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제4권
20. 환열품(歡悅品)
지혜를 받들어 중생을 제도하고
도 이루면 흐름[流]을 맑게 하리니
그 지혜는 항상 이 물을 마시고
법다운 감로(甘露)를 먹어야 하리.
저 물이 다함 없음이
구멍으로 끊임없이 새는 것 같네.
지혜의 종자와 도덕을 갖추신
부처님께 귀의하기 원합니다.
마음이 유약[羸弱]한 이라도
받들어 배우면 뜻이 저절로 통하리니
제도를 받아 마음을 안정시키고
뜻을 세워 선(禪) 닦는 법을 생각하라.
부처님이신 천중천(天中天)께서
좋은 방편을 행하시어
한량없는 지혜를 나타내시니
몸과 마음 바쳐 귀의해 머리 조아립니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 유약한 마음이 생기면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훌륭한 이익을 얻어 8난(難)을 해탈하고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자재(自在)하게 살리라. 내가 이미 일체지(一切智)를 지니신 스승을 만나 그 법에 귀명(歸命)하고 탐욕을 없앤 스님의 자격을 갖추었다. 나는 이미 범행(梵行)을 닦고 도의 씨앗을 심었으니 도를 성취할 수도 있고 도를 향해 매진해 나갈 수도 있으리라. 여러 사람들은 삿된 데에 떨어질지라도 나는 바른 도를 따를 것이요, 다른 사람들은 비뚤어지게 행할지라도 나는 평등한 행(行)을 따르리라. 그러면 이제 나는 오래지 않아 법왕자(法王子)가 되어 하늘세계와 인간세상에서 계율과 도덕의 향기[成德香]를 찬탄[歎]1)하고 그 공덕을 숨기지 않을 것이요, 번열(惱熱 : 煩惱)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곧 안온하게 해탈의 맛[味]을 먹으면서 날마다 배를 채운다면 구제를 받아 편안함을 얻게 될 것이요, 악한 갈래의 세계에서 해탈하여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요, 적정(寂靜)한 속에서 관법(觀法)을 타고 여덟 가지 바른 도에 들어가 수행한다면 두렵거나 어려운 일이 없는 곳에 이르고 니원성(泥洹城 : 涅槃城)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스스로 권발(勸發)하고 받들어 정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행하는 사람이 설사 유약할지라도
다행히 법의 이익[法利]을 만난다면
나는 그가 세존과 바른 법과
승가에 귀의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나니
방편과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유약한 사람이 뜻을 권발하여
오로지 따르고 받들기를 생각한다면
이것을 수행이라고 이른다.
처음 배울 때로부터 도를 이루기까지
여러 사람들 빽빽한 숲과 같이 많지만
삿된 갈래 길을 여의고
곧 올바른 길에 서서
계율과 덕으로 향(香)을 삼되
저 숲의 나무 향내를 쐬듯 한다면
홀연히 해탈을 얻을 것이요
도를 증득하면 널리 드러나리라.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생겨난 경법(經法) 나무에서
여러 이치 기록하기를 꽃들의 맛을 따오듯 한 것은
바른 법이란 잠깐 사이에도 게을러지기 쉬우므로
스스로 깨우치게 하기 위해 이를 설명하노라.
21. 행공품(行空品)
저마다 인물이라고 하는 이들은
모두 부처님의 본호(本號)를 안다.
그는 중생의 미미한 그 고통이
저 연뿌리의 실[絲]과 같음을 아신다.
진리를 자세하게 관찰한 까닭에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이 없으시고
또한 내 몸이라고 헤아리지도 않으니
집착 없으신 분께 예배드리기 원합니다.
그 광명 온 세간을 비추시되
횃불이 어두운 집을 밝히듯 하시고
그 마음으로 보신 것은
일체는 없는 것[無]이라는 진리였네.
내가 귀명(歸命)할 저 깨달으신 분
그 마음과 행이 평등하시어
모든 하늘과 사람들을 관찰하시되
마치 저 텅 빈 허공처럼 널리 보신다네.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 나[我]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공(空)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스스로 꾸짖어 말한다.
