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깨달음
석존게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시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석존께서는 가섭에게 열반에 대하여 다음 같이 말씀하시었다.
『세상 사람들이, ―부처님은 입적하신다. 그러나 그 육체는 없어지지만 부처님의 본신(本身)은 입멸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은 항상 「번뇌를 없애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라고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마치 불이 꺼져서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럴진대 부처님은 영원하다든가 불변한다든가 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부처님은 욕망과 번뇌에서 벗어나서 무위(無爲), 적정(寂靜)의 경지에 드는 것을 열반이라 한다고 하시지만 사람의 목을 잘라내면 목은 남지 않을 것이다. 욕망과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도 매한가지이다. 요컨대 「공(空)」이라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영원하고 불변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부처님은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치면 불꽃이 튀긴다. 그 불꽃은 어디로 사라지는지 행방을 알 수 없다. 해탈이라는 것도 이와 똑같다. 음욕(淫慾)과 번뇌의 흙탕물을 헤치고 나아가서 무동처(無動處)로 가는 것이다.」라고,
이것도 요컨대 「공(空)」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떻게 영원하며 불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가엽,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은 사견(邪見)에 빠져 있는 것이지 결코 올바른 사고방식(思考方式)이 아니다. 그대에게 다시 이르노니 번뇌를 없애면 거기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여러 가지의 상(相)이 없어지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다. 그것을 열반이라고 부른다.
부처님도 또한 영원한 것이고 변화가 없다. 제불은 법을 스승으로 한다. 법은 영원한 것이고 변화가 없다. 그러므로 제불 또한 영원한 것이다.』
『세존님, 번뇌의 불이 없어지면 부처님도 없어질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부처님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번뇌 모양으로 없어지면 어디로 가는지 가는 곳을 모를 것이 아닙니까?
마치 달구어진 쇠의 불똥이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번뇌의 불이 없어져서 깨달음에 든다고 한다면 필경 부처님은 무상(無常)하지는 않다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범부는 번뇌가 다시 생긴다. 그러므로 무상한 것이다. 부처님은 그렇지가 않다. 일단 번뇌가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영원한 존재인 것이다. 가섭, 나무를 태우면 재가 남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번뇌가 없어지면 깨달음이 남는 것이다.
쇠는 식어도 열을 주면 다시 빨갛게 된다. 부처님은 그렇지 않다. 번뇌의 불길이 한 번 꺼지면 다시는 타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영원히 청량(淸凉)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쇠와 같은 것이다. 부처는 항상 깨달음이란 지혜의 불로 사람들의 번뇌를 태우고 있는 것이다.』
『세존님이 말씀하신 제불이 영원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습니다.』
『가령, 성왕(聖王)이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궁녀가 모시고 있지 않다고 해서 성왕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이 사바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육체는 없어졌다하여도 무상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기실 번뇌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사후 안락 세계에서는 찬란한 깨달음의 꽃밭에 계시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있는 것이다.』
『세존님, 세존님께서는 항상 「나는 이미 번뇌의 대해를 건넌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옵는데 그러시다면 어째서 야쇼다라 공주를 맞이하셔서 라고라라는 아드님을 두셨읍니까? 저는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세존께서는 아직 번뇌의 대해를 건너시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설명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음,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을 해서 라고라를 낳았으니까, 부처님은 번뇌에 대해를 건넌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인가?
그 의문은 그대만이 품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므로 좀 자세히 아니라고 하는 것인가? 그 의문은 그대만이 품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므로 좀 자세히 설명을 해 두겠다.
가섭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보살은 저 높고 넓은 수미산을 양귀비 열매 속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 수미산에 있는 사람은 수미산이 열매 속에 들어 갔다고 해도 별로 불편을 느끼지도 않고 또 수미산이 움직였다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보살은 대천 세계를 열매속에 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보살은 삼천 대천 세계를 열매속에 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천대천세계의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도 모르고 열매속에 들어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보살은 삼천 대천 세계를 한 개의 털구멍 속으로도 넣을 수가 있다. 그리고 ㅅ십방 삼천 대천 세계를 바늘에 실을 꼬여서 대추나무의 잎을 꿰매듯이 실로 묶어서 다른 부처님의 세계로 내던질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느끼는 것도 없이 여전히 평상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위대한 깨달음을 갖는 보살은 십방 삼천 대천 세계를 왼손 위에 놓고 다른 여러 나라도 마음대로 던질 수도 있다. 이 때에도 사람들은 다른 세계를 왕복하였다고는 생각지도 않는다. 또 시방 세계를 자기의 몸속으로 넣을 수가 있는데 보살의 뱃속으로 들어가도 거북한 것도 모르고 뱃속에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또 때로는 십방 세계를 한 개의 먼지 속에 넣을 수도 있는데 역시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가엽, 위대한 깨달음을 갖는 보살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신통한 변화를 나타내는데 이 신통 변화는 사람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애욕심으로 라고라를 낳았다고 말하는 것은 사물의 겉만 본 천박(淺薄)한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내나 삼천 대천 세계에서 무궁무진한 신통 변화를 보였다는 것은 수릉엄경(首楞嚴經)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다.
