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깨달음

영원한 깨달음

석존께서 쿠시나가라(현재의 중인도 카샤지방으로 추측된다. 당시 마루라국의 성이 있는 곳이 마루라국의 북쪽에 있는 사라쌍수의 숲속에서 석가는 입적하셨다.)에 계셨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석존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불교의 계율(戒律)에 대해서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서슴치 말고 물어보아라. 어떤 문제라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도록 설명하리라.

나는 이미 모든 계율의 본선(本性)에 능통(能通)하고 있으므로 여하한 의문에 대하여도 해답을 줄 수 있다. 무슨 질문이 없는가? 특히 계율에 대하여 의문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물어보라.』

『세존님, 저희들의 지혜로서는 감히 세존님께 여쭈어 볼 만큼 깊은 본성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원래 부처님의 세계는 사려분별(思慮分別)을 초월한 것이어서 저희들로서는 감히 짐작도 못합니다.

또 세존님의 말씀만 하더라도 가르치심이 하도 깊고 너무나 넓어서 저희들은 다만 놀라고 있을 뿐이지 도저히 저희들의 지혜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떻게 여쭈어 보아야 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세존님, 한 가지 예를 들어보는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느 곳에 백스무살이 되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서 기거동작(起居動作)도 못하고 기력은 쇠진(衰盡)하여 얼마 살지를 못할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천만장자인 친구가 한 사람 있었는데 볼 일이 있어서 외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백만금의 황금을 지니고 여행을 하는 것은 불안하기도 하고 또 불편하므로 곰곰이 생각한 끝에 친구인 노인에게 부탁 하였습니다.』

『여보게, 이번에 꼭 외국에 갈 일이 생겼는데 많은 돈을 가지고 갈 수도 없으니 미안하지만 이 천만금의 돈을 맡아 주게나, 十년이나 二十년이면 볼 일도 끝나겠지, 그때까지 친구의 정으로 보관 좀 해주게. 귀국하면 가지러 올테니까.』

모처럼의 친구의 간청을 들은 병자는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린 것같이 그는 이미 백스무살의 많은 나이고 게다가 오랫동안 병상에 있어서 오늘 내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형편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독신이어서 상속할 사람도 없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이러한 노인이 十년, 二十년이란 오랜 시일동안 천만금의 돈을 보관한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또 이러한 처지에 있는 노인에게 다액의 돈을 맡기는 사람도 분별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가 외국으로 간지 얼마 안되서 과연 노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고독한 노인의 유산은 모두 이리 저리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그는 귀국하였습니다. 천만금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세존님, 이 천만장자는 돈을 맡기는 맨 처음부터 잘못을 한 것입니다. 귀중한 재산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인에게 맡겼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였습니다. 무일푼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세존님, 저의들은 이 병들은 노인과 똑 같습니다. 세존님의 넓고 깊은 가르침을 암만 들어도 무지한 까닭에 오래 마음에 새겨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계율에 대하여 질문을 하라고 말씀하셔도 실은 질문 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계율에 대하여 무엇이든 서슴지 말고 질문하라는 것은 그 질문으로 인하여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의문나는 것은 서슴치 말고 납득이 갈 때까지 물으라는 것이다.』

『세존님, 한 가지만 더 예를 드는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느 곳에 스물 다섯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건강하고 상당한 재산도 있었고 부모, 처자와 하인도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가 여행을 하게되어 그의 부재 중에 재산의 보관을 그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는 기꺼이 그의 재산을 그의 것과 마찬가지로 보호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때 병상에 눕게 되었는데 그때 곧 가족들에게 보관 중인 친구 재산의 세목(稅目)을 일러주니 친구가 오면 틀림없이 인도(引渡)하도록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재산을 의탁(依託)할 때도 분별 있게 일을 처리하므로 실수하는 일이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세존님께서 설법을 풀이하시는 경우에 아난 같은 성문의 위치에 있는 자에게 설법을 하시면 그 교법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설법을 받드는 성문들은 원체가 무상한 자들이므로 마치 병들은 늙은이가 남의 재산을 위탁받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하므로 오묘하신 석존님의 가르치심은 마땅히 보살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계승시키심이 좋을 줄로 생각합니다. 보살은 교법을 논의 하고 연구하는 동시에 이를 다른 사람에게 포교(布敎)하기를 게을리 하지않으므로 자연히 교법(敎法)은 영원히 잘 퍼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안락을 얻게하는 것은 마치 젊은이가 남의 재산을 위탁받은 것과 같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세존께 질문을 할 분은 대 보살들이십니다. 저희들 성문의 지혜는 종이장 같이 얇으므로 세존의 깊으신 가르침을 여쭈어 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합니다.』

성문들은 자기들의 교양이 낮다는 것, 지혜가 얕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고개를 떨구며 입을 다물었다.