‘내가 쇠진(衰盡)하여 영리함이 없고 마음 씀에 걸림이 있어 공혜(空慧)에 순응하지 못하며, 나라고 하는 생각 가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스스로 걱정하고 근심하며 힘써 마음이 공에 이르도록 유도한다. 혹시라도 그 뜻을 경계하고 유도하여 공으로 향하게만 한다면, 그로 인하여 본래 무(無)인 경지에 이르러, 삼계(三界)가 모두 공한 것이고 만물이 무상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헤아리는 이는 그 마음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간하여 그 마음이 방탕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공을 알지 못하고 나라는 생각을 가지면
뜻이 발동하여 마치 나무가 흔들리듯 하리니
그 마음을 권유해 공하여 없는 데로 향하게 한다면
머지않아 꼭 본래 청정한 경지에 이를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나라 왕에게 어떤 배우[俳兒]가 있었는데, 그 배우의 어미가 죽어서 상복을 입고 집에 있었다.
왕은 그의 재담(才談)이 듣고 싶어서 사람을 시켜 부르면서 말했다.
“왕은 네가 보고 싶다.”
배우는 혼자 생각하였다.
‘나에게는 늙은 부모가 있다. 마침 어머님을 여의었는데 지금 왕의 지엄한 칙령이 내려왔으니, 만약 가지 않으면 분명 나의 목숨을 빼앗거나 혹은 형벌(刑罰)을 받을지도 모른다. 어머님께서 비록 돌아가신 상황이라고는 하나 다른 방법이 없으니, 마땅히 그 명령에 응하여 지체 높은 분의 명을 어기지 말자. 거짓으로나마 광대놀음을 하며 재담을 늘어놓아 왕의 환심을 사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억지로 뜻을 굽히고 슬픔을 억제하면서 다시는 그 어미를 생각지 않기로 하고, 곧 스스로 장엄하게 꾸미고 화려한 의복 차림으로 궁궐(宮闕)에 나아가 왕을 뵙고 나서 거짓 재담을 늘어놓아 왕을 기쁘게 해주었다.
그리고는 물러 나와 혼자 생각하였다.
‘어머님의 상사(喪事)를 당하여 슬픈 심정이 마치 불이 마른풀을 태우는 것 같다. 아, 슬픈 일이구나. 이런 처지에서 어떻게 차마 희희덕거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막중한 상사도 만났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국왕이 두렵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곧 슬픈 마음 억제하기를 마치 불에 물을 뿌리듯 하고 마침내는 배우가 되어, 점차 모든 근심을 잊고 웃음거리를 더욱 많이 만들어 내어 왕으로 하여금 기뻐 어쩔 줄 모르게 하였다.
수행하는 사람도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 도(道)에 마음을 가지도록 유도하여 나아가, 공하여 없는 것임을 깨달아 나[我]라고 집착하는 생각을 제거하게 하며, 이로 인하여 열심히 닦고 익혀서 마침내 참다운 공[眞空]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왕에게 배우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막중한 상사를 당했는데도
거짓으로 웃고 근심을 억제하여
마음이 결국엔 기쁘게 된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도 또한 그와 같이 하여
점차 마음을 유도해 공으로 향하게 하면
밝게 빛나는 혜명(慧明)에 가까워지고
뜻이 안정되어 동요하거나 바뀌지 않으리.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공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따라서, 설령 그 마음을 경계하다가 혹 마음이 혼란해져서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이 일어나게 되더라도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풀과 나무를 한곳에 모아 뗏목을 만들어 넓은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그 강의 물살이 급하면 뗏목이 떠내려가다가 부서지고 말듯이 나도 마음을 유도하여 매진해 온 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어 그 노고를 이루 다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란한 마음이 갑자기 일어나 한결같은 정진을 어기고 나라고 집착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구나.’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치 풀과 나무를 모아 만든 뗏목이
냇물에서 강물로 떠내려가다가 부서지듯이
애욕 바다의 물결도 그와 같이 급하니
적정에 뜻을 두면 곧 공(空)에 나아가리.