나는 삼천대천 세계 중에서 사바 세계에서는 깨달음을 설교하고 혹은 모태(母胎)에 들었다가 탄생하여 부모의 자식 같은 일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의 몸은 요켠대 애욕의 화합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영원한 과거에서부터 이미 애욕을 떠났고 이 몸은 실로 영원한 존재인 것이다. 어머니의 태내로 들어갔다는 것은 세상의 습관에 따랐을 뿐인 것이다.
가엽, 나는 룸비니궁에서 쇼오본 왕비 마야(摩耶)의 태내에서 세상에 나오자 마자 곧 동쪽으로 일곱 걸음 걷고「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본 부모와 주위 사람들은 놀랍고도 신기함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나를 갓난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의 몸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법신(法身)인지라 세상 사람들 모양으로 피, 살, 근육, 맥, 심줄, 골격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세상의 관습을 흉내내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다음에는 남쪽으로 일곱 걸음 걷고 인류에게 행복을 주려는 의사를 표시했고 다시 서쪽으로 일곱 발 옮기고 생로사(生老死)가 없는 이것이 최종신(最終身)임을 나타냈고 다음엔 북쪽으로 일곱 번 걸어서 온갖 생사를 초월함을 표시했고, 다시 네 귀통이로 각각 일곱 발 옮겨서 모든 번뇌를 끊고 부처가 될 것을 표시했고, 위쪽으로 일곱 발 옮겨서 부정에 물들지 않음이 蒼空과 같음을 표시했고, 마지막으로 밑쪽으로 일곱 걸음 걸어서 법의 힘이 지옥의 업화를 멸하고 지옥 사람들에게 안락을 줄 것을 표시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지 칠일 만에 삭발했다. 사람들은 모두 갓난아기가 머리를 깎는 것은 처음 보았다고 수근거렸다. 그러나 사람도, 하늘도, 마왕도, 스님도, 바라문들도 나의 머리 위에 특별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는 자는 없었다.
물론 어느 누가 면도칼로 나의 머리카락을 자른 것은 아니다. 만약 누가 면도칼로 나의 머리를 깎았다면 머리의 특별한 형태를 몰랐을리는 없다. 나는 원래 영원한 과거의 세상에서부터 이미 머리와 수염을 깎고 있었던 것이지만, 태어난지 칠일만에 삭발한 것뿐이다. 나를 낳은 부모는 나를 데리고 마게이슈라천신을 참배했다. 이것도 세상의 관습을 따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나는 귓불에 구멍을 냈다. 이것 역시 세상의 습관대로 한 것이며 내가 자작한 것이다. 누가 나의 귀에 구멍을 뚫어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구슬로 귀거리를 해서 달았다. 기실 나는 먼 옛날에 장식품 같은 것은 벌써 몸에서 떼어버린지 오래지만 역시 세상의 관습을 따른 것에 불과하다.
조금 커서는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였지만 나는 원래 먼 옛적부터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었다. 나의 스승이 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것도 습관대로 다만 입학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정편지(正偏知)부처는 정리(正理)를 다 알고 모름이 없다는 것」라고 하는 것이다. 기타 마술, 코끼리 부리기, 씨름 등을 배운 것도 마찬가지다.
또 나는 왕의 태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오욕의 활락에 젖어있다고 생각하였겠지만 나는 이미 영겁(永劫)의 과거로부터 오욕의 환락을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세상의 예를 따랐을 뿐이다.
내가 탄생했을 때 점장이는 이렇게 점을 쳤다.