석존께서는 이렇게 솔직한 말을 들으시고 매우 기뻐하셨다.

『그렇다. 정말이다. 나 또한 대승불교의 수행은 성문에겐 불가능하며 보살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다. 그 점은 나의 생각과 꼭 같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같은 말씀을 거듭하시는 것이었다.

『그대들 의문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물어 보아라. 주저할 것 없다.』

그 때 타라라는 부락의 바라문 출신인 대가섭(大迦葉)이라는 보살이 부처님으로부터 신통력을 받고 여러 사람들 중에서 서서히 일어나더니 합장하며 석존께 말씀을 올렸다.

『잠깐 여쭈어 볼 것이 있아옵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무엇이든 마음대로 물어보아라. 그대의 의혹을 충분히 풀어 주리라.』

『감사하옵니다. 한 말씀 여쭈어 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저의 지혜는 극히 얕사옵고 세존님은 존귀하시고 또 훌륭하기 비할데 없는 많은 일족을 거느리고 계십니다. 우러러 뵈옵기도 황송하게 세존님의 존체(尊體)는 금강석 같고 원광(圓光)에 싸여서 거룩하시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바다 같은 대지혜를 가진 일족이 모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이 많이 계신데 저 같은 미지한 자가 감히 질문을 한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입니다 다만 부디 세존님의 너그러우심과 여러분들의 위력에 힘입어 잠깐 의문되는 것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가섭은 이렇게 전제를 한 다음 자기의 의문을 말씀드렸다.

『세존님은 어떻게 금강의

불신(佛身)을 갖추셨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와 같이

신기한 불력(佛力)을 지니셨습니까?

또 어떻게 생사의 바다를 초월하여

도통의 경지에 도달하셨습니까?

세존님, 신비의 문을 열으셔서

중생을 위하여 교시하여 주소서.

세존님의 자비는 넓고 깊으며

중생을 위하여 광명을 던지시니

어떻게 이와 같은 공덕을 쌓으셨습니까?

세존님, 이 혼탁한 세계에 홀로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청초한 연꽃,

번뇌의 구름은 먹장 같은데

진리의 달은 가릴 수 없나니

난병을 고치는 세상의 명의는

결코 질병에 걸리는 일이 없음이로다.

생사의 바다 한복판에서

어떻게 능란한 뱃사공이 되셨음인지

어떻게 생사병고를 벗어나셨는지?

어떻게 위대한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세존님께 간청하옴은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깊고 오묘한 부처님의

도통하신 행업을 가르쳐 주소서.

온갖 세상의 모든 제법이

모두가 안락의 보성을 지니고 있거늘

청하옵건대 풀어 주소서

만세의 스승이신 대석존님.

중생의 어버이신 나무세존님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은 태산 같으나

가지고 있는 지혜는 하도 얕아서

여쭈어 볼 엄두조차 못냅니다.

지금 한 가지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의 경지를 알고 싶어함이니

여기 모인 보살들

소망은 똑 같습니다. 나무세존님.』

『가섭, 그대의 질문은 매우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대는 얕은 지혜밖에 없다고 되풀이 말하고 있지만 지금의 질문은 모든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가섭, 내가 보리수 밑에 앉아서 처음 깨달음을 열었을 때 여러 부처님의 세계에 있는 보살들이 나에게 깊은 뜻을 가진 질문을 하였는데 그 때의 그의 질문과 그대의 지금의 질문은 똑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도움을 줄 것이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에게 그만한 지혜가 있을리 없습니다. 예컨대 모기나 말파리가 큰바다를 날아서 하늘 저쪽으로 갈 수 없는 것같이 저의 지혜도 대해 같이 깊고 하늘 같이 높은 심오(深奧)한 의미를 가진 질문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선 보살이 여래와 같이 장수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하겠다. 가령 왕자(王子)가 죄를 범하여 감옥에 갇힌다면 아버지인 왕은 자식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친히 감방(監房)을 찾을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도 장수를 얻으려고 생각하면 모든 사람을 수호하고 자기의 피를 나눈 자식으로 생각하여 자비심을 함양(涵養)하고 계율을 지키게하며 선법(禪法)을 가르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교화(敎化)하고 나면 다음에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의 세계로 가서 그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을 구원하여 열반을 못하고 있는 자는 열반케 하고 여러 가지 공포를 덮어주어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보살은 비로소 장수함을 얻을 수 있으며 좀 더 깊은 지혜도 아울러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수명이 다 하면 천상계에 태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세존님, 보살은 세상 사람을 마치 자기 친자식 같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대자비심이 급기야(及其也)는 장수를 가져온다는 그 깊은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자식 같이 생각하라고 하시지만 세상에는 파계를 하는 자, 악죄를 범하는 자, 정법(正法)을 욕설하는 자 등이 실로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까지도 친자식 같이 생각한다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이겠습니까?』