비유하면 여름철 무더위에 불타듯 말랐던 풀과 나무가 단비를 맞게 되면 금새 되살아나고 5곡도 풍성해지는 것처럼, 가령 나[吾]라는 것은 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라는 생각이 없어질 것이나, 가령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문득 몸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마치 저 단비를 만났을 적에는
말랐던 온갖 풀 나무가 다 되살아나듯이
가령 수행할 때에도 공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곧 나를 버려 나라는 생각이 없어지리라.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앉아있는 이유는 멸도(滅度)를 구하려고 그러는 것인데 참으로 구하기가 어렵구나. 가령 나라는 것이 정말로 있어서 구하려고 해도 나라는 것은 본래 공한 것이어서 나라는 것은 애당초 없는 것이며, 지금 몸을 분별하려고 해도 그 몸은 본래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니 어느 곳에 그 몸이 있겠는가?’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나라고 하는 생각을 벗어나야 곧 깨달을 수 있고
항상 진리를 보아야 본래 무(無)임을 안다.
가령 세속을 따르고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어두운 곳에서 장님을 따르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사람은 물러나서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몸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我]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만일 옷과 음식의 공양이 있으면 자신이 남아야만 다른 사람에게 주나니, 이것이 나[吾我]라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는 다 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가령 어려움이 생겨도 자기 자신부터 먼저 구원한 다음에야 남을 구원하나니, 만일 몸을 버린다면 어떠한 환난이 생길 경우 곧 마땅히 다른 사람부터 먼저 보호하게 될 것이다.
일체의 탐냄은 모두 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지, 다시 다른 데에서 따질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몸이 곧 내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재물과 색(色)을 탐냄도 제 몸을 위하는 것이고
설령 환난(患難)이 생겨도 먼저 자신부터 구원하네.
영원히 남은 돌보지 않고 오직 자기만 생각하니
때문에 속인(俗人)들은 그것을 나라고 집착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마땅히 몸의 근본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몸은 여섯 가지 요소[六大]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것을 여섯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흙[地]이요, 둘째는 물[水]이요, 셋째는 불[火]이요, 넷째는 바람[風]이요, 다섯째는 허공[空]이요, 여섯째는 혼신(魂神)이다.
어떤 것을 흙[地]의 요소라고 하는가?
흙의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몸 안의 흙의 요소[內地]와 몸 바깥의 흙의 요소[外地]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흙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과
혼신(魂神)을 합하면 여섯 가지 되나니
몸 안의 여섯 가지와 몸 바깥의 여섯 가지를
부처님께선 거룩한 지혜로 연설하셨다.
어떤 것을 몸의 흙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 속의 단단한 것[堅]이다. 즉 털·머리카락·손톱·발톱·이·때·뼈·살·가죽·힘줄·5장(臟)과, 창자·밥통·똥 따위의 깨끗하지 못한 온갖 단단한 것을 곧 몸의 흙의 요소라고 말한다.
이를 게송으로 설한다.
사람 몸 속에 쌓인 갖가지 종류인
머리카락·털·손톱·발톱·이·뼈·가죽·살과
몸 속에 있는 그 밖의 모든 딱딱한 것들
이것을 바로 몸 안의 흙이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과 관찰해야 한다.
‘내가 몸 안의 흙의 요소에 대하여 이것이 내 몸인가, 신(神)이 붙어 몸 안의 흙과 합해진 것인가, 몸이 다른 것과 합해진 것이라서 나와는 다른 것인가를 관찰해야 한다. 또한 머리 깎는 것을 관찰하되 수염과 머리카락이 떨어질 무렵 눈앞에 놓인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머리카락을 속으로 100번 돌이켜 살펴보아도 어떻게 나라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가령 한 오라기의 털을 나라고 말한다면, 그 나머지는 다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만일 털을 죄다 나라고 할 경우라도, 이 또한 수많은 몸이 되는 셈이 아니겠는가? 또한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는데도 짧을 때부터 길 때까지의 기간을 헤아리기 또한 어려운 일이며, 또 불을 가져다가 머리카락에 붙여 그 머리카락을 태울 적에는 몸도 곧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머리카락은 네 가지를 좇아 생기나니, 첫째는 인연(因緣)이요, 둘째는 번뇌[塵勞]요, 셋째는 애욕(愛欲)이요, 넷째는 음식(飮食)이다.