「이 아이는 성장해서 출가한다. 만약 출가하지 않는다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서 사바세계의 왕이 된다.」
사람들은 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먼 옛날에 전륜성왕의 자리를 버리고 법륜왕(法輪王)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장성하여서는 꽃보다 아름다운 궁녀를 떠나서 오욕의 환락을 버리고 동문 밖으로 나가서는 늙은 사람을 보았고 남문으로 나가서는 병든 사람을 보았고 서문으로 나가서는 죽은 사람을 보았고 북문 밖에서는 수도하는 스님을 보고 마침내는 왕성(王城)을 빠져 나가서 출가하여 수도하는 몸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싯다르타 태자가 그때 출가 하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나는 이미 먼 옛날에 벌써 출가 수도하는 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도한 결과 아라한의 위치에 오르고 또 보리수 밑에다가 풀로 자리를 깔고 많은 마귀들과 싸워서 이들을 항복시켰고, 대소변, 숨쉬기, 그리고 잠도 잤고, 배고픔과 목마름, 때로는 두통, 안질, 복통 같은 병과 목욕을 하고 손발을 씻는 것 같은 보통 사람이 하고 겪는 일을 모두 해보였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세상의 습관을 따라서 나타내 보인 것이다. 원래 나의 수족은 깨끗하기가 연꽃 같은 향기가 풍기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라고라는 나의 아들이다 쇼오본왕은 나의 아버지다. 마야부인은 나의 어머니다. 그런 혈연(血緣)의 부모 처자를 버리고 출가 수도를 했다고 생각하고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모두가 여러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나타내 보임인 것이다. 본시 불신은 영구불변한 것으로서 생멸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로 불신은 영원한 것이고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나는 이 세상에서 출가와 불도를 발현(發現)하고 때로는 파계, 때로는 일천리(一闡提-절대로 부처가 될 수 없는 것), 때로는 교단(敎團)의 질서(秩序)를 깨고 때로는 악인의 천마(天魔) 하즁이 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때로는 범천왕이 되고 때로는 창녀의 집에도 출입하지만 그것은 성욕 때문이 아니고 나 자신은 어디까지나 청정하여 깨끗함이 연꽃 같은 것이다. 이런 나의 행위는 여색에 빠지는 자를 구원하기 위한 방편(方便)에 지나지 않는다.
또 때로는 선생님이 될 때도 있다. 그은 나이가 어려서 도리를 모르는 자를 인도하여 정법(正法)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노름판이나 술집에도 나타나는데 이것을 승부와 싸움판에 파고들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악행을 한다고 하지만 그 것은 나의 진의(眞意)를 모르는 사람의 억측(臆測)에 불과하다 또 새들을 살려 주기 위하여 숲에서 독수리가 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진짜 독수리로 생각한다.
또 때로는 왕 대신 재상(宰相)이 될 때도 있으며 나쁜 병이 유행을 해서 사람들이 병고를 겪고 있으면 약을 주며,,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이 있으면 양식(糧食)을 공급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피난의 방법을 마련해 준다. 이것도 모두 보리의 도에 안주(安住)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생법하고 쾌락을 쫓는 자에게는 고통이 있음을 설법하고 집념이 강한 자에게는 무아(無我)를 설법하고, 정사상(淨思想)에 묻혀 있는 자에게는 부정상(不淨想)을 설법하고 이 세상의 생에 집착하고 있는 자에게는 염세관(厭世觀)을 설법하고 번뇌의 나무를 뽑아버린 자에게는 법약수(法藥樹)를 심어 주는 외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는 정법으로 대한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사바 세계에서뿐만이 아니고 삼천 대천 세계의 도처에서 마찬가지로 행하는 것이다. 정말 깨달음의 세계에서 안주하는 보살이라면 이러한 신통 변화를 자유 자재로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가엽, 이상 말한바와 같으므로 라고라를 나의 자식이라고 말하여서는 아니된다. 나는 옛부터 이미 모든 욕념(欲念)에서 해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영구히 존재하는 것이고 변화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연유(然由)인 것이다.
『세존님, 부처님은 영원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세존님의 말씀에 의하면 등화가 꺼지면 형적도 없는 것과 같이 부처님도 멸하시면 형적이 없어진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이해해도 좋겠습니까? 』
『등잔불을 켜는 기름이 없어지면 불은 꺼진다. 그러나 등잔은 남을 것이다. 등잔불은 번뇌인 것이다. 그리고 등잔은 법신(法身)이다. 번뇌는 다하여도 법신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불이 꺼지는 동시에 등잔도 없어진 다는 말인가?』
『물론 등잔은 남습니다. 그러나 등잔이 무상한 것이라면 법신도 또한 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너무나 말자체에 얽매여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등잔이나 모든 것들은 생멸 변화해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부처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최상의 법기(法器)인 것이다. 영구한 열반을 터득하고 있는 부처님은 또한 영원한 것임에 틀림없으니 법기도 역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
<涅槃經第四>