『그렇다. 누구를 막론하고 친자식같이 생각함이 좋다. 나는 어떤 사람도 라고라(석존의 출가하기 이전의 子)를 대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차별 없이 취급하고 있다.』

가섭은 석존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의아한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었다.

『세존님, 전에 어느 달인지 보름날에 많은 스님이 모여서 청정한 계율의 수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계율의 수도라곤 전연 모르는 한 아이가 숨어서 스님들이 계율의 논의를 하고 있는 모양을 엿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야차 밋샤쿠 금강신이 세존님의 신통력으로 금강저(金剛杵-금강신이 가지고 있는 방망이)로 내리쳐서 그 아이를 발살을 내고 말았습니다. 세존님, 금강신은 이렇게 난폭한 짓을 감히 저질렀습니다. 금강신은 아이의 몸을 갈기갈기 조각을 냈습니다.

그런데 금강신의 이러한 난폭한 행동은 세존님의 신통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도 세존께서는 사람들을 대하기를 라고라 같이 대한다고 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나도 그런 일이 있었던 갓을 기억한다. 그러나 가섭, 죽은 아이는 화인(化人)으로서 실제의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폭행을 한 금강신도 환상(幻像)의 인물이고 금강저도 환영(幻影)인 것이다.

환상의 인물이 환상의 방망이로 환상의 인물을 해친 것에 불과하다. 이런 일을 나타내 보인 것은 파계를 하고 정법을 헐뜯는 자는 추방을 당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 이다. 실제로 나는 정법을 비난하고 계율을 깨고 살생을 하고 그릇된 일을 하는 사람들도 항상 자비심으로 대하며 라고라를 대하듯이 하고 있다.

가섭, 국왕은 신하나 백성들 중에서 국법을 범하는 자가 있다면 그 죄의 경중에 따라서 때로는 사형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도에서는 그러한 참혹한 처분을 하는 일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만약, 정법을 욕하고 파계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그 불쌍한 사람에게서 나쁜 마음을 없애기 위하여 또 세상 사람들에게 악행의 응보를 보여주기 위하여 이러한 본보기를 꾸며서 보여주는 것뿐이다.

부처님은 악인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하여 가끔 광명을 비추신다. 그 빛을 받는 사람은 악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부처님에게는 이와 같이 신기한 여러 가지 힘이 있는 것이다.

가섭, 아직 본 일이 없는 가르침을 보고 들어보지 못한 교법이 듣고 싶다면 자세히 들려주겠다.

옛날 어느 곳에 포악한 왕이 있었는데 중병을 앓게 되어 자리에 누우니 이제는 힘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것을 알게 된 이웃 나라의 왕은 이 나라를 쳐부수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군을 이끌고 국경으로 와서 병든 왕을 공격하여 그를 괴롭혔다. 병든 왕은 전에는 포악하기로 유명하였지만 이제는 병든 몸인지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이웃 나라 왕의 위협에 지친 나머지 진심이 눈떠 자기의 과거를 반성하고 선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웃 나라의 왕은 병든 왕을 위엄의 힘으로 착한 왕이 되게 한 까닭에 많은 복덕을 받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예도 들겠다.

집뜰에 독초(毒草)가 나면 곧 뽑아버릴 것이다. 젊은이의 머리에 흰 머리털이 나면 창피해서 곧 뽑아버릴 것이다. 불법을 지키는 수도자도 이와 똑 같이 파계하는 자, 정법을 헐뜯는 자를 보면 그들을 책하며 추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를 보고도 책하는 것을 게을리 하거나 추방하는 것을 주저하는 수도자가 있다면 이 수도자는 불법을 해치는 자기 자신의 몸을 갉아 먹는 좀과 같은 존재이다. 파계하는 자, 정법을 욕하는 자를 책하고 추방하는 수도자야말로 참된 불제자(佛弟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존님의 말씀은 그러하옵니다만 모든 사람을 친자식 같이 생각하라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갑니다. 세존께서는 라고라를 대하는 것같이 과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만약 여기 한 사람이 칼을 가지고 세존님을 해치려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을 전단( 檀)을 가지고 석존님의 옥체를 발라 드리려고 하고 있다면 석존께서는 정 반대인 이 두 사람을 과연 평등하게 대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만일 평등한 마음으로 대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지금 파계자와 정법을 비방한 자는 책하고 추방하라고 하신 말씀과 모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그대의 의문을 풀어 주리라. 아들이 넷이 있는 국왕이 있어서 그 사형제의 양육을 어느 선생님에게 맡기게 되었는데 국왕은 특히 부착하기를,

『이 아이들을 엄하게 양육해서 예의범절, 무예, 학문 모든 것이 능통하도록 해 주기 바랍니다.