이것이 내 몸이 아니라고 헤아린다면 나라고 하는 것도 없을 터인데, 수염과 머리카락은 여러 가지 인연이 나에게 합해져서 있게 된 것이다. 한 오라기의 수염이나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거나 설령 불에 던져졌거나, 혹은 변소에 버려져 발로 짓밟힐지라도 몸에는 아무 걱정도 없으며, 또한 그대로 머리 위에 있을지라도 아무 이익도 없다.
그러므로 이렇게 본다면 머리에 있거나 땅에 버려지거나 똑같아서 전혀 다른 점이 없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머리에 아무리 머리카락이 많거나
또한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해도 다름이 없으며
설령 깎아서 다른 곳에 둔다 해도
또한 근심이 될 게 없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자세히 관찰해 보고 나면
곧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분명히 분별하여 안다면
저마다 몸이라고 할 것이 없다.
설령 저 머리카락을 나라고 한다 해도, 마치 잘라낸 파나 염교처럼 뒤에 다시 생겨날 것이니, 이렇게 헤아린다면 마땅히 또 다른 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파나 염교는 저절로 상하더라도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체의 것들은 모두 공(空)한 것이어서 나도 아니고 나라는 것도 없다. 가령 수염과 머리카락이 정신과 합해졌다고 한다면, 마치 물과 젖[乳]이 합쳐진 것과 같아서 그래도 분별할 수가 있겠지만, 설령 수염과 머리카락이 곧 나라고 한다면, 처음 태(胎) 속에서 형체와 의식을 받았을 적엔 머리카락과 털은 전혀 없었는데, 그 때는 나라는 것이 어느 곳에 있었겠는가? 결국 이 몸은 다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은 내가 아니어서, 머리카락이 나든지, 나지 않든지, 깎아 버리든지 그대로 두든지 간에 도저히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관찰해 보건댄 풀의 싹이나 머리카락이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머리카락을 나라고 한다면
곧 파나 염교와 같다고 보아야 하리.
몸은 풀을 베어내는 것과 같나니
몸도 풀과 다름없이 똑같게 보아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본래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제 나라고 보지 않고, 이와 같이 분명하게 안다면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만일 머리카락에 나라는 것이 없다면, 일체가 또한 다 그러하여 머리카락·털·손톱·발톱·이·뼈·살·피부도모두 소속된 곳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세히 살펴본다면 흙의 요소에도 나라는 것이 없고, 나도 또한 흙의 요소에 없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머리카락 같은 것들에도 나라는 것이 없고
몸 안을 백천 조각으로 분별하여
그 가운데에서 구해 봐도 몸이 없으니
마치 물 속에서 불을 구하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를 몸 안의 흙의 요소에서 찾아보아도 전혀 나라는 것이 없으니, 마땅히 바깥의 흙이라는 요소[外地]에서 살펴보아야 하겠다. 혹 내가 바깥 흙의 요소에 있지 않을까?’
어떤 것을 바깥 흙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과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거칠고 강하고 단단한 것이 사람의 몸과는 떨어져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흙·산·바위·모래·돌·기와·나무 같은 것들이며, 구리·철·납·주석·금·은·놋쇠·산호(珊瑚)·호박(琥珀)·자거(車▩)·마노(馬瑙)·유리(琉璃)·수정(水精) 같은 것들이며, 나무· 풀·싹·벼·곡물 같은 것들이 쌓여있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산·바위·돌·기와·흙·나무와
그 밖에 모든 형체 있는 것들로서
저마다 몸을 떠나 있는 증식력 있는 것들을
곧 몸 바깥에 있는 흙의 요소라고 한다.
만약 수행하는 사람이 몸 바깥에 있는 흙의 요소를 관찰하였다면, 몸 안의흙이라는 요소에도 나라는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몸 안의 흙의 요소도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으로서 곧 고통만 있을 뿐 오히려 몸은 없는데, 더구나 몸 바깥의 흙의 요소에 몸이 있겠는가?
몸 바깥의 흙이라는 요소는 가령 파괴하고·절단하고·불태우고·파헤치고·쪼개고 찢는다 하더라도 몸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나니, 어찌 그것에 나라는 것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몸 안팎의 흙의 요소는 모두 소속된 곳 없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비유하면 몸 안 흙의 요소에도 나라는 것 없는데
더구나 몸 바깥의 흙의 요소에 나라는 것 있겠는가?
