 말하였다.
“어떠한 명령을 하고자 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 이제 숙대치를 버리고자 하니 너는 그 죄를 다스리도록 하라.”
보상이 말하였다.
“숙대치는 왕의 친동생입니다. 오직 청하옵건대 참회하여 그 허물을 고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너의 말을 들어 7일간 왕이 되는 것을 허락하겠다. 그런 연후에 처형하여라.”
7일 동안 10만의 음악이 연주되었고, 10만의 바라문(婆羅門)이 합장하고 선(善)을 칭하였고, 10만의 기녀가 주위를 에워싸고 시중을 들었다. 네 명의 진타라(眞陀羅)는 손에 피를 묻히고 얼굴에는 살기를 띠고 있었다. 네 곳의 문 아래에서는 고성이 울려 퍼졌다.
‘하루가 이미 지나갔고 6일이 남았다. 너의 신체를 도살하여 팔다리를 나누어 너의 목숨을 끊겠다. 죽음이 멀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하루가 지났다. 7일에 이르기까지 또한 이처럼 울렸다. 7일째가 되자 숙대치를 이끌고 왕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왕이 동생에게 물었다.
“너는 7일 동안 매우 즐거웠느냐?”
숙대치가 대답하였다.
“저는 7일 동안 눈으로는 빛깔을 보지 못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코로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혀로는 맛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진타라가 검을 잡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하루 동안의 왕을 마쳤다. 나머지 6일이 남았다.’
하루하루가 이와 같고 7일째가 되니 열이 뇌를 압박해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두려운 생각만 들어 밤새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으니, 어찌 즐거웠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너는 한 몸의 죽음을 걱정하느라 왕위(王位)의 즐거움을 즐기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사문인 석자(釋子)들은 태어남[生]·늙음[老]·병듦[病]·죽음[死]·근심[憂]·슬픔[悲]의 괴로움을 관찰하며, 지옥에서 갖가지 타는 괴로움과 축생(畜生)이 무거운 짐을 지고 서로 잔학하게 해치는 공포의 두려움과, 모든 아귀(餓鬼)들이 목말라하는 괴로움과, 사람들 가운데 풍요함을 즐기지만 그 몸을 따르는 8고(苦)가 있으니 하물며 복이 없는 사람은 어떻겠느냐? 모든 하늘들[諸天]이 비록 즐거우나 쇠퇴할 때에 괴롭고, 일체 삼계(三界)에서 생명을 받는 것은 몸의 괴로움[身苦]·마음의 괴로움[心苦] 등 이 같은 괴로움에 몰려 있다. 5음(陰)은 진타라이고, 6정(情)은 공(空)이 쌓인 것과 같고, 5진(塵)은 원수와 같으니 삼계는 모두 무상(無常)의 큰불에 타는 것과 같다. 일체는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공이고 무아(無我)이다. 이런 까닭에 어찌하여 사문인 석자가 능히 고행을 하지 않고 해탈하지 못한다고 말할수 있겠느냐? 사문의 뜻은 모든 즐거움에 있어도 모두 물드는 바가 없느니라. 비유하자면 연꽃이 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다. 생사(生死)를 싫어하고 세간(世間)을 버리고자 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어찌 해탈(解脫)의 과(果)를 얻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아서가왕이 갖가지 방편으로 숙대치를 가르치자, 숙대치는 이에 합장하고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저는 지금 마땅히 3보(寶)에 귀의하겠습니다.”
아서가왕이 곧바로 동생의 머리를 만지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로 하여금 불법(佛法)을 믿게 하고자 이런 방편을 행하였다. 너를 죽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숙대치는 곧 향기 나는 꽃으로 불탑(佛塔)에 공양하였다. 그리고 설법을 청하면서 많은 승려들에게 공양하였다. 그리고 계두마사(雞頭摩寺)로 향해 상좌(上座)인 야사(夜奢)의 처소에 이르렀다. 앞에 나아가 앉으면서 설법을 청하였다.
이 때 야사가 숙대치의 과거세(過去世)를 관찰하고는 갖가지 선근(善根)이 지금 성숙되어 마땅히 현신(現身)에서 열반(涅槃)에 들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는 출가(出家)의 법을 찬탄하였다.
숙대치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다시 환희심이 생겨 불법 가운데로 출가하고자 하여 곧바로 일어나서 존자에게 합장하고 말하였다.
“지금 원하옵건대 불법 가운데로 출가하여 도(道)를 배우고자 합니다.”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먼저 마땅히 왕에게 아뢰어야 합니다.”
숙대치가 왕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청하옵건대 출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본래 미치고 취한 나쁜 코끼리 같아 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왕께서 방편으로 저를 잡아두어서는 부드럽고 복종하며 조화롭고 따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민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청하옵건대 제가 저 큰 밝음이 있는 곳에서 출가법(出家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왕이 이 말을 듣고 머리를 껴안고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동생에게 말하였다.