넷 중에 셋이 교육을 받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남는 아들 하나는 충분히 가르켜서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사정을 두지 말고 교육을 시켜 달라. 이 때문에 설사 아들 셋을 잃더라도 선생을 원망하지는 않겠다.』

고 말했다고 하자, 이 때 정말 세 사람의 왕자가 엄격한 교육 때문에 희생이 되었다면 그들의 아버지와 스승은 살생의 죄를 범한 것이 될 것인가 아닌가?

『세존님, 그런 경우에는 살생의 죄가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그 까닭을 세 아들의 아버지는 또 스승이든지 간에 그것이 애정에서 나온 것이지 털끝만큼도 악심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생의 죄는 고사하고 교도의 공덕으로 많은 복덕을 받을 것입니다.』

『과연 그렇다. 불심(佛心)도 그와 같다. 불법을 깨는 자에 대하여도 친자식을 대함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나는 불법을 펴기 위하여 국왕, 대신들, 수도자, 승려들에게 포교를 위촉하였으므로 이들은 모든 사람들을 권장해 서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三學)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이것을 소홀히 하는 자가 있으면 이들을 철저히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이들에게 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으로는 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그러한 일이 죄가 안되는데 하물며 부처님이 죄를 지을 이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은 생명을 갖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골고루 한결 같이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부처님 모양으로 평등심을 갖게 된다면 마침내는 장수를 얻고 아울러 전세의 일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존님, 미련한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항간에서 볼 수 있는 일입니다만 불법을 닦았다는 사람이 남보고는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치면서 집에서는 난폭하게도 자기의 부모를 때리고 차고 하는 자가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부모의 은혜는 넓고 깊은 것입니다. 모름지기 자식된 자는 지성껏 효도로서 부모를 모셔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더구나 가해를 한다는 것은 그가 자식인 만큼 언어도단(言語道斷)인 소행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언행 불일치(言行不一致)도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세존님의 말씀도 그와 같습니다. 보살이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한다면 장수를 얻는다고 하시지만, 과연 그런지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존께서는 어째서 수명이 보통 사람모양으로 짧으십니까?

세존께서는 정말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한 일이 없으십니까? 어쩌면 세존께서도 그 옛날 무슨 악행을 하신 결과로 보통 사람 모양으로 단명하셔서 수명이 백년도 못되는 것은 아닌지요?』

『그대는 무슨 근거가 있어서 그와 같은 폭언을 감히 부처 앞에서 하는가? 부처님이 수명은 모든 만물의 수명 중에서 가장 긴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터득하신 법은 모든 상주(常住)의 법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다.』

『점점 더 모르겠습니다. 첫째, 세존님의 수명이 제일 긴 수명이라고 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대는 인도의 八대강을 알고 있겠지, 첫째 갠지스강, 둘째 엠바라강, 셋째 사츠라강, 넷째 아이라밧티강, 다섯째 마카강, 여섯째 신즈강, 일곱째 크시강, 여덟 째로는 시타강이 있는 것이다. 이 八대강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은 강은 모두가 큰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 지상, 천상, 허공(虛空0의 온갖 수명이란 수명은 전부가 여래수명 대해(如來壽命大海)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의 수명은 무한한 것이다. 아누달지(阿 達池)가 四대강의 수원지(水源池)인 것같이 부처님은 모든 수명의 원천(源泉)인 것이다.