그로써 본다면 나라는 것 없음이 똑같아
마치 허공처럼 다르지 않게 보아야 하리.
어떤 것을 물[水]의 요소라고 하며, 물이라는 요소가 나에게 있는 것인가, 내가 물이라는 요소에 있는 것인가? 물의 요소는 두 가지가 있나니, 몸 안의 물의 요소[內水]와 몸 바깥의 물의 요소[外水]이다.
어떤 것을 몸 안의 물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 가운데 있는 부드럽고 축축한[濕] 것들이다. 즉 지방(脂肪)·혈맥·골수·콧물·눈물·침·간(肝)·쓸개[膽]·소변 같은 몸 속에 축축한 모든 것들을 몸 안의 물의 요소라고 말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간·쓸개와 모든 혈맥과
땀 그리고 지방 같은 것들과
콧물·눈물·소변 같은
몸 속에 있는 모든 축축한 것 등
몸 안에 흩어져 있는 부드러운 것이
정신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온몸 속에 두루두루 흘러 다니나니
이런 것들을 몸 안의 물의 요소라고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앞에 있는 침과 콧물을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나무 가지에 묻혀 쳐들고 ‘내가 여기에 붙어 있는가?’ 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가령 거기에 내가 붙어 있다면 날마다 흘러 나가 버려지고 소멸되어 없어지고 썩어져서 장차 몸 바깥에 있게 될 것이니, 이것을 나라고 집착해서도 안 되고. 또한 보호할 것도 못 된다.
설령 나무 가지로 찍어 쳐들고 여기에 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그릇에 담아놓고는 또 무엇이라고 이름하겠는가? 이와 같이 관찰한 이는 그것이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니, 왜냐 하면 형체를 헤아려 보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로써 추론[比量]2)해 본다면 물의 요소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물이라는 요소에는 나라는 것이 없다. 몸의 안팎이 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가령 내가 물의 요소와 같다고 한다면
물이 없어지면 나도 소멸되어야 할 것이니
몸 안에 있는 물의 줄어듦과 불어남에 따라
나도 또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리.
만일 몸 속에 있는 물을 버린다면
이것을 몸이라고 헤아려 탐하지 않으리니
이와 같음을 자세히 살펴본 이는
곧 내가 있다고 말하지 않으리.
수행하는 사람은 다시 살펴보고 나서 이렇게 해야 한다.
‘몸 안의 물의 요소에는 나라는 것이 없으니, 마땅히 몸 바깥의 물의 요소에 내가 있는지, 내가 물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겠다?’
어떤 것을 몸 바깥의 물의 요소라고 말하는가? 몸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즉 뿌리의 맛·줄기의 맛·가지의 맛·잎의 맛·꽃의 맛·열매의 맛과 제호(醍醐)·참깨 기름·술·음료수[漿]·안개·이슬·목욕하는 못·샘·개천·흙탕물·강·하수·큰 바다와 땅 속에 들어있는 모든 물 같은 것들을 몸 바깥의 물의 요소라고 말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땅 위에 있는 여러 가지 물과
그 밖에 온갖 약의 뿌리와 줄기의 맛으로서
몸과 서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들을
곧 몸 바깥의 물의 요소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이 몸 바깥의 물의 요소에 대하여 자세히 관찰하여 이와 같이 분별하였다면, 몸 안의 물에도 오히려 나라는 것 없고, 늘어나고 줄어드는 일만 있어 이 몸으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할 뿐인데, 하물며 어찌 몸 바깥에 있는 물을 내 몸이라고 집착하겠는가.
가령 누가 빼앗아 가더라도 자신의 몸에는 아무런 손해가 없고, 또한 그냥 누가 준다고 할지라도 몸에는 아무런 이익도 없다. 이로써 관찰해보면, 이 몸 안팎의 물은 모두가 평등하여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몸 속의 모든 물의 요소에도 나라는 것 없고
괴로움과 즐거움, 늘어나고 줄어듦만 있나니
이와 같거늘 몸 바깥 물에 어찌 몸이 있겠는가.
괴로움과 즐거움, 늘어나고 줄어드는 걱정만 있다.