“그런 마음을 내지 마라. 왜냐하면 출가하게 되면 추루법(醜陋法)을 받게 되므로 옷은 분소의(糞掃衣)를 입게 되고 걸인들이 버린 음식을 먹어야 된다. 잠은 나무 아래에서 자며 자리는 풀과 나뭇잎이다. 병이 나면 진기약(陳棄藥:腐爛藥)을 복용해야 한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즐거움을 누렸기 때문에 이러한 기갈과 추위와 더위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너의 마음을 억제하도록 하라.”
숙대치가 말하였다.
“저는 지금 왕위에 대해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또한 천상의 즐거움을 구하지도 않고, 또한 머리를 짓누르는 많은 괴로움이 있지도 않으며, 재물이나 진기한 보배를 탐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원수 같은 적들의 어려움 때문에 두려워서 출가(出家)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두려워 출가하고자 하는 것이며, 열반을 얻고자 출가하는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큰소리로 통곡하였다.
숙대치가 말하였다.
“왕이시여, 통곡하지 마십시오. 생사(生死)의 돌고 돎은 일찍이 끊임이 없었습니다.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통곡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너는 지금 걸식(乞食)을 익히도록 하라. 이 나무 아래에 앉아 풀을 깔고 위에서 잠을 자도록 하라.”
그리고 발우와 석장(錫杖)을 주고는 궁인들에게 걸식하도록 하였다. 궁인들이 모두 좋은 음식들을 주자 왕은 궁인들을 책망하였다.
“어째서 그에게 좋은 음식을 주는 것이냐? 거친 음식을 주어 익숙해지도록 하라.”
궁인들이 분부대로 거친 음식을 주었다. 이를 얻었어도 또한 음식에 대한 많고 적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왕이 이를 보고 즉시 동생에게 말하였다.
“너의 출가를 허락하노라. 너는 출가하더라도 반드시 와서 나를 보도록 하라.”
숙대치는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자, 계두마사(雞頭摩寺)로 향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출가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방해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출가하여 도를 배워야겠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아라한(阿羅漢)의 도를 얻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옛날에 아육왕이 나에게 당부하던 말이 있었다. 만약 출가하거든 반드시 돌아와서 자신을 찾도록 하였으니, 내가 지금 가서 마땅히 뵈어야 하겠다.’
그런 가운데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화씨성(花氏城)으로 향하였다. 걸식을 하면서 왕궁의 문에 이르러, 문을 지키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숙대치가 왕을 뵙고자 합니다.”
문을 지키는 사람이 즉시 왕에게로 달려가 말하였다.
“숙대치가 지금 문 밖에서 왕을 뵙고자 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빨리 가서 데리고 들어오너라.”
숙대치가 왕문(王門)에 들어섰다. 아육왕은 동생을 보자 임금의 자리에서 내려와 오체투지하여 예를 올리고 일어나면서 합장하고 숙대치를 보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게송으로 설하여 말하였다.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모여 기뻐하는구나.
내가 지금 너의 눈을 보니
사사로운 갈애의 모습을 볼 수 없도다.
너는 필시 뛰어난 과보를 얻어
감로(甘露)가 너의 마음에 가득하구나.
나제국다는 숙대치가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와발(瓦鉢)을 가지고 평등하게 걸식하면서 좋고 나쁜 음식을 받는 것을 보고 왕을 향해 게송으로 설하였다.
숙대치를 보니
작은 것에 만족하며
지을 것을 판단하니
능히 기뻐하는구나.
왕족의 출신을 버리고
화씨성의 창고에 있는
진기한 보배들을 버리고
영광스런 행복도
눈물과 침처럼 버리네.
성스러운 종자를 닦아
번뇌를 영원히 끊으니
왕족들이 만족하고
대명칭(大名稱)을 얻으니
어찌 환희하지 않으리오.
이 때 아서가왕은 숙대치를 붙잡고 임금의 자리 위에 앉히고는 가장 뛰어나고 맛있는 음식을 손수 그에게 주었다. 공양이 끝나자 청정한 물을 올리고는 앞에 있는 작은 자리에 앉아 설법을 구하였다. 숙대치가 게송으로 설하였다.
왕과 존귀한 귀족들
방일하지 마십시오.
3보(寶)란 만나기 어려운 것
마땅히 공양하십시오.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렸다. 왕과 5백 명의 보상(輔相), 그리고 성안의 백성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공경하면서 문 밖까지 전송하였다. 이를 사문(沙門)의 과보를 깨닫는 것이라 이른다.
숙대치가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옛날에 형이 여러 가지 방편으로 나로 하여금 불법(佛法) 가운데 들어가도록 교화하셨다. 지금 마땅히 저들로 하여금 믿음을 증진시키도록 해야겠다.’