가섭, 들으라. 모든 약 중에서 제호미(醍 味―우유를 정제해서 만든 것으로 최고의 맛을 갖는다고 하며 그런 의미에서 열반, 불성(佛性), 진실 등의 가르침의 의미로 쓰인다. 제호미는 오미(五味)의 하나로 오미란 신 맛, 쓴 맛, 단 맛, 매운 맛, 짠 맛을 말하고 이 열반경에서는 유미(乳 ), 낙미(酪味) 생수미(生壽眉―제호미를 오미라한다)가 제일인 것과 같이 부처님도 또한 모든 사람들 중에서 수명이 제일인 것이다.』

『세존님의 말씀대로 세존님의 수명이 모든 수명 중에서 제일이라고 하신다면 이 세상에 앞으로 일겁 동안만 더 살아계시면서 비가 만물을 적시는 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불법의 오묘함을 가르쳐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대는 부처님이 죽어 없어진다고 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수도자, 스님, 혹은 오통선인(五通仙人)같은 사람도 신통자재를 얻은 자는 그 자재력(自在力)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일겁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머물러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도 있다. 그뿐이랴, 공중에서 앉을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있으며 왼쪽 겨드랑에서 불을 뿜어 낼 수도 있고 바른쪽 겨드랑엥서는 물을 뿜어 내고, 다시 전신에서 불꽃을 발사할 수도 있다. 수명도 마찬가지다. 길게 할 수도 짧게 할 수도 자유 자재인 것이다.

오통선인 같은 사람이 이와같을 진대 하물며 만법에 능통하고 도통한 부처님이 수명의 반겁이나 일겁 아니 백겁 천겁 만겁 혹은 무한정으로 수명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할 이치가 없지 않겠는가! 부처님은 실로 영원히 계셔서 변화가 없는 것이다.

단지 세상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영원불멸의 몸을 버리고 진실한 깨달음을 보이시는 것이다. 가섭, 여래는 영원한 것이고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뜻에서 마땅히 불도에 정진해서 널리 사람들을 교화시켜야 하느니라.』

『세존님, 불법과 항간의 법과는 어떤 구별이 있는 것입니까? 말씀을 들으면 부처님은 언제나 계신다고 하옵는데 항간에서도 범천이나 자재천(自在天)은 영원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는데 만약 부처님도 영원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면 어찌하여 항상 이 세상에 나타나시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항상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범천이나 자재천은 영원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들 또한 항상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과 어떤 구별이 있는 것입니까?』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어떤 장자가 제호미를 얻으려고 소를 사육하고 있었다. 장자의 목적은 제호미를 얻는데 있었으므로 보통의 우유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장자는 소에서 제호미를 얻기 전에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소는 도적들이 약탈을 해가서 소는 도적들에게 신선한 우유를 먹여주었지만 도적들이 소를 약탈한 목적도 제호미를 먹는데 있었으므로 그들도 보통 우유로는 만족하지를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투덜거렸다.』

〈그 장자가 소를 기른 목적은 우유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호미 때문이다. 모처럼 뺏아 온 소에서 제호미를 얻을 수 없다니 이럴 수가 있나? 어떻게 하면 제호미를 얻을 수 있을까?

들은바에 의하면 제호미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맛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얻을수 있는 방법도 모르거니와 설사 제호미를 얻었다하여도 그것을 안전하게 저장해 둘 장소도 없으니 분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호미를 만드는 것을 단념하지 않았다. 아니 더욱 제호미에 대한 집착이 커져서 여러 가지로 연구한 끝에 거의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제호미에 너무 물을 많이 넣은 까닭에 애써 얻은 제호미를 일순간에 잃고 말았다.

범부(凡夫)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면 그들은 부처님이 남긴 계(戒), 정(定), 혜(慧)를 훔쳐서 일단 자기의 것으로 하지만, 계, 정, 혜를 살리는 방법을 전연 모르므로 결국에 가서는 도적이 제호미를 얻고도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소용이 없게 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되는 것이다.

가엽,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부처님 뿐이다.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은 범천이나 자재천을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불, 법, 승의 삼보는 모두가 영원한 법이므로 결코 변천한다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 법, 승에 의하여 세상이 무사하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보리(菩提―불문에서 도를 얻는 일)의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

이에 반해서 삼보에 의하여 영원함을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침내는 보리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있다. 가섭, 나무가 있으면 반드시 그곳에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여래도 그와 같아서 여래가 계신 곳에 반드시 제천 세인의 귀의가 뒤따르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이 상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천 세인이 귀의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존님, 나무가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깜깜한 밤에는 그림자가 없지 않습니까?』

『밤이라고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육안(肉眼)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부처님이 언제나 계시다는 것도 지혜의 눈이 없다면 결국은 밤에 나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볼 수 가 없는 것이다.』

『세존님, 자세하신 가르치심을 받사와 비로소 불, 법, 승의 삼보가 항상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는 가르치심을 따라서 칠세(七世)에 이르기까지 삼보를 받들어 모시도록 온갖 노력을 하겠습니다.』

『가섭, 기특하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참다운 호법(護法)이 되는 것이다. 정법을 지키는 공덕은 참으로 광대하기 때문에 장수를 얻을 수 있으며 기왕의 숙명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涅經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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