이제는 마땅히 모든 불[火]의 요소를 관찰하여야 한다.
‘불이라는 요소가 나에게 소속된 것인가, 내가 불이라는 요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인가?’
어떤 것을 불의 요소라고 하는가? 불의 요소는 두 가지가 있나니, 몸 안의 불의 요소와 몸 바깥의 불의 요소이다.
어떤 것을 몸 안의 불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 안에 있는 따뜻한 기운과 모든 열(熱)과 번만(煩滿) 등이 그것이다. 목숨을 보존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는 몸 안에 있는 모든 따뜻한 기운을 곧 몸 안에 있는 불의 요소라고 말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음식을 소화시키는 몸 속의 모든 따뜻한 기운과
온화하게 목숨을 보존하는 모든 뜨거운 것
이것이 곧 몸의 일부분인 햇빛[日光]이니
이것을 몸 안에 있는 불의 요소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똑같이 관찰해야 한다.
‘몸 안에 있는 온갖 따뜻한 것과 뜨거운 기운이 머리에 붙어 있기도 하고, 혹은 손·발·척추·옆구리·배·등에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저마다 다른 존재인 사람들의 몸을 헤아려 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불의 요소가 나에게만 있다고 할 것이 못 된다. 이와 같이 자세하게 관찰해 본다면 소속된 곳이 없는 것이 바로 몸 안에 있는 불의 요소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 몸을 분별하여 헤아리고
마음으로 불의 요소를 살펴도 나라는 것이 없다.
곳에 따라 있는 갖가지 종류에도
저마다 나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수행하는 사람은 문득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내가 몸 안의 불의 요소에서 나를 찾아보아도 전혀 내 몸이 없으니, 마땅히 바깥 불의 요소에 내가 있는가, 내가 불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어떤 것을 바깥의 불의 요소라고 말하는가? 몸과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불·불꽃·따뜻한 것·뜨거운 것과 같은 따위이며, 해·달·별에서 나오는 광명이 그것이다.
모든 하늘 신[天神]의 궁전·땅·언덕·산·바위·돌을 뚫을 때에 나오는 불과, 좋은 의복과 금·은·동·철·구슬·영락(瓔珞)과, 5곡(穀)·나무·약초(藥草)·제호(醍醐)·참깨기름 같은 데에 가지고 있는 온갖 열을 곧 바깥의 불의 요소라고 말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해·달·불꽃·별에서 나오는 열과
땅과 모든 돌에서 나오는 빛과 열이며
그 밖에 일체 사물의 모든 따뜻한 것을
곧 바깥의 불의 요소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바깥에 있는 불의 요소를 관찰한 바는 이와 같나니, 마땅히 바깥에 있는 불의 요소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음을 알 수 있다.’
불의 요소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태우는 것과 삶는 것이다. 불이 풀과 나무에 있으면서도 풀과 나무를 태우지 않는 것은, 있는 곳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몸 바깥에 있는 불 가운데 내가 있다고 한다 해도 특별히 다른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몸 바깥에 있는 불의 요소에도 몸은 없고, 저기[彼 : 몸 안]에도 없나니, 몸 안의 불의 요소와 몸 바깥의 불의 요소가 모두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똑같이 공(空)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그런 까닭에 바깥에 있는 불은
오직 태우고 익힐 뿐이요
산의 바위와 모든 자갈에
모여 쌓인 불도 그러하다.
제각기 있는 곳이 다르고
한꺼번에 타오르는 것도 아니다.
바깥의 불의 요소가 이와 같나니
그러므로 나라는 것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마땅히 관찰하여 말해야 한다.
‘모든 곳에 있는 바람[風]의 기운이 나에게 있는 것인가, 내가 바람에 소속되어 있는 것인가?’
어떤 것을 바람의 요소라고 하는가? 바람의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몸의 바람의 요소와 몸 바깥의 바람의 요소이다.
어떤 것을 몸 안의 바람의 요소라고 하는가? 몸이 받아들이는 기운으로서 오르락내리락 가고 오는 것이다. 즉 옆구리 사이와 척추 뼈·등뼈·허리에서 마구 일어나는 바람과 온갖 맥과 뼈 사이를 통하는 모든 바람과, 힘줄을 당기고 오그라들게 하는 바람과 급하고 거센 모든 바람이 일어나 발동하면 곧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데 이러한 것 등을 몸의 바람의 요소라고 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몸에 실린 모든 바람 기관(機關)과 같아서
사람 목숨 끊으려고 많은 바람 발동하네.