그리고는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갖가지 변화를 보였다. 아육왕과 모든 군신들은 손을 들고 게송을 설하였다.
형제의 은혜와 사랑을 단절하고는
새처럼 하늘을 날아가 버리는구나.
나는 왕위에 묶여
세상일에 더욱 애착하는구나.
이처럼 천박한 나를 꾸짖고 싫어하여
스스로 혼자 해탈하고자 하지만
이와 같은 과보는
마음에 자재함을 얻을 때 가능하구나.
선정(禪定)의 과보는
어리석은 맹인은 볼 수 없으니
너는 지금 날아가 버리면서
나의 교만을 깨뜨리는구나.
나의 지혜의 힘 역시 미세하지만
나로 하여금 애착함을 버리게 하는구나.
이 때 숙대치는 변두리로 날아갔는데, 다른 나라에 도착해서는 곧 큰 병을 얻어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왕이 그 병환이 있음을 듣고 의사와 약을 보내어 그를 치료하게 하였다. 병에 차도가 있어 머리카락이 예전처럼 되었기 때문에 파견된 의사가 되돌아왔다. 뒤에 숙대치가 낙(酪)을 먹었는데, 몸이 안온(安穩)해지자 낙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광야로 나아가 방목하는 주위에 머물렀다.
이 때 불나반달(弗那槃達)에는 니건타(尼乾陀)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부처님이 니건자(尼乾子)에게 예배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때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우바새(優婆塞)가 아서가왕에게 말하였다.
“외도인 니건자의 제자가 부처님이 외도인 니건자에게 예배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왕이 이를 듣고 분노해서 즉시 사자(使者)를 보내 위로 40리(里)에 있는 야차[夜叉鬼]와 아래로 40리에 있는 모든 용들로 하여금 하루 동안 화씨성(華氏城)에 있는 1만 8천의 니건타의 제자들을 죽이게 하였다.
화씨성 안에는 다시 니건자들이 있었는데, 역시 부처님이 외도 니건타에게 예배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때 어떤 우바새(優婆塞)가 왕에게 말하니, 왕이 이를 듣고 크게 진노하여 니건타와 그 권속들을 잡아들여 불에 태워 죽이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북을 울리고 큰소리로 만일 니건자의 머리를 획득한다면 마땅히 금전으로 보상한다고 하였다.
후에 숙대치는 니건자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머리카락은 유난히 길어 니건타의 제자들과 차림새와 모습이 비슷하였다.
어떤 귀신이 칼을 들고 바로 앞에 서 있자, 숙대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나의 과거 인연 때문에 마땅히 이 귀신에게 살해를 당해야 되는구나.’
이 때 귀신이 이 니건타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머리를 잘라 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금전을 타야겠다.”
왕은 이것이 숙대치의 머리임을 알아보았다. 다시 한 신하에게 들으니 외도 이외의 사문(沙門)으로서 살해된 자가 많고 외도로서 살해된 자는 적다고 들었다. 왕은 지극히 고민스럽고 절망하여 땅에 쓰러졌다. 얼굴에 물을 뿌리자 오래지 않아 깨어났다. 보상(輔相)이 왕에게 말하였다.
“지금 사문 가운데 헛되이 죽는 자가 많습니다. 왕께서는 마땅히 사문들에게 무외(無畏)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자 왕은 곧 명을 내렸다.
“지금 이후로는 일체 사문들을 살해하지 마라.”
모든 비구들이 마음에 의문이 생겨 존자인 우바국다에게 물어 보았다.
“어떠한 인연이 있어 숙대치가 귀신에게 살해됐습니까?”
우바국다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잘 들으라. 과거세에 한 사냥꾼이 있어 물가에 그물을 쳐놓았는데, 벽지불(辟支佛)이 걸식하고 돌아오면서 그물 옆의 나무 아래에 앉았다. 이 때 사냥꾼은 사슴을 잡지 못했기에 스스로 ‘무슨 일일까? 사슴들이 지금 도무지 내 그물 근처에는 오지 않으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사방을 둘러보다 벽지불이 그물 근처의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칼을 가지고 머리를 베었다. 그 때 사냥꾼이 지금의 숙대치이다. 이렇게 지난날 벽지불을 벤 까닭에 지옥 가운데 떨어져서 무량억겁(無量億劫)의 큰 고통을 받았으며, 나아가 도(道)를 얻고서도 이와 같이 귀신의 죽임을 받게 된 것이다.”
비구가 물었다.
“다시 어떠한 인연으로 귀족으로 태어나서 아라한(阿羅漢)이 될 수 있었습니까?”
우바국다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과거 오랜 옛날 가섭(迦葉)부처님께서 계실 때 많은 스님들을 공양하였다. 이 복의 과보로써 귀족으로 태어난 것이다. 또한 그 때 신심(信心)으로 출가하여 1만 년 동안 범행(梵行)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선인(善因)으로 말미암아 지금 아라한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