숨을 헐떡이고 동요하며 몸을 위축시키나니
이것을 곧 몸 안의 바람의 요소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이 몸 안에 있는 모든 바람은 모두 음식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또 그 밖에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바람도 헛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여러 바람들은 걸음을 걸을 적마다 그 가운데에서 각각 일어나고 소멸하나니, 거기에서 나를 찾아보아도 얻을 수가 없다.’
이것으로써 말한다면 안에 있는 바람에서는 아무리 구해보아도 나라는 것이 없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 몸에서 움직이고 멈추고 하는 바람과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바람이
제각기 달라 어디에도 내가 없나니
그러므로 몸 안의 바람의 요소에는 내가 없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스스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몸 안의 바람의 요소에서 나를 찾아보아도 거기에는 나라는 것이 없으니, 마땅히 또 몸 바깥을 관찰해 보아야 하겠다.’
어떤 것을 몸 바깥의 바람의 요소라고 말하는가? 몸과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즉 동·서·남·북의 사납고 급박하고 어수선한 바람과 회오리 바람, 차가움[冷]과 뜨거움[熱]이 많거나 미미한 바람과, 구름과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과, 산에 휘몰아치는 바람과
하늘과 땅을 이룩하고 무너뜨리는[成敗] 바람과 물 기운[水氣]을 머금고 있는 바람 등을 몸 바깥의 바람의 요소라고 말한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4방의 모든 바람과 차갑고 뜨거운 바람과
산에 휘몰아치는 바람과 하늘과 땅의 성패를 좌우하는 바람과
구름과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과 시원한 바람과 산에 휘몰아치는 바람
이런 것을 몸 바깥의 바람이라고 말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람을 관찰하고는 곧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몸 밖의 바람의 요소도 똑같지 않아 혹은 거세기도 하고, 혹은 미미하기도 하며, 혹은 시기적절하게 불기도 하고, 혹 어느 때는 성대한 열기를 머금고 있어서 부채를 들고 스스로 부채질을 하며, 혹 흙먼지가 있다면 먼지에 불어 깨끗이 씻어버리기도 한다.
거세고 빠른 회오리바람은 사람을 놀라 도망가게 하고, 산에 휘몰아치는 바람은 허공에 머물러 있으며 하늘과 땅을 무너뜨릴 때에는 수미산(須彌山)을 뽑아 둘을 서로 부딪치게 하여 모두 파괴시키고, 아래로부터 위로 높이 나부끼다가 다시 아래로 불어 서로 충돌하면서 부수어 모두 먼지와 같이 만든다.’
이 몸을 헤아려 보건대, 오직 하나 뿐이요 크거나 적은 것이 있지 않지만, 몸 바깥에 있는 바람의 요소는 이미 다양한 데다가 또 크고 작은 것이 있다. 몸 안과 바깥의 바람의 요소를 관찰해보건대 똑같아서 차이가 없다. 왜냐 하면 모두 소속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게송으로 말한다.
땀과 더위를 씻는 부채[扇]의 바람과
사람의 몸에 부는 바람과 회오리바람과
허공의 온갖 바람에도 또한 내가 없나니
이런 것을 바깥에 있는 바람이라고 한다.
수행하는 사람은 능히 다 분별할 수 있어서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분명하게 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몸이 공(空)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처해 있는 곳에서 활동하는 작 용을 가지고 문득 몸은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나라는 것이 있다고 억측하게 된다.
본래 무(無)임을 관찰하였다면 몸 안의 네 가지 요소와 몸 바깥의 네 가지 요소를 헤아려보아도 모두 똑같아서 차이가 없을 것이다. 색(色)·통(痛 : 受)·상(想)·행(行)·식(識)은 곧 몸 안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또한 의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호흡관법을 행하면서,
많은 법이 서로 상반되게 주장되는 것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나서다가,
여기서 수행도지경을 만나는 행운을 얻어서,
잘 복사를 해갑니다.
